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적 정보 전달” vs “속임수 마케팅”

중앙일보

입력 2009.05.02 10:29

업데이트 2009.05.02 10:57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에 사는 주부 김소영(36)씨는 평소 TV 홈쇼핑 채널을 즐겨 본다. 상품을 많이 사는 편은 아니지만 정신없이 바뀌는 화면과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쇼핑 호스트의 코멘트가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에 딱이라서다. 제품 카탈로그를 넘기듯 나름 ‘눈요기’를 하는 것이 김씨에게 늦은 오후의 일상처럼 돼 버렸다. 그런데 최근 김씨는 TV 홈쇼핑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한 홈쇼핑 방송에서 쇼 호스트가 신제품 프라이팬(왼쪽)과 기존 프라이팬을 비교하고 있다. ‘일반 자사 팬’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새로 판매하는 프라이팬이 잘 눌러 붙지 않아서 좋다면서 ‘기존 자사 제품’과 비교하더라고요. 아무 상표도 없는 기존 제품은 달걀이 눌러 붙고, 양념이 타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다른 홈쇼핑 회사에서도 마스크 팩을 판매하면서 에센스가 줄줄 흘러내리는 ‘기존 제품’과 비교하더군요. 또 이런 제품은 언제나 ‘구닥다리’로 묘사하더라고요. 그럼 그 회사에서 예전에 제품을 구입한 사람은 바보인가요?”

김씨가 의문을 가지는 ‘자사 제품 비교’를 요즘 TV 홈쇼핑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런 방식은 주로 프라이팬ㆍ화장품ㆍ의자ㆍ면도기 같은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데 자주 이용된다. 화려한 ‘신상(신상품)’ 앞에 품질을 저울질 당하는 기존 제품은 ‘이름’도 ‘성’도 없다. 그저 ‘일반 자사 제품’ 혹은 ‘자사 기존 제품’ 등으로 불릴 뿐이다. 주부 김씨는 “적어도 비교 대상인 제품이 어떤 제품인지는 정확히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곳곳에 ‘빈틈’이 발견된다. 비교가 되는 상품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떤 경로는 통해 팔렸던 것인지 설명이 태부족하다. 하다못해 그 흔한 모델번호 하나 없는 제품도 있다.

한 홈쇼핑 업체 관계자는 “출시년도ㆍ규격ㆍ가격 같은 자사 기존 제품 선정기준이 뚜렷이 없어 필요할 때마다 뚝딱뚝딱 만들어낼 수도 있다”며 자사 제품 비교의 심각성을 귀띔했다. 그는 또 “(한 번도 팔리지 않은 채) 창고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시제품이 자사 제품으로 버젓이 나온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상품소개 및 판매방송 심의에 관한 규정’ 34조 2항을 보면 ‘상품소개 및 판매방송에서 비교는 판매상품과 동종 또는 가장 유사한 상품을 비교대상으로 하여야 한다’고 나와 있다. 동종 상품인지 유사한 상품인지 소비자가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GS와 현대홈쇼핑은 방통심위의 공고에 의해 2개월여 전부터 비교 장면이 나갈 때 비교 대상 제품의 ‘출연도’를 자막으로 내보내고 있다. 지금까지 아무런 표기를 하지 않는 CJ홈쇼핑 측은 “동일한 비교 조건을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꼭 출시연도를 표기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TV 홈쇼핑 업체들의 자사 제품 비교 설명에 대해 ‘눈 가리고 아웅’ 식 판매라고 지적한다. 송보경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이사(서울여대 교수)는 “비교 대상 품목이 정확하게 명시되지 않고 비교 기준이 객관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비교는 소비자를 오도하는 행위”라며 “초등학교 1학년생과 중학교 1학년생을 일렬로 세워 비교해 놓고 그 나이를 알려주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꼬집었다.

홈쇼핑 회사에서는 “경쟁사 제품과 비교하면 ‘비방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며 제품 비교 설명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한 관계자는 “혹시라도 방송 중에 실수를 할 수도 있어 타사 제품과 비교는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최은경 이코노미스트 기자ㆍchin1chuk@joongang.co.kr

* 상세한 기사는 5월 4일 발매되는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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