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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의 영광이 새겨진 땅 돌궐의 후예들은 부활을 꿈꾼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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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호 04면

1 우즈베키스탄의 부하라에서 만난 아이들

당나라 괴롭히던 돌궐, 중앙아시아 장악
대조영(大祚榮)이 활동하던 시기에 돌궐은 당을 끊임없이 위협했다. 과거 흉노(匈奴)가 진(秦)을 괴롭혔던 것처럼 중국 역사에는 돌궐을 비롯한 몽골·여진·거란 등 만리장성 너머의 유목민과 중국 본토 한족의 충돌 및 교류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태어나면서 유목을 위해 말을 타고 사냥하던 중국 변방의 유목민은 평시에 농사를 짓는 정착민보다 전투력이 월등했다. 이러한 논리를 보면 지금 세상은 유목민의 세상이 되어야 한다.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의 문화 그리고 한국

그러나 유목민은 고질적으로 권력 승계의 암투가 불거지면 집단 전체가 사상누각처럼 와해되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돌궐 역시 권력 승계 문제로 분열되면서 이 틈새를 놓치지 않고 공격한 당에 의해 일부는 복속되고(동돌궐), 나머지는 중앙아시아로 도주했다(서돌궐). 이것이 바로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투르크의 1차 남하다. 이후 2차 투르크 남하가 중앙아시아에 전개되어 이 집단과 전혀 상관없었던 페르시아 영향권의 해당 지역이 점차 ‘투르크화’되어 갔다.

2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의 상징물. 대통령 궁 앞에 있다

중앙아시아는 역사적으로 다른 지역과 차별되는 독자적인 민족과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호레즘·소그드·박트리아’라고 불리는 집단들이 초기 국가를 건설하였으며 주변 페르시아 등과 교류하였다. 그러나 이후 페르시아계 국가들과 알렉산더 대왕의 침략 등을 받으면서 고유의 민족적ㆍ문화적 전통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투르크·아랍·몽골·러시아 등과 같은 동시대의 동서양 강대국들에 의해 침략과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현재 위 3국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전체의 민족적ㆍ문화적 구조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다층적 특징을 보인다.

3 투르크메니스탄 마리 지역의 사원들

이런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주민 대부분이 투르크계 민족이고 그들의 문화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투르크’가 대표성을 확보한 것이다. 하지만 투르크 문화 역시 페르시아와 이슬람의 바탕 위에서 공존하며 서로 영향을 주면서 진화되어 왔다. 특히 이러한 문화적 특성 위에 근대 이후부터 러시아 및 소비에트 문화가 이 지역을 지배하면서 중앙아시아 문화 전체를 재구성했다. 결과적으로 중앙아시아에 존재하는 페르시아·투르크·이슬람 문화는 그 자체의 원형에서 변형되어 현재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중앙아시아의 이슬람은 중동의 그것과는 다르다. 하루 다섯 번 예배하는 것과 금요일 집단예배도 성실히 따르지 않으며, 여성의 지위나 옷차림도 종교에서 상당히 자유롭다.

페르시아+투르크+이슬람+러시아 문화
이제 위와 같은 사실을 바탕으로 위 3국의 문화적 특성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카자흐스탄의 토착 민족인 카자흐인은 15세기께부터 중앙아시아 무대에 나타나 지금의 국가를 이루었다. 카자흐인은 투르크 유목 문화의 전통을 유지하였으며 이슬람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소비에트 체제는 그들에게 말(馬)에서 내려와 정착생활을 하도록 명령했다. 이에 불복하고 유목생활을 고집하려던 카자흐인은 소비에트 군대에 의해 무참히 사살됐다. 소비에트 체제하에서 카자흐스탄은 핵실험장으로, 그리고 우주선 발사기지 등으로 이용당하면서 버려진 땅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소련 붕괴 이후 카자흐스탄은 카스피해 석유를 개발하면서 과거의 굴욕을 벗어던지고 중앙아시아 경제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토착 민족인 우즈베크인 역시 카자흐인과 비슷한 시기에 이 지역에 국가를 만들었다. 우즈베키스탄은 위에서 언급한 중앙아시아의 다층적 문화 구조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지역이다. 따라서 민족의 형성도 투르크계 특성이 명확한 카자흐인과 달리 페르시아+그리스+투르크+러시아인 등의 영향이 나타난다. 주민 다수가 순수한 투르크적 특성의 얼굴이 아니라 다양한 민족적 특성을 부분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투르크메니스탄 역시 우즈베키스탄과 유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다. 결과적으로 순수한 북아시아계 투르크적 특성을 가진 카자흐인, 주변 민족들과 동화된 우즈베크인, 그리고 투르크멘인은 외관상 명백한 차이를 나타낸다. 우즈베키스탄은 사마르칸트·부하라·히바 등과 같은 유명한 비단길의 오아시스 도시들을 보유하고 있어 찬란한 역사를 보여 준다. 지금도 과거 비단길을 소통시킨 허브의 기능을 부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투르크메니스탄 역시 보유하고 있는 엄청난 양의 천연가스를 개발하여 비단길 부활에 참여하고 있다.

