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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은퇴 뒤 ‘놀 시간’ 30년, 고스톱만 칠 수 있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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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바빠도 카네이션 사들고 부모님을 찾아뵈어야죠. 날씨만 궂어도 쑤시다 하시더니 큰 병은 아닌지, 돈 아낀다고 먹고 싶은 거나 제대로 사드시는지 문득 궁금해지네요. 늘 ‘우린 괜찮다’ 하시지만 그게 내 새끼 근심 덜어주려는 말이라는 걸 왜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한 번쯤 ‘우리 부모님은 어떤 시간을 보낼까’도 생각해 봤나요. 혼자서 매일 동네 뒷산을 오르는 아버지, 가끔씩 친구들과 ‘찜질방 수다’를 떨고 오는 게 낙인 어머니 얘기를 들으며 ‘그 나이엔 다 그런 거지’라고 안심하진 않았나요. 어쩌면 부모님들의 ‘삶의 질’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항시 ‘바쁘다 바빠’를 입에 달고 사는 우리에게 노년의 여가는 쉴 수 있는 자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일흔 다섯. 태클을 피해 뛰어오른 권석희 할아버지의 나이입니다. 눈앞에서 보고도 믿기 어렵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나이란 정말 숫자에 불과한가 봅니다.

하지만 즐거운 노년은 그냥 찾아지는 게 아닙니다. 돈 있다고, 건강하다고 따라오는 것도 아니죠. 더구나 먹고살기 바빠 제대로 놀아본 적도 없는 부모님들이 은퇴 뒤에 갑자기 즐거움을 찾아내긴 쉽지 않죠. 통계상으로도 취미생활을 하기보다는 가족·친구처럼 익숙한 사람들과 만나며 시간을 보내는 어르신이 많고(51%), 평생교육 프로그램이나 자원봉사를 해봤다는 분도 10명 중 2명이 채 안 됩니다(2004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뭘 새로 배우기도 겁이 나지만 누구랑 해야 하는지 고민하다 보면 포기하기 일쑤일 테죠. 나라면 맘껏 여행도 떠나고 책도 실컷 읽겠다 싶지만 어디 노후라는 게 하루 이틀 휴가인가요.

week&은 잘 놀면서 여생을 즐기는 어르신들을 찾아봤습니다. ‘인생은 70부터’라는 말이 실감나게 취미에 푹 빠진 할아버지·할머니들, 아예 젊은이들과 함께 소싯적 꿈을 이룬 ‘예비 실버’를 만났습니다. 우리 부모님도 그렇게 못 즐길 이유가 있나요. 올 어버이날, 부모님들께 ‘재미난 여생’을 선물해 보면 어떨까요.
 
글=이도은·한은화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그라운드 누비는 노익장 성동구 70대 장수 축구단
100m 15초, 몸싸움은 기본 … “골이 보약”

70대 이상만 들어갈 수 있는 축구단이 있다. 회원 서른 명의 평균 나이는 74세. 최고령 선수는 82세다. 4년 전 창단한 ‘성동구 70대 장수 축구단’이다. 이 축구단이 모델이 돼 이후 서울엔 9개, 전국엔 35개의 70대 팀이 생겼다.

지난달 26일 서울 성북동 성북구민체육관 옆 축구장에선 이들과 성북구 팀의 친선경기가 벌어졌다. 할아버지 선수들의 몸놀림이 예상을 뛰어넘었다. 요리조리 공몰이를 하고, 헤딩도 서슴지 않는다. 골키퍼는 골을 막아내려고 거침없이 몸을 날렸다. 이날은 10일 열리는 ‘서울시장배 70대 축구대회’를 앞두고 있어 여느 때보다 몸싸움이 격렬했다. 한 쿼터당 25분씩, 4쿼터 경기를 내리 뛰는 선수도 있었다. 2쿼터를 뛰고 교체돼 나온 김오득(75) 할아버지에게 “어르신들이 괜찮으냐”고 하자 “100m를 15초 안에 뛰는 사람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구양회(72) 할아버지는 “우리가 워낙 체력이 좋으니까 상대 팀에선 60대 ‘젊은 애들’까지 편법으로 넣는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평균 나이 74세의 성동구 장수 축구단. 주말마다 모여 공을 차다보면 성인병·신경통을 모르고 산다.

