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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먼저 易地思之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14호 15면

거북한 진실이지만, 살인이나 폭행 등 폭력 범죄의 가해자 중에는 가족이 많다. 가정폭력은 지위·돈·학식과는 상관없이 일어나며, 맞고 때리는 사람 양쪽 다 폭력의 심각성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도 있다. 잘못했으니 벌 주는 것뿐이라며 끔찍한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 어른 노릇 못 했다며 늙은 부모를 학대하는 성인 자녀 중에는 죄의식이 없는 이도 많다. 피해자 역시, 내 죄가 많아 맞을 만했다는 식으로 가해자를 감싼다. 가정폭력은 불황 같은 사회적 스트레스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소득 수준은 낮지만 따뜻하고 예절 바른 사회가 있는 반면 엄청난 부자는 많아도 폭력이 횡행하는 사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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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격식이나 포장 없이 민얼굴을 서로 대하는 사이라 자칫 절제와 인내를 잃기 쉬우며, 기대가 큰 만큼 실망감과 배신감을 조절하기 힘들 수도 있다. 자신을 가장 아프게 하는 대상이 가족이란 사실이 피해자를 더 병들게 한다. 가족에 대한 실망을 덮고 예의를 갖추는 것이 어렵기에 폭력은 재생되고 악순환된다. 때리거나 부수는 시기(implosion phase) 이후에는 자기 잘못을 빌면서 사랑을 표현하는 시기(honeymoon phase), 빌미를 찾는 긴장 형성기(tension building phase)의 순서가 있기에 그 순간만 모면하면 된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어 가정폭력이 장기화·극단화되는 경우도 많다.

막 나가는 요즘 드라마에도 가정폭력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작가들의 사이코패스적 환상만 탓할 것이 아니다. 인간 심성의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악(evil)이 거름 장치 없이 극단으로 향하는 사회 전체의 변화를 먼저 읽어야 할 것 같다. 그리스 신화에는 ‘살부(殺父) 콤플렉스’로 유명한 오이디푸스뿐 아니라 할아버지-아버지-아들 관계인 우라노스-크로노스-제우스가 서로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독일 민담인 ‘헨젤과 그레텔’ ‘백설공주’, 한국의 ‘접동새 누이’ 등에 나오는 아버지와 계모는 모두 자녀 학대와 살인의 가해자다. 이와 같은 무의식의 파괴적 본능을 다스리지 못하고 구체적으로 행동화하는 것은 경계형 인격장애자 등 성격장애나 가정폭력의 희생자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본능을 조절하고 사랑하는 방식은 양육자에게서 배우게 되므로, 폭력은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수직 전달(vertical transmission)된다.

‘매를 아끼면 자식을 망친다’ ‘여자와 북어는 사흘에 한 번은 때려야 한다’는 아동 학대와 아내 구타에 더하여 요즘엔 무능한 남편과 병든 노인을 신체적·정신적으로 학대하는 이도 많다. 원망을 폭력으로 엉뚱한 이에게 풀 게 아니라 내가 간절히 원했던 것을 먼저 다른 가족에게 실천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예컨대 자녀가 반항한다고 부모가 내게 했듯이 손부터 댈 게 아니라 자신이 어렸을 때 부모에게 무엇을 간절히 원했는지 기억해 보자. 귀찮고 원망스러운 시부모를 학대하기 전에 늙어 병들었을 때 내 자녀가 나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상상해 보자. 가족이란 조직에도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덕목은 꼭 필요하다. 가해자를 존경하는 희생자는 없다. 스스로의 우월감과 힘을 확인하기 위해 약자를 못살게 구는 우둔함은 열등감의 발로이자 혐오스러운 조롱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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