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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0> 녹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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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녹차밭은 향과 낭만이 그윽합니다. 첫물차가 나오는 데다 날씨까지 화창해서죠. 동양인은 BC 3000년께부터 녹차를 마셔 왔습니다. 유럽인은 18세기 이후에나 본격적으로 차를 마시기 시작했어요. 서양에선 홍차를 주로 마시지만 동양에선 녹차가 주를 이룹니다. 웰빙 열풍에 힘입어 최근 몇 년 새 우리 국민의 녹차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부쩍 커졌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녹차는 매우 친숙한 음료입니다. 차례(茶禮)·다방(茶房)·다반사(茶飯事)라는 용어는 우리 일상생활에 차가 얼마나 가까웠나를 잘 보여줍니다. 다반사는 ‘아주 흔히 일어나는 일’이란 뜻으로 식사 후 으레 차를 마셔온 데서 유래했습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한국·중국은 덖음차 일본은 찐차 즐겨

녹차·우롱차·홍차는 모두 차나무에서 채취한 잎을 원료로 해서 만들어진다. 발효 정도, 잎의 크기가 다를 뿐이다. 발효가 안 된 것이 녹차, 반쯤 된 것이 우롱차, 발효된 것이 홍차다. 대개 녹차는 작은 잎(소엽종), 우롱차·홍차는 큰 잎(대엽종)을 이용해 만든다.

녹차에서 발효는 김치·된장같이 미생물에 의한 발효가 아니다. 적당한 온도·습도에서 찻잎에 든 폴리페놀(항산화 성분)에 산화효소가 작용해 녹색이 황색이나 검은색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 발효 과정을 통해 차는 독특한 향·색·맛을 갖게 된다. 유럽인이 녹차보다 홍차를 즐겨 마시게 된 배경에도 발효가 있다. 18세기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인도산 녹차를 본국으로 수송했다. 당시 녹차를 싣고 가던 상선은 적도를 경유하는 긴 뱃길을 이용했고 뜨거운 열로 녹차 잎이 발효돼 검게 변했다. 고가의 차를 버리기 아까워 물에 우려내 마셨는데 이것이 블랙티(홍차)의 기원이다.

일반적으로 발효가 전혀 일어나지 않은 차를 불발효차, 발효 정도가 10~65%인 차를 반발효차, 85% 이상을 발효차라고 한다. 또 발효가 전처리 공정 뒤에 일어나는 황차·흑차를 후발효차라고 부른다.

불발효차의 대표 격인 녹차는 가공법에 따라 다시 덖음차와 증제차로 분류된다. 덖음차는 찻잎을 솥에서 바로 덖어(살짝 볶는다) 구수한 맛이 강한 차다. 한국·중국인은 녹차의 깊고 구수한 맛을 즐기므로 덖음차의 인기가 높다. 증제차는 찻잎을 고압의 증기로 찐 차를 가리킨다. 비타민 C 함량이 높고 진한 녹색을 띤다. 일본인은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선호하기 때문에 일본산 녹차는 거의가 증제차다. 일본에선 전차라고 불린다.

곡우 전에 딴 ‘우전’도 뛰어난 맛

녹차는 수확 시기에 따라 성분이 바뀌어 맛과 향이 다르다.

차나무에서 4월 20일~5월 10일께 딴 잎을 첫물차, 5월 중순~6월 중순에 딴 잎을 두물차, 8월 초순~중순에 딴 잎을 세물차, 9월 하순~10월 초순에 딴 차를 네물차라 한다. 품질은 첫물차가 가장 우수하다.

우전(雨前)·세작(細雀)·중작(中雀)·대작(大雀)으로도 분류한다. 우작은 곡우(4월 20일께) 전에 딴 녹차 잎이다. 봄비를 맞아 잎이 부드럽고 떫은 맛이 적다. 최고급 녹차는 모두 우전을 원료로 한 것이다.

우전옥로(雨前玉露)라는 최고급 차는 ‘햇볕을 받지 않도록 차광 재배한’(玉露) 우전으로 만든 녹차라는 의미다. 차광 재배하면 차의 떫은맛 성분(카테킨)이 줄어드는 대신 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이 증가한다. 또 엽록소 함량이 높아져 녹색이 더 짙어진다. 작설차는 우전으로 만든다. 세작은 찻잎이 참새 혀와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전보다는 덜하지만 부드럽고 뒷맛은 미세하게 떫다. 중작은 입하∼5월 중순께 수확한 잎이다. 이 잎으로 만든 녹차가 가장 흔하다. 대작은 5월 말까지 채취한 잎으로 크고 질기며 떫은맛이 강하다. 강한 태양의 소산이다.