축구 팀은 주말에만 모이지만 회원들은 매일 아침 동네 조기 축구회에 나가 몸을 다진다. 모두 30년 이상 축구를 취미로 해온 이들이다. 그래서 비가 오거나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도 쉬는 법이 없다. 주말 경기라도 잡히면 일주일 내내 음식을 조절하고 술·담배를 멀리한다. 처음에는 무리한다며 걱정하던 가족들도 이젠 응원군이 됐다. 이들은 친구들에게 흔한 성인병·신경통을 모르고 산다.

단장인 이기필(74) 할아버지는 3년 전 초기 위암 수술을 받고 두 달 만에 운동장에 나왔다. 몸무게를 7㎏ 줄이고 나니 오히려 몸이 가벼워져 뛰기가 더 좋아졌다고 한다. 전재련(74) 감독은 2년 전 다쳐서 다리에 철심을 박았지만 여전히 축구장을 지킨다. 이 할아버지는 “공을 차며 스트레스도 풀고 한 골까지 넣는 날엔 더한 보약이 없다”며 “이젠 안 뛰면 오히려 병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막내인 김무(70) 할아버지는 “축구는 뛰면서 순간적으로 판단을 해야 하는 운동이라 노인들 두뇌 회전에 좋다”며 “새벽에 유럽 프리미어 리그를 챙겨보며 공부하는 것도 팀원들의 공통된 일과”라고 했다. 이날 경기는 1대1로 비겼다. 벤치로 돌아오는 선수들 중에 유난히 땀에 흠뻑 젖은 홍종학(77) 할아버지가 있었다. 경기마다 뛰는 ‘실질적 최고령 선수’다. 어르신께 언제까지 축구를 할 거냐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스무 살 때만 해도 40대까진 뛰겠구나 했는데 벌써 여든을 바라봐. 몸싸움을 해서라도 지기 싫은 마음은 똑같지. 그러니 이젠 80대 축구단도 한번 만들어 볼까?”

‘실버 원더걸스’ 송파구 차밍리더팀
84세 할머니도 리듬 따라 ‘노바디 노바디~’

“트로트는 싱겁지. 원더걸스의 ‘노바디(nobody)’ 정도는 돼야 춤출 맛이 나.”

이문규(67) 할머니는 서울 삼전동 송파노인종합복지관의 목요일 댄스 강좌의 열혈 수강생이다. 21명의 다른 할머니와 함께 춤을 배우는 이 할머니는 이 강좌의 막내. 대부분의 할머니가 70대다. 모두 2~3년 넘게 춤을 배우다 보니 아예 공연팀도 만들었다. ‘송파구 차밍리더팀’이다.

요즘은 노바디 춤 연습이 한창이다. 7일 열리는 ‘송파 스타킹 대회’ 본선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구민 중 끼 있는 스타를 발굴하는 대회다. 초등학생부터 참가한 행사에서 할머니들은 이미 2대1의 경쟁을 뚫고 예선을 통과했다.

“우리도 원더걸스와 똑같이 춰요.” 7일 열리는 ‘송파 스타킹 대회’를 앞두고 연습에 한창인 송파구 차밍리더팀.

‘노바디 노바디~’ 노래가 흘러나오자 오른쪽 손등을 턱에 붙이고 엉덩이를 뒤로 빼는 요염한 자세가 나온다. 제법 앙증맞은 손동작도 막힘이 없다. 한두 가지 어려운 것을 빼고는 원더걸스가 하는 그대로다. “엉덩이를 더 뒤로 빼세요. 얼굴은 환하게 좀 웃으시고!” 오혜영(47) 강사가 우렁찬 목소리로 기운을 불어넣자 할머니들은 더 신이 난다.

‘송파구 차밍리더팀’은 복지관 행사 외에도 큰 공연만 연간 네다섯 차례 한다. 입소문이 나면서 외부 단체의 공연 요청도 들어온다. 지난해엔 ‘전국 어르신 탁구대회’에 치어리더팀으로 나섰다. 화려한 의상을 입고 완벽하게 최신 댄스를 구사하는 할머니들 덕에 경기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팀의 최고령자인 최미(84) 할머니는 ‘나이 제한’에 걸려 이번 무대에 서지 못한다. 워낙 서로 나가고 싶어 해 자격을 77세 이하로 정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 할머니는 연습을 거르지 않는다.

