토론 교육이 경쟁력이다 <상> 한국 우등생, 미국선 열등생

중앙일보

입력 2009.05.18 03:39

업데이트 2009.05.18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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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 미국 동부의 명문사립 W대 1학년 장모양은 입학 직후 한 교수의 지적을 받고 크게 당황했다. “수업 시간에 왜 질문을 하지 않느냐”는 질책이었다. 국내 특수목적고 출신인 그는 예습을 철저히 해간 터라 “특별히 모르는 게 없어서 그랬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다 알아도 궁금한 걸 찾아내 질문해야 한다”는 따끔한 충고가 돌아왔다. 그는 “마땅히 물어볼 게 없는데 질문을 만들어 가는 것도 큰 고역”이라고 털어놨다.

미국의 한 고교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있다. 토론식 수업에서 교사는 학생들에게 한 가지 정답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중앙포토]

# 한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미국 뉴욕의 입시학원 교사 최모씨는 최근 한 11학년생(국내 고교 2학년 해당)의 에세이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수학 등 다른 성적은 괜찮은 이 학생의 논리가 초등학생 수준이었던 것이다. 에세이 문제는 ‘언제나 창조는 모방보다 좋은 것인가’였다. 그랬더니 “시험 도중 친구 답을 베꼈더니 틀렸다”며 “경험상 남을 따라 하면 꼭 실패가 따른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왜 (Why)’, ‘어떻게 (How)’를 물을 줄 모르는 한국식 평면적 교육이 빚어낸 코미디 같은 이야기다. 한국 학생들은 순종을 미덕으로 삼는 유교문화에다 주입식 교육의 영향으로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에 전혀 익숙지 않다. 한국에선 어떻게 비판적으로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을 뿐더러 질문하려 들면 “쓸데없이 따지고 든다”는 핀잔을 받기 일쑤다. 이 때문에 한국 학생들을 접해본 미국 교사들은 질문할 줄 모르는 수동적 태도와 평면적 사고를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20여 년간 외국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온 ESL 교사 앨런 코헨은 “객관적으로 틀린 사실을 말할 경우가 있는데, 한국 학생들은 잘못된 줄 알면서도 지적하거나 묻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교사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그러겠지만,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로 묻는 게 중요하지 아예 질문하지 않는 건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웨슬리언대 외국 학생 담당인 앨리스 해들러 부학장은 “한국 유학생의 경우 창의적인 학습 방식이 생소한 탓인지 처음엔 당황해 한다”고 전했다. 그는 “작문 시간에 뭐든 마음대로 쓰라고 하면 꽤 충격을 받는다”며 “그간엔 늘 무엇을, 어떻게 쓰라고 구체적인 지침을 받아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영국과 미국에서는 비판적 사고를 고등교육의 최대 덕목으로 여길 정도다. 영국의 최고 명문 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에서 이뤄지는 교수와 학생 간 ‘튜토리얼(Tutorial· 개인교습)’의 핵심도 비판적 사고의 함양이다. 대입 학력고사 격인 A레벨 시험에는 아예 비판적 사고 과목이 존재한다.


미국 내 노력도 영국 못지않다. 우선 가정에서부터 비판적 사고를 기르려 한다. 코헨은 “미국 가정에서는 자녀들에게 어떻게든 질문을 많이 하라고 가르친다”고 말했다. 모든 교육기관도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실제로 1995년 캘리포니아 내 68개 대학을 조사한 결과 이 중 89%가 “교육의 핵심은 비판적 사고 기르기”라고 답했다. 이런 분위기여서 비판적 사고 능력을 측정하는 별도의 시험도 마련돼 있다. ETS와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교육평가기관인 ACT가 실시하는 ‘대학학력평가시험(CAAP)’은 전체 6개 분야로 구성돼 있는데, 이 중 비판적 사고가 별도 과목으로 포함돼 있다. 또 창의력·탐구력 및 비판 능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다양한 전문기관 등이 미 전역에 있다. 대표적인 곳이 인디애나주 와바시 컬리지에 설치된 ‘인문학 탐구센터(CILA)’다. 미시건대·노틀담대 등 49개 대학이 참여한 이 기관에서는 효과적인 비판적 사고 능력을 기르기 위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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