외양은 겉모양이 가늘고 광택이 있으며 잘 말려진 것이 고급이다. 묵은 잎(연한 노란색)이 적고 손으로 쥐었을 때 단단하고 무거운 느낌이 드는 것을 산다.

우리 전통 차문화를 정립한 초의(草依)선사는 “차를 만들 때 정성을 다하고, 보관을 건조하게, 우려낼 때 청결하게 하면 다도를 다하는 것”(다신전)이라 했다. 그만큼 보관이 중요하다. 녹차를 고온·고열·다습한 곳에 두면 산화하거나 변질되기 쉽다.

보관할 때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습기가 녹차의 천적이라는 사실이다. 또 녹차는 다른 냄새를 빨아들이는 성질이 있다. 따라서 진공팩에 넣어 냉동실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밀봉이 불완전한 녹차를 냉장실에 넣어두면 고기·생선·김치 등의 냄새가 스며들어 고유의 향이 사라진다.

여름엔 물 먼저 넣고 겨울엔 차 먼저 넣고

녹차의 맛은 오묘하다. 쓴맛(카페인)·떫은맛(카테킨)·감칠맛(데아닌)을 모두 갖고 있다.

고가의 녹차라 할지라도 잘 우려내지 않으면 제값을 못한다.

가장 맛있게 찻잎을 우려내려면 찻잎의 품질은 물론 수질, 우리는 물의 온도, 투다법, 우리는 시간, 차 그릇 등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칼슘·망간 등 미네랄이 다량 함유된 물을 찻물로 쓰면 침전이 생겨 차가 혼탁해진다. 찻물로는 정수기물이나 깨끗한 샘물이 적당하다. 불가피하게 수돗물을 써야 한다면 물이 끓기 시작할 때 주전자 뚜껑을 열고 1~3분 더 끓인다. 수돗물에 잔류 가능한 염소(소독제)를 날려보내기 위해서다.

찻물의 온도도 중요하다. 고급 잎차는 50∼60도의 물에 넣어 1분가량 우려낸다. 감칠맛이 나는 아미노산이 이 온도에서 가장 잘 우러나서다. 티백 녹차라면 70∼80도의 물에 30초가량 우려내야 떫은맛(타닌) 성분이 적게 나온다.

차와 물을 찻그릇에 넣는 것을 ‘투다’(投茶)라고 한다. 투다법에 따라 녹차의 맛·향·빛깔이 달라진다. 상투·중투·하투가 있다. 상투는 물을 먼저 넣고 차를 그 위에 넣는 것이고, 중투는 물을 반쯤 넣고 차를 넣은 다음 다시 물을 넣는 것이며, 하투는 차를 먼저 넣고 물을 붓는 것이다. 상투는 더운 여름에, 하투는 추운 겨울에, 중투는 봄·가을에 적당한 방법이다. 요즘은 하투법이 널리 쓰인다.

빨리 식는 자기로 만든 다기 좋아

다기의 선택도 차 맛에 영향을 미친다. 녹차는 뜨거운 물을 부었을 때 빨리 식는(보온력이 약한) 자기 재질의 다기에 담는 것이 좋다. 온도가 높으면 떫은맛을 내는 카테킨 성분이 많이 용출돼서다.

반발효차인 우롱차는 보온력이 강한 사기 재질의 다기가 적당하다. 일반인이 가장 흔히 마시는 티백 제품이라면 ▶정수기의 물을 온수 3, 냉수 1의 비율로 맞춘다(온도 70도) ▶바로 티백을 넣는다 ▶20초가량 지나 찻물이 번지면 좌우로 10~15회 흔든다(진한 맛을 원하면 흔드는 횟수를 늘린다) ▶티백을 꺼내 마신다

가루차는 찬 생수에 넣어 마시는 것이 좋다. 우유·사이다·요구르트에 섞어 마셔도 된다. 라면·피자·칼국수 등 요리에 첨가해 즐기는 방법도 있다.