“계속 춤을 추니까 몸도 유연해지고, 소화도 잘 되는 것 같아. 딱히 아픈 데도 없어 병원에도 안 간다니까. 그리고 선생님이 다음 번엔 제일 앞에 세워 준다니 꾸준히 연습해야지.”

7년째 강좌를 이끄는 오 강사는 “수업을 듣는 어르신들은 최신 댄스만 골라 배우고 싶어 하는 매니어”라며 “손자랑 똑같은 춤을 출 수 있어 즐거워하신다”고 말했다. 동작이 외워지지 않을 때는 동영상을 찍고 공책에 동작을 적는 분들도 있단다. “처음엔 박자 맞추기도 힘들어 하셨는데, 지금은 MC몽의 서커스, SG워너비의 라라라, 원더걸스의 텔미 등 웬만한 최신곡은 다 소화하세요.”

마음이 젊어서일까. 할머니들은 언뜻 보면 70대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곱게 화장을 한 건 둘째치고 옷 입는 센스도 남다르다. 차밍리더 팀 단장 박춘미(76)씨는 “음악에 맞춰 춤추다 보면 젊어지는 느낌”이라며 “이제는 남들 앞에서 춤추는 것도 떨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효은 기자

트로트 부르기 디카 다루기 공짜로 가르쳐 드립니다

트로트를 구성지게 부르는 방법부터 디지털카메라로 사진 찍는 방법까지 모두 무료로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다. 서울시내 구마다 있는 노인종합복지관을 이용하면 된다. 평균 60세 이상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일부 복지관의 경우 부부가 함께 신청할 때 둘 중 한 명만 60세가 넘으면 다른 사람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곳도 있다.

복지관마다 네 가지 테마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한글·영어·일본어·중국어 등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교양 교육 프로그램, 서예·가요·하모니카·만돌린·미술·풍물 등을 배우는 취미 여가 프로그램이 있다. 또 요가·단전호흡·스포츠댄스 등을 배울 수 있는 건강 증진 프로그램과 컴퓨터를 배울 수 있는 정보화 교육도 인기다. 또 노인들이 함께 어울리며 취미 활동을 할 수 있게 각종 클럽을 운영하기도 한다. 등산·사진·고적답사 등 마음에 드는 활동을 골라 가입하면 된다.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에 문의하면 살고 있는 동네와 가까운 복지관을 소개해 준다.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 02-702-6080, www.kaswcs.or.kr

이색 강좌도 많다. 서울 신림동에 있는 ‘관악문화관·도서관’에서는 ‘어르신 동화구연가 양성 과정’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동화 구연의 이론부터 실습 과정까지 차근차근 배울 수 있다. 만 55세 이상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강좌도 있다. 대전시 덕암동의 대덕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노인들이 현재 겪고 있는 갈등을 줄이고 죽음을 편히 받아들이는 마음을 갖추도록 교육하고 있다. 이외에도 경기도 수원여대 평생교육원의 ‘실버 마술가 과정’, 충남 백석문화대 평생교육원의 ‘실버 세대를 위한 재미있는 인문학’ 강좌도 인기다. 평생교육진흥원이 교육과학기술부와 함께 전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소외 계층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평생교육진흥원 02-3780-9700, www.nile.or.kr

은퇴 뒤엔 늦어요, 놀거리 현역 때 찾으세요

즐거운 노년은 하루아침에 시작되지 않는다. 놀 줄 아는 사람만이 시간이 나도 제대로 즐기는 법. 그래서 돈·건강만큼이나 ‘휴(休)테크’도 중요한 노후 대비다. 서울대 한경혜(아동가족학) 교수는 “아직까지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이 ‘일하고 쉬고 놀고’가 아닌 ‘일하고 쉬는’ 구조이기 때문에 ‘놀이’로서의 여가는 노년에 갑자기 닥친다”며 “은퇴 전 여가를 위한 연착륙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전문가들로부터 노하우를 들어봤다.

