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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명이 10시간 할 일, 한 두 명이 2시간 만에 끝내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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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9일 RFID 시스템이 설치된 제일모직 청담동 매장에서 RFID용 소형 단말기를 든 직원이 재고를 확인하고 있다.

7일 오전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고급 패션 브랜드 매장 ‘10 꼬르소 꼬모’. 이병기 부점장이 휴대전화보다 조금 커 보이는 소형 단말기를 들고 매장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진열된 제품의 종류와 수량을 확인하는 재고 조사를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다른 매장처럼 제품을 일일이 세는 작업은 하지 않는다. 이 부점장이 걸어 다니는 동안 제품명과 수량이 자동으로 단말기 모니터에 입력되기 때문이다.

비결은 이 매장의 모든 제품에 붙어 있는 무선인식(RFID) 전자태그다. 단말기가 전파를 쏴 제품에 부착된 전자태그에 입력된 정보를 인식하는 것이다. 기존에 사용하던 바코드 시스템은 판독기를 바코드에 바짝 갖다 대야 정보를 확인할 수 있지만 RFID 시스템은 전파의 세기에 따라 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도 전자태그의 정보를 읽어 낸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차량이 빠르게 달리면서 통행료를 결제하는 하이패스와 같은 원리다.

3층 건물에 1400㎡(약 420평) 규모인 이 매장은 남녀 의류와 액세서리·구두·핸드백·서적·음반 등 2만 종이 넘는 상품을 판매한다. ‘10 꼬르소 꼬모’는 제일모직이 이탈리아 본사와 독점 계약을 하고 지난해 3월 시판에 들어간 브랜드다. 수백만원짜리 상품은 흔하고, 해외 유명 디자이너가 한정 수량으로 만든 1000만원 안팎의 고가품도 적지 않다. 매장 직원들이 재고 관리에 각별히 신경 쓰는 이유다.

이 부점장은 “예전에 재고 조사를 수작업으로 할 때는 30여 명이 10시간 넘게 매달려야 했다”며 “RFID 시스템을 도입한 뒤로는 한두 명이 1~2시간 천천히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 여유가 생긴 만큼 고객 서비스에 더욱 집중할 수 있어 매출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대통령 표창 받아
제일모직은 ‘10 꼬르소 꼬모’ 브랜드 제품의 입고·출고·재고 확인·판매 전 과정을 RFID 시스템으로 관리한다. 제품이 물류센터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최종적으로 소비자의 손에 넘어갈 때까지 자동으로 관리되는 셈이다. 제일모직은 이 시스템을 서울 가산동의 물류센터와 청담·신사동 매장 등 세 곳에 설치했다.

물류센터에 제품이 들어오면 직원들이 컴퓨터로 RFID 전자태그에 정보를 입력한 뒤 전자태그를 제품 라벨에 스티커처럼 붙인다. 이런 작업을 마친 제품을 쌓아 둔 박스를 두 곳 매장에 보낼 때는 박스를 뜯을 필요 없이 통째로 검수대에 올려놓기만 하면 된다.

회사 측에 따르면 RFID 시스템 도입으로 연간 1억5500만원(5.5명분)의 인건비 절감 효과가 생긴다. 하루 15시간 걸릴 일이 3시간으로 줄어 물류 생산성도 5배나 높아졌다. 연간 2억원(예상 매출액의 2%)의 매출 증가도 기대하고 있다. 바코드 방식에선 고객이 원하는 사이즈나 색상이 매장에 없을 경우 판매 기회를 놓치기 쉽지만 RFID 시스템에선 필요한 물건이 매장·창고·물류센터 중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어 예약 판매가 가능해서다. 재고 확인이 쉬워진 만큼 상품의 분실이나 도난 우려도 크게 줄었다.