위 3국은 투르크 문화를 바탕으로 페르시아, 그리고 이슬람 문화가 공존한다. 예를 들면 위 3국의 공통된 새해에 해당하는 나브루스(Navruz·양력 3월 21~22일)는 페르시아 문화에 속한다. 그리고 복식·음식 등의 문화는 투르크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슬람의 경우 국가마다 약간 차이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국기다. 카자흐스탄은 자국 국기에 이슬람 상징인 별이나 초승달이 없다. 반면에 두 국가는 이 같은 상징이 있다. 식사할 때에도 우즈베키스탄은 식사 후 기도를 드리지만 카자흐스탄은 식사 전 기도를 드린다. 이러한 차이점은 결국 3국이 가지는 역사적 문화 형성의 차별성에 기인한다.

대가족·장유유서 등 한국과 유사한 전통
위 3국은 크게 유라시아 문화권에 속하며 북방아시아에 문화적 뿌리를 두고 있어서 우리와 유사한 점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대가족 제도, 장유유서(長幼有序) 전통, 집단공동체 등이다. 실제로 한국 사람이 이 지역에 살면 다른 국가들보다 더욱 친근감을 느끼는데 이는 이 같은 사실 때문이다.

우리는 최근에야 한국과 중앙아시아가 교류를 전개한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과 한반도의 교류는 긴 역사를 가지며 단절이 아니라 지속성을 띠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인 사마르칸트에서 7세기 중엽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벽화가 발견됐는데, 여기에는 조우관(鳥羽冠·새의 깃털을 꽂아 장식한 고구려인의 모자)을 하고 있는 한반도 사신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8세기에는, 비록 당의 장수였지만, 우리의 조상인 고선지(高仙芝)가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를 정벌하였다. 이후 그는 세계사에도 기록된 전투인 ‘탈라스 전투’에서 아랍에 패하였지만, 우리의 기상을 전 세계에 알렸다. 과거 비단길의 중간 기착지이자 물류의 허브였던 이곳을 통해 고려의 도자기가 거래되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한반도와 지속적으로 교류했던 위 3국의 민족은 소련 붕괴 이후부터 갑작스럽게 한국과 교류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특히 이러한 교류의 지속성에 공헌한 사람들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극동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이다. 그들은 이 지역에 정착하면서 한민족의 우수성을 알렸으며 한류의 옹달샘을 일찌감치 파 놓았다. 김치·국수 등과 같은 우리 전통 음식이 이미 이곳 현지인에게는 인기가 높다. 그래서일까 ‘대장금’ ‘주몽’ ‘장보고’ 등 한국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만리장성을 넘어 중앙아시아로 한류가 새로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문화적으로 유사한 특성을 가지는 한국과 이 지역은 앞으로도 교류의 전망이 밝을 것이다. 이제는 도자기나 비단이 아니라 휴대전화·자동차·정보기술 등을 가지고 우리는 그들을 만날 것이며 그들은 이러한 한국 제품을 인정하고 세계로 알리는 역할을 할 것이다. 유라시아의 비단길이 지금 부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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