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벌거벗는 나라

중앙일보

입력 1998.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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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노사는 한가족이라는 말이/평생직장이라는 명제가 그리 신이 나/작업거부란 생각도 못했다.

파업이 다 무어고/내가 이 회사 주인이라/중략/어느날 박씨 이름이 게시판에 낑긴 이유를 비웃으러 갔다가 그만 목이 잠기고 말았다/이봐요, 당신 하나 때문에 회사가 죽어야 하는 거요/회사가 살아야 경제가 살고 경제가 살아야 사회가 산다는 말에/내가 바로 주인인데 감히 누가 날 내쫓으며/또 내가 흘린 피땀은 다 어디로 빼돌렸느냐고…. (백기완 시집 '아, 나에게도' 에서 발췌) 우리는 정리해고를 놓고 몸살을 앓고 있다.

말이 좋아 정리해고지 평생직장이라 여기던 회사에서 삭풍이 부는 거리로 내몰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정리해고니, 고용시장의 유연성이니 하는 고상한 말로 쉽게 얘기하지만 하루 4천명이 넘게 직장에서 쫓겨나는 각 개인에겐 피눈물 나는 일이다.

구조조정이라는 단어 역시 고상하고 얌전하지만 그 뜻은 망할 기업은 망하라는 것이니 당하는 기업인에게는 비수 같은 말이다.

우리는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라는 엄청난 소용돌이에 말려 있다.

개인이나 기업들이 오늘처럼 무기력을 느낀 적도 없을 것이다.

내 직장이 언제 없어질지, 내 사업이 언제 부도날지 개인의 의지와 노력과는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다.

마치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원시인이 폭풍을 만나 몸둘 곳을 찾지 못해 이리저리 방황하는 모습이라 할까. '만인대 만인의 투쟁' 을 피하기 위해 인류는 국가라는 울타리를 만들었다.

마침내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인류는 개인의 행복추구권까지 보장하는 복지국가를 탄생시켰다.

70년대말까지 선진국들의 이상향 (理想鄕) 은 이 복지국가였으며 우리 역시 이 모델을 따라가야 한다는데 이견이 없었다.

그러던 것이 미국을 중심으로 소위 신보수주의라는 물결이 덮치면서 모든 것을 시장경제에 맡기자는 주장이 주류를 이뤘다.

효율성을 높이자면 경쟁을 벌여야 하고 이긴 자만이 살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시장은 곳곳에서 벌어진다.

부자와 빈자, 배운 자와 못배운 자, 게으른 자와 부지런한 자, 중소기업과 대기업 등등이 처절한 싸움 끝에 승자가 나온다.

경쟁의 원리가 그렇듯이 약자는 죽고 강자는 살아 남는다.

우리 주변에서 IMF 한파가 어디 서부터 오는 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전문직보다 단순노동자, 상용근로자보다 일용직, 노조원보다 비노조원 등 사회적 약자가 먼저 희생을 당한다.

이제 이 경쟁이 화이트 칼라로 번지고 철밥통으로 여겼던 공무원 사회까지도 번지고 있다.

이때 국가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경쟁에서 진 사람을 망망대해에 내팽개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으로 구조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 역시 예전의 국가가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국경을 허물고 나라간에 경쟁을 벌여 진 나라는 나라 구실도 못하게 돼 있다.

미리 준비가 있었던 북유럽 국가들은 예산의 50%, 일본은 20%를 소위 복지비용이라는 이름의 안전망 설치에 투입하고 있다.

우리는 겨우 6%에 불과하다.

설상가상으로 우리처럼 국가부도 사태를 만나 IMF와 국제금융의 큰손들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는 그들의 요구조건을 듣지 않을 수 없다.

국제금융의 생리는 단기간 최대의 이윤을 올리는 것이다.

IMF가 우리에게 요구한 여러가지 주문도 결국은 자신들의 투자 안전과 이윤 보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들이 한국의 약자, 경쟁 실패자들에게 관심을 가질 까닭이 없다.

자유로운 영업활동만 필요하지 그에 따르는 책임엔 관심이 없다.

물론 우리가 소아병적 집단이기주의 때문에 미뤘던 여러 개혁들을 이번에 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도 있다.

그러나 본질은 강자의 논리에 따르는 길 뿐이다.

솔직히 우리는 입법권조차 양도했다.

IMF 주문에 따라 국회에서는 법 개정하기에 바쁘다.

권력의 이동도 뒤따르고 있다.

IMF측은 우리에게 경제자문관을 두도록 요구하고 있다.

캉드쉬 총재는 우리의 노동계 대표를 만나 정리해고를 설득했다.

국제 투자가들은 대통령당선자를 만나 자본의 안전을 위한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과연 이렇게 계속 옷을 벗기만 해서 될 것인가.

사회적 약자는 누가 보호할 것인가.

국가의 임무를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할 때다.

문창극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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