항산화·항암에 지방 축적 억제 효능

녹차는 두 가지 소중한 웰빙 성분이 들어 있다. 카테킨과 데아닌이다. 이 중 카테킨은 유해산소를 없애는 항산화 성분이자 항암 성분이다. 녹차가 암 예방을 돕는다는 것은 동물실험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확인됐다. 녹차에 10∼18%나 든 카테킨이 암의 성장을 늦추고 암세포의 자살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녹차의 EGCG(카테킨의 일종)를 천연물 항암제로 개발 중이다.

인간의 암 예방에 녹차가 유효하다는 역학조사 결과도 다수 나와 있다. 유명한 녹차 산지인 일본 나카가와네 지역의 위암 사망률이 일본 전체 평균의 20%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 좋은 예다. 이 지역 주민의 녹차 하루 소비량은 5∼10잔으로 전국 평균의 5배다. “암을 예방하려면 녹차를 하루 5잔 이상 마셔라”는 말은 이래서 나왔다.

녹차는 혈압 조절에도 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도 카테킨이 주역이다. 카테킨이 안지오텐신 변환효소의 활동을 억제해 안지오텐신 Ⅱ(혈압을 올리는 물질)가 덜 생성되도록 한다.

카테킨은 혈관 건강에도 유익하다. 혈관에 축적되는 유해산소를 항산화 성분인 카테킨이 없애줘서다.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도 낮춰준다. 미국 예일대 연구팀은 한국·일본인이 담배를 많이 피우는데도 불구하고 서구인보다 동맥경화·폐암 발생률이 낮은 것은 녹차 소비량이 많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이들은 이를 ‘아시안 패러독스’라고 명명했다. 프랑스인의 심장병 사망률이 미국·영국·독일 등 다른 서구인보다 낮다는 이른바 ‘프렌치 패러독스’의 비결이 적포도주의 항산화 성분인 라스베라트롤이라면 ‘아시안 패러독스’의 핵심은 녹차의 카테킨인 셈이다.

카테킨은 또 지방 축적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 식사 후나 운동하기 전에 녹차를 마시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게다가 녹차는 열량이 거의 없다. 전문가들은 체중 감량이 목적이라면 녹차를 하루 세 잔 이상, 6개월 이상 꾸준히 마실 것을 권한다. 녹차의 카테킨은 세균을 죽이는 항균 효과를 지닌다. 식중독 사고가 잦은 여름이나 상하기 쉬운 음식을 먹을 때 녹차를 곁들이라고 권하는 것은 이래서다. 카테킨은 충치균의 성장을 억제하고 입안의 유해 세균을 죽여 치아 건강에도 이로운 성분이다.

데아닌은 녹차의 ‘숨은 보물’이다. 아미노산의 일종인데 녹차에만 들어 있다. 특히 우전에 풍부하다. 데아닌은 심신을 안정시키고 혈압을 낮추며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의 뇌파인 알파파를 발생시켜 집중력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습능력을 높여 수험생에게 유익한 성분이다.

녹차에 함유된 각성 물질인 카페인의 작용을 억제한다. 녹차에 카페인이 들어 있는데도 마시면 흥분·각성보다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고 혈압도 안정되는 것은 데아닌 덕분이란 분석도 있다.

많이 마시면 속 쓰리고 변비 원인 될 수도

녹차엔 카페인이 들어 있다. 커피에 든 카페인의 60%가량이다. 데아닌 덕분에 커피의 카페인보다는 인체에 영향이 적다. 그러나 카페인에 예민한 사람은 잠들기 서너 시간 전엔 녹차를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또 과다 섭취하면 위벽이 손상될 수 있다. 카페인·카테킨·타닌이 위점막을 자극해서다. 위궤양 등 위장질환이 있는 사람이 너무 자주 마시는 것은 곤란하다. 타닌의 과다 섭취는 변비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빈혈 환자나 임신부와도 궁합이 맞지 않는다. 녹차의 타닌이 철분의 체내 흡수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철분이 든 빈혈약이나 금속 성분이 함유된 위장약을 복용할 때는 30~60분 간격을 두고 차를 마시라고 권하는 것은 이래서다. 치아 미백 중인 사람도 녹차가 치아에 착색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게 좋다. 혈압이 높은 사람에겐 세작보다 중작이 추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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