대신 RFID 판독 장비를 설치하고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2억9000만원의 비용이 들었다. RFID 전자태그 가격은 지난해 개당 280원이었으나 올해는 환율 상승에 따라 350원 수준으로 올랐다. 연간 필요한 RFID 물량은 7만 개, 금액으로는 2500만원 정도다. 2년이면 투자비를 넉넉히 회수할 수 있어 충분히 경제성이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이 회사 황백(사진) 사장은 “일찌감치 2003년 RFID 도입에 나서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최상의 운영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말했다. 이어 “22년 전 패션산업에 바코드를 도입해 큰 성과를 봤듯이 차세대 기술인 RFID를 적극 활용하면 재고 관리에 획기적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사는 지난달 말 지식경제부가 주최한 ‘제4회 대한민국 RFID 산업화 대상’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물류·배송업체가 아닌 기업으로 RFID 대통령상을 받은 것은 이 회사가 처음이다.

황 사장은 “국내 패션업계와 백화점의 전산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면서도 “그러나 시스템이 완벽해도 전산 데이터와 실물이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기 쉽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확한 데이터 확보를 위해 많은 시간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으나 비용이 많이 들고 여전히 오차가 생긴다”며 “RFID를 활용하면 부정확한 데이터 처리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다”고 덧붙였다.
 
칩 가격 더 싸져야
제일모직은 앞으로 문을 여는 모든 ‘10 꼬르소 꼬모’ 매장에 RFID 시스템을 적용하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다른 브랜드에도 이 시스템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그러나 전 제품에 RFID 시스템을 도입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중저가 제품의 경우 장비 설치비는 물론, 개당 200~300원인 RFID 전자태그를 다는 게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이 회사 김강연 정보전략팀장은 “현재 RFID 시스템을 설치하려면 매장 한 곳에 평균 5000만원 정도가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정보기술(IT) 제품과 마찬가지로 RFID 시스템도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싸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시스템을 도입하는 곳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김 팀장은 “현재 95% 수준인 RFID의 인식 정확도를 높이고, 제품 라벨에 붙이면 거의 눈에 띄지 않도록 RFID 전자태그를 소형화하는 게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덧붙였다.

RFID 시스템의 성장 잠재력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바코드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수집·관리하는 기능 덕분이다. 시장조사 업체인 한국IDC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RFID 시장 규모는 2100억원대로 전년보다 20%가량 성장했다.

산업연구원 조현승 연구위원은 ‘RFID 활용 확산을 위한 정책 방향’이란 보고서에서 “RFID는 물류·유통은 물론 교통·보안·의료·식품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 응용할 수 있다”며 “RFID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갈수록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도 RFID를 앞으로 산업혁신을 주도해 나갈 신성장동력의 하나로 선정하고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대한상공회의소 배경한 RFID 사업팀장은 “RFID의 보편화는 언제쯤 ‘규모의 경제’에 도달해 가격이 크게 낮아지느냐에 달렸다”며 “RFID 전자태그 가격이 50원 정도로 내려가면 수요가 크게 늘 것”이라고 말했다.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는

현재 제품 관리에 널리 쓰이고 있는 바코드 시스템을 대체할 차세대 무선인식 기술. 이 기술을 활용하려면 제품에 바코드 대신 전자태그를 붙여야 한다. 전자태그 안에는 대개 수백 킬로바이트(KB)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초소형 칩과 안테나·집적회로가 들어 있다. 바코드 시스템은 빛을 쏘아 바코드 정보를 판독하지만 RFID는 무선 전파를 쏴 전자태그의 정보를 읽어 낸다.

따라서 RFID는 거리가 다소 떨어져 있더라도 전파가 닿는 범위 안에선 정보를 인식할 수 있다. 또 바코드가 기껏해야 10~20자리 숫자 정보를 담는 것과 달리 RFID칩은 자세한 제품 정보는 물론, 이미지까지 저장할 수 있다. 따라서 바코드가 같은 물건엔 동일한 번호를 부여하는 것과 달리 RFID는 같은 물건이라도 물건마다 다른 번호를 부여할 수 있다. 정밀한 재고 관리와 도난 방지가 가능한 이유다.

 RFID 인식 거리는 전파의 주파수에 따라 달라진다. 판독기에 가까이 갖다 대는 교통카드나 출입통제용 카드는 13.56㎒의 고주파를 쓰지만 유통·물류업체들은 최대 10m까지 인식할 수 있는 900㎒대의 극초단파를 많이 쓴다. 그래서 수퍼마켓에서 RFID를 활용하면 판독기가 설치된 곳을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계산을 마칠 수 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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