은퇴 5년 전부터 생각하라 50대에 ‘노인이 된다’는 걸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이때부터 노년 여가와 관련된 일에 ‘눈도장’을 찍어 둔다. 가령 동네 복지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어떤 프로그 램이 있는지, 주변에 비슷한 나이의 이웃이 있는지 눈여겨봐둘 필요가 있다. 또 취미가 없었다면 이때부터는 하나를 골라 실천해 보자. 은퇴 뒤 뭘 배우려면 쉽게 의욕이 꺾이며 중도 포기할 수 있다. 마음이 여유로운 ‘현역’ 때 익숙해지는 것이 좋다.

‘한(恨)’을 풀어라 살아오면서 진짜 배우고 싶고, 하고 싶었던 일부터 생각하라. 대학을 가기 위해,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했던 일이 아닌 목적 없이 순수한 기쁨을 찾을 때다. 철학 공부, 여행 떠나기, 자원봉사 등 직장과 가족에 얽매여 하지 못했던 것을 리스트로 만들어 볼 것. 당장 재취업에 연연하기보다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야 ‘노년은 즐겁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시간 때우기로 보지 마라 젊은이에게 놀이는 파트타임(part time)이지만 노인들에겐 풀타임(full time) 레저다. 더구나 평균 수명을 고려할 때 은퇴 뒤 보낼 시간은 30년이 넘는다. 그래서 시간을 때우는 소일거리를 찾기보다 장기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가를 염두에 둬야 한다. 예를 들어 여행을 좋아한다면 떠나는 계획에 그치지 않고 인터넷·잡지 등에 여행기를 기고한다거나, 사진을 배운다면 언젠가 전시회를 연다는 목표를 세우는 식이다. 운동 하나를 시작하더라도 80대까지 무리 없이 꾸준히 즐길 수 있는 것으로 골라야 후회가 없다.

명함 없이 사람을 만나라 젊었을 땐 인간 관계가 학연·지연으로 엮이거나 ‘내게 필요한 사람’인지 따지기 쉽지만 은퇴 뒤엔 그럴 필요가 줄어든다. 만나서 행복한 사람, 관심사가 통하는 사람과 더 가까워지게 마련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땐 직업·경력보다 나와 대화가 통하는지부터 알아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부부가 함께 준비하라 일본에선 직장에만 파묻혀 살던 남편이 퇴직 뒤 24시간 아내만 졸졸 쫓아다니는 걸 두고 ‘젖은 낙엽족’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다. 은퇴 뒤 서로를 귀찮아하지 않고 지내려면 함께 즐길 수 있는 취미를 미리 점찍어둬야 한다. 이미 다른 취미를 갖고 있는 경우라면 남편의 친구, 아내의 친구를 서로 알아두고 소모임을 만들어 두면 좋다.

‘세대 초월’ 잔다리 밴드 예순살 ‘큰 누님’의 첫 무대 “즐거운 인생을 찾았어요”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서교동 ‘잔다리 밴드’의 지하연습실에선 기타와 드럼, 키보드가 어우러진 전자음으로 가수 럼블피쉬의 ‘비와 당신’이란 곡이 흘러나왔다.

‘이제 괜찮은데 사랑따윈 저버렸는데, 바보 같은 난 눈물이 날까.’ 곡의 마지막 소절이 끝났다. 박자가 딱 맞아떨어지지 않아서일까, 연습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아이, 공연 끝나자마자 처음 상태로 돌아왔네.”

잔다리밴드는 멤버가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왼쪽부터 차정호·최준원·이갈릭·김정련씨.

보컬 차정호(57·여)씨가 쑥스러운 듯 폴짝폴짝 뛰었다. 그 모습에 멤버들의 웃음이 쏟아졌다. 잔다리 밴드는 멤버가 20대부터 60대까지 ‘세대를 초월한 팀’이다. 이날 밴드는 지난달 23일 서울 서교동에서 열린 ‘나이 없는 날’의 공연 후 첫 연습을 했다.

마포구가 홍대 문화 전파를 위해 기획한 ‘나이 없는 날’ 행사에 나가기 위해 젊은 인디밴드와 서교동 지역주민들이 만든 밴드다. 멤버에는 30년 넘게 서교동에서 피아노학원을 운영해 온 김정련(60·여)씨, 교회 성가대 경력 20년의 차씨, 서교동 자치회관 기타교실을 운영하는 최준원(54)씨와 인디밴드 멤버인 드러머 박민호(38)씨, 기타리스트 김해원(27)·이갈릭(26)씨가 합류했다.

