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나치수용소 '5년악몽' 목숨건 촬영

중앙일보

입력 1998.01.13 00:00

지면보기

종합 37면

다큐멘터리 사진이 진실을 말하고 사실을 증언한다고 해도 진실에 접근하면 할수록 역설적으로 그 사진은 영원히 묻혀버리거나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저지른 만행도 마찬가지다.

당시 기록사진 중에는 더러 나치 만행을 증언하는 사진들도 있지만 이들 대부분은 리 밀러 같은 연합군 종군사진기자가 나중에 찍은 것들이다.

그러나 당사자들이 자신들이 겪었던 현장을 직접 기록한 사진들이 기적처럼 남아 공개된 적도 있다.

멘델 그로스만의 사진이 그 경우다.

그로스만은 2차대전중 나치가 폴란드에 조성한 로츠 게토 (이 마을은 유명한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의 고향이기도 하다)에 수용된 유태인 사진작가였다.

당시 이곳에 수용된 유태인과 집시는 10만여명. 나치 휘하의 독일 통계청은 그로스만을 이 수용소의 기록사진사로 지명해 홍보용 사진을 찍게 했다.

그로스만은 홍보사진 외에 게슈타포의 눈을 피해가며 필름을 빼돌려 1940년부터 5년에 걸쳐 게토의 실상을 사진에 담았다.

수용 중인 사람들은 그의 촬영활동을 적극 도왔다고 한다.

'사진이 아니라면 아무도 수용소의 존재를 믿지 않을 것' 이란 이유에서였다.

그로스만은 자신이 찍은 필름을 수용자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나중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그 실상을 전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의 예상대로 8백87명이 전쟁 후까지 살아남아 그가 촬영한 사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그러나 게토의 참상을 알린 그의 이름은 생존자 명단 속에는 빠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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