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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博士 아닌 深士가 되자”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정신과 전문의 이시형(75) 박사는 최근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를 출간했다. 그의 56번째 책이다. 그는 지인과 대화하고 있을 때도 머릿속에서는 늘 글을 쓰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에게는 글을 종이 위에 풀어놓는 시간이 휴식으로 느껴진다.

남이 안 하는 공부 해야 차별화 … 지금은 천재 아닌 창재의 시대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

공부를 한평생 업으로 삼아 온 이시형 박사는 이번 저서를 통해 생존을 위해 ‘공부’ 압박에 시달리는 직장인에게 공부의 원리를 가르쳐 주고 싶었다고 한다. 투수가 다양한 구질을 배운 후에 자신만의 결정적 한 방을 만들어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처럼 직장인에게도 나만의 ‘결정적 한 방’이 필요하다. 어떻게 공부해야 결정적 한 방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

>> 대기업 회장도 ‘뭘 먹고 살아야 하나’를 걱정하는 시대입니다. 뭘 공부해야 합니까?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가고 싶은 회사에 대해 공부를 해야겠죠. 면접을 보더라도 일종의 컨설턴트 자격으로서 가야 합격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얄팍한 이력서나 채우려고 스펙 올리는 공부는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써먹을 수 있는 것을 공부해야 합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도 하지 않은 공부’를 해야 합니다.

>> 직장인들은 보통 영어 등 외국어 공부를 하거나 업무와 관련된 자격증을 따려고 합니다. 누구도 하지 않은 공부란 무엇입니까?
직장에 있다면, 먼저 주인의식을 갖고 업무에 임해 보십시오. 직장의 문제점들이 보일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이 공부이지요.

이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남들이 하지 않는 공부 분야를 찾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저만 해도 의대를 졸업한 후 정신과를 선택하고 그중에서도 사회정신의학을 택했을 때는 아무도 사회정신의학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 때입니다. 평소 저는 우리 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한국사회 발전을 위해 어떤 점들이 해결되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에 대한 연구인 사회정신의학에 관심이 갔죠. 예를 들면 남북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 통일이 되면 사회주의에 세뇌된 사람들과의 조화가 걱정되었습니다. 세뇌 당한 뇌를 해독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싶었던 것이죠.

>> 그런 발상을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지금은 정신의학이 제가 시작할 때보다는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제가 처음 관심을 가졌던 분야도 이제 제가 없어도 될 정도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를 위해 필요한 공부가 창의력을 어떻게 계발할지에 대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도 그런 선상에서 나온 것이지요.

그의 말은 다시 이렇게 이어진다.

“여기에 더해 자신이 강점을 가진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 좋습니다.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라는 것인데 저만 해도 인간관계를 맺는 데 누구보다 자신 있었기 때문에 사회정신의학을 선택할 수 있었죠. 그러나 사회초년생이 자신의 강점분야를, 이에 앞서 관심분야를 처음부터 찾는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죠.”

원서 잡지 읽어라

>> 그렇다면 주인의식을 갖는 것이 가장 첫 번째 과제겠습니다.
임원들 중에 주인의식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상사는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단박에 사람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안 시킨 일을 하는 사람, 못 본 척하는 사람, 볼 줄도 모르는 사람으로 말입니다.

누구도 안 시킨 일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안 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주인의식은 신입사원이 임원보다 오히려 더 가지려고 해야겠죠. 다만, 주인의식은 나이 들어 억지로 심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어려서부터 주인의식을 키워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알았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요?
책을 읽는 것만으로 부족합니다. 물론 책을 읽어야겠죠. 그러나 책에 담긴 정보는 보통 10년 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10년 정도 뒤떨어진 정보를 얻는단 이야기입니다.

진짜 앞서가고 싶다면 외국의 학술잡지를 읽으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영어와 일어 정도는 꾸준히 공부하는 노력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교수가 책장에 빼곡히 꽂힌 책들로만 강의한다면 그 교수는 가짜입니다. 10년 전 이야기를 그대로 말한다는 뜻이기 때문이죠. 진짜 공부를 한다는 것은 나만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라는 말인데, 쉽게 말하면 박사가 되자는 것이죠. 아니 박사(博士)가 아닌 심사(深士)가 되어야겠죠.

>> 공부라는 게 인간관계 속에서 자연스레 되는 것 아닙니까? 또 한국문화에선 인맥을 쌓는 것을 지식보다 더 큰 자산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먹는 데서 일이 성사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 문화에서 인맥 쌓기나 술문화 등이 중요하죠. 미국은 안 그렇겠습니까? 그러나 그걸 핑계로 괜히 2차, 3차 술 먹느라 시간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30대 후반부터 자신의 연구분야에 매진하라고 하셨는데, 나이 들수록 공부하기 힘든 것 아닙니까?
그건 거짓말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소크의학연구소에서는 2000년 72세 교수의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신경세포가 계속 생성된다는 놀라운 연구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나이 들어 머리가 굳는 것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게으르거나 둘째, 특정 이데올로기에 세뇌 당해 다른 공부를 할 여지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뇌는 공부할수록 젊어집니다.

이 대목에서 이시형 박사는 “뇌가 젊으면 몸도 젊게 만든다”는 말고 함께 전문가적 코멘트를 덧붙인다.

“뇌가 몸의 반응을 지시하게 되는데, 뇌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몸도 빨리 늙어버리는 것입니다. 주변의 교수, 연구원이나 화가, 지휘가 등 예술가들을 보면 또래에 비해 젊어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최근엔 인터넷의 도움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이를 잘 활용할 방법은 없을까요?
저는 컴맹입니다. 통신이 처음 깔릴 때 이를 연구하는 사랑방 모임을 조직해 활동하기도 했으나 당시는 너무 느려 오히려 저술활동 등을 하는 데 방해가 됐습니다.

물론, 지금은 아닙니다만 컴퓨터를 몰라도 제가 공부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저를 도와줄 수 있는 비서나 직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인터넷을 활용해 자료를 모으는 공부 방식은 사회초년생의 방법입니다. 임원이 그럴 필요 있습니까? 컴퓨터 앞에서 뒤적거릴 시간이 있으면 일사불란하게 직원에게 시키는 것이 낫습니다.

이시형 박사는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끝맺었다.

“제가 예일대에서 공부때만 해도 저는 책을 직접 찾지 않았습니다. 예일대 도서관에는 중학생 아르바이트생이 있어 도서목록을 찾아다 줍니다. 보다 효율적인 것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적어도 임원 이상이라면 말입니다.”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이시형 박사는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에서 독종들의 공부법을 소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박사는 “뇌를 달래야 공부가 쉬워진다”고 말한다. 공부 호르몬 세로토닌과 잠재의식을 활용해 뇌를 달랠 수 있는데, 구체적인 방법은 책에 자세히 소개돼 있다.

임성은 기자 lseco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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