팀의 최고 연장자인 김정련씨는 ‘밴드에서 키보드를 연주해 보지 않겠느냐’는 구청의 제안에 처음엔 많이 망설였다. 김씨는 “쇼팽·베토벤만 쳐오던 내가 인디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젊게 살고 싶어 도전했다”며 “이 나이에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야말로 하늘이 준 기회”라고 했다.

밴드는 지난달 초에 만났다. 처음엔 나이든 이도, 젊은이도 모두 어색했다. 이때 김씨가 팀의 막내인 이갈릭씨에게 “야, 날 너희 엄마처럼 생각해”라고 말했다. 이에 이씨가 “큰누님”이라고 받아쳤다. “그럼 나는 작은 누님이네.” 보컬 차씨도 나섰다. 서먹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사라졌고, 모두 ‘음악’에만 열중했다. 이들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Can’t help falling in love’ 등 3곡을 마스터하기 위해 매주 다섯 번을 만나 연습했다.

공연 당일, 김씨는 빨간 돋보기를 쓰고 가슴엔 큼지막한 빨간 꽃을 달았다. 차씨는 머리를 닭볏처럼 세워 올리고, 빨간 하이힐에 미니스커트를 입었다. 공연장에 온 김씨의 친척들은 “진짜 재밌고 행복하게 산다”며 축하했다. 김씨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고 했다. 그날은 이순에 접어든 김씨가 처음 누려 본 ‘김정련의 날’이었다.

김씨는 그동안 한번은 사보고 싶었던 ‘분홍색 반짝이 구두’를 홍대 앞에서 샀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꺼려해 못 사던 구두였다. 김씨는 “5월에 있을 공연 때도 신고, 평소에도 신고 다닐 거야”라고 했다. 손톱에는 연두색 매니큐어도 칠했다. 김씨는 “젊은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는 밴드 연습 시간이 제일 기다려진다. 나는 정말 즐거운 인생을 찾았다”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그 카페는 55세 미만 ‘연소자 출입금지’

“하루 종일 노인정에 앉아 고스톱을 치다 보면 참 지루해. 그렇다고 마땅히 갈 곳도 없고….”이명자(67·여·서울 목동)씨의 말처럼 노인들이 맘 편하게 가서 놀 수 있는 장소는 마땅치 않다. 비용도 만만치 않은 데다 젊은이가 많은 곳으로 가면 눈치가 보인다. 그래서 노인들이 적은 비용으로도 신나게 놀 수 있는 곳을 찾아봤다. 이곳에선 노인이 왕이다.


허리우드 극장 ‘클래식 관’=올 초 서울 낙원동 낙원상가 4층 허리우드 극장에 노인 전용 영화관이 생겼다. 300석 규모. 57세 이상은 회당 관람료가 2000원이다. 영화는 하루 3회(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2시30분까지) 상영한다. 벤허·자유부인 등 흘러간 명화부터 최신 영화까지 상영한다. 8일엔 ‘시집가는 날’을 공짜로 상영할 예정이다.

세종문화회관의 ‘오후 2시 9988 어르신 행복콘서트’=서울시가 매달 한 번 세종문화회관 등 산하 6개 예술단의 우수 공연 리허설을 어르신을 위해 공개한다. 뮤지컬·음악회·무용극·전통 공연 등 다채로운 공연이 준비돼 있다. 다산콜센터(120)에 문의하면 일정을 알려 준다.

실버카페, ‘로맨스 파파’=서울 관수동 국일관 2층에 있는 이 카페는 55세 이상만 입장할 수 있는 라이브 카페다. 원로 가수와 코미디언들의 공연이 매시간 진행된다. 원로 가수 박건·한명숙·남상규·김하정 등이 출연해 노인들 사이에선 명소로 떠오른 곳. 메뉴는 6000원짜리 식사와 간단한 주류가 준비돼 있다.

오솔길 공원=서울 신월7동 977번지에 양천구가 운영하는 약 1만7000㎡ 규모의 이 공원은 전형적인 실버공원(사진)이다. 노인들이 편하게 산책할 수 있도록 안내판을 읽기 편하게 설계하고, 산책로를 우레탄으로 포장했다. 경사로마다 안전바를 설치하고, 각종 특수운동 기구도 구비했다. 산림욕장도 잘 가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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