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의 향기

영어를 배우는 까닭은

중앙일보

입력 2009.05.08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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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지난해 여름이 끝나갈 무렵, 서울 교외의 콘도에서 내가 근무하는 대학의 전체 교수회의가 있었다. 일정을 마친 후 나는 혼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놀이공원에 들렀다. 공원 안에 신라시대에 건립된 절이 있다는 말을 듣고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산길을 올라갈 때와 달리 내려올 때는 특별한 흥분에 휩싸였다. 엄숙하면서도 경건한 염원 같은 것이었는데 새로운 차원의 행동과 사고를 요구하는 듯한 강렬함이 있었다. 오랜 세월 이 산길을 오르내리며 도를 닦은 스님들의 혼이 와 닿았던 것일까. 그리고 신기하게도 무의식 중에 나는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내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서 스스로 다짐하고 있었다.

나는 독도 영유권에 대해 연구해온 학자로서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미국 등 세계 만방에 우리의 주장이 널리 받아들여지도록 완전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차근차근 세계 여러 나라에 알려야 한다. 그 일을 하는 데 내가 조금이나마 힘이 된다면…. 욕구가 솟아올랐다. 절에 올라 떠오른 그 염원은 내려오는 길에 더욱 구체화됐다.

신기하게도 그 염원이 그 후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먼저 한국에 공부하러 온 일본 학생들에게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은 한·일 관계사, 그 다음은 독도에 관한 일본어 강의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 내 독도 강의를 들은 일본 학생들의 후일담에서 “독도에 대해 잘 몰랐지만 이 강의를 듣고 독도가 한국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는 말을 듣고 큰 보람을 느꼈다. 올 9월에는 120명 정도의 일본인이 내 강연을 듣기 위해 일부러 한국에 찾아올 예정이다.

내가 근무하는 대학에서는 ‘독도종합연구소’ 개설 허가를 받았고, 현재 개소식 준비가 진행 중이다. 이어서 미국과 호주 등에서 강연과 심포지엄 발표 등의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늦여름에 샘솟았던 염원들이 지금 한꺼번에 실현되는 신기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걸림돌은 내가 영어가 능숙하지 못하다는 데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주로 한국어에만 열심이었고 영어 회화에는 소홀했다. 그래서 내가 세계를 향해 독도에 관한 주장을 널리 알리겠다고 굳은 결심을 해도 영어를 못하면 현실적인 벽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이달 초 미국 독도수호위원회에서 워싱턴 프레스센터에서 독도에 대한 발표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자 나 스스로 비상이 걸렸다. 학원에 다닐까도 생각했지만 시간을 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 달 전쯤 조교에게 부탁해 그의 미국인 친구 2명을 소개받아 1주일에 한두 차례 그들과 영어 공부를 했다.

그런데 요즘 읽은 책에 ‘영어를 문법 위주로 글자를 통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소리부터 배워야 한다. 다른 언어도 마찬가지다. 뇌 속에 언어별 고유영역을 만들어야 한다’고 나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영어 공부 방법을 소리와 리듬 위주로 바꿨는데 효과가 있었는지 며칠 전 미국인들 앞에서 모의 발표를 했더니 열심히 연습한 것 같다며 상당히 놀라는 표정이었다. 여러 언어를 잘하면 행동범위가 넓어지고 자신이 염원하는 일을 심도 있게 펼쳐 나갈 수 있다. 나에게는 지금 한국어·일본어·영어, 그 다음에는 중국어가 남아 있다. 여러 언어를 습득하면 할수록 그 언어들을 통해 세계를 향해 더 많이 독도를 알릴 수 있다. 꿈이 커진다. 나는 아직 할 일이 많아 마음이 설렌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일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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