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 50m 신천지, 경기도가 탐낸다

중앙선데이

입력 2009.04.28 14:19

업데이트 2009.04.28 14:56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건설이 확정도 되기 전에 노선 변경, 역 추가 설치를 요구하는 지역 민원이 이어지고 있다. 중앙SUNDAY에 따르면 경기도 성남시 모란시장 상인과 주민 단체인 '수도권 광역 급행철도 모란역지키기 대책위원회'는 지난 20일 교통학회가 제시한 노선이 당초 모란역사 대신 판교역사로 바뀌었다며 원안대로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파주시민들은 일산 킨텍스에서 끝나는 A노선(킨텍스~동탄)을 파주신도시까지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아직 사업추진 여부도 최종 확정하지 못해 노선 문제를 논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래저래 수도권에서 지하 50m 공간을 시속 100km로 달리는 급행열차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다음은 중앙SUNDAY 기사 전문.


지하 50m에 뚫린 터널을 시속 100㎞로 달리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일명 ‘대심도(大深度) 철도’를 건설하는 방안이 본격 논의되고 있다. 경기도가 ‘GTX(Great Train eXpress)’라 이름까지 붙이고 앞장선 가운데 서울시와 인천시는 소극적 찬성 분위기다. 지방자치단체장 간의 미묘한 경쟁심리와 공사비를 누가 낼 것인가 등이 겹쳐서다. 국토해양부는 수도권광역교통계획에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대심도 급행철도가 탁상공론이 아니라 실현 가능성이 있는 신개념 교통수단으로 떠오른 것이다.

정부·지자체·사업자가 ‘지하 50m’를 탐내는 것은 무엇보다 ‘고속 주행’ 목표를 달성하기 좋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기존 지하철은 역 간격이 짧은 데다(통상 1㎞마다 설치), 도로 교통망과의 연계나 보상비 절감을 고려해 기존 도로 밑을 달린다. 그래서 굴곡이 심하다. 속도를 50㎞ 이상 내기 힘들다. 반면 대심도 철도는 시속 60~100㎞의 속도를 내야 제구실을 한다. 노선의 굴곡을 줄여야 가능한 속도다. 역과 역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야 한다.

지하 50m 공간은 이런 요건을 갖춘 일직선 터널을 뚫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고층 건물이라도 기초공사는 기껏해야 지하 40m 정도 내려가면 충분하다. 그 밑으로는 암석으로 꽉 채워져 있어 터널을 뚫는 데 걸림돌이 되는 인공구조물은 거의 없는 처녀지가 펼쳐진다. 기존 지하철 일부 구간과 통신구·전력구로 쓰이는 소형 터널을 만나지만 깊이를 조절하거나 우회하면 피해 갈 수 있다. 지하 50m 공간은 발달된 터널 굴착 기술이 개척한 신천지인 셈이다.

지하 50m 아래는 사실상 무주공산
터널 굴착 비용 역시 얕은 터널을 뚫을 때보다 적게 든다. 지하 깊은 곳의 암반은 토사층보다 단단해 지보(터널이 무너지지 않게 보강하는 장치)를 덜 설치해도 되기 때문이다. 하경엔지니어링 이인기 사장은 “일반 지하철 터널 공사비의 55% 정도면 같은 길이의 대심도 터널을 뚫을 수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일대는 편마암과 화강암 지대여서 ‘물이 나는’ 곳이 많지 않다는 점도 좋은 시공 환경이다.

한국의 터널 뚫는 기술은 세계 정상 수준이다. 산이 많은 국토의 특성상 터널 구간이 포함된 도로와 철도 공사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터널 굴착 공법은 크게 발파공법(NATM)과 기계굴착(TBM) 방식이 있다. NATM은 폭약을 사용해 바위를 깨면서 굴을 뚫는 방식이다. 비용이 적게 든다. 한국은 NATM 방식으로 8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700㎞를 시공한 경험을 자랑한다. 단점은 발파 때 진동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것도 기술로 거의 극복했다.

이 사장은 “아이들이 뛸 때의 진동을 1카인(1초 동안 1㎝의 움직임)이라고 할 때 발파 진동을 0.3~0.5카인으로 낮출 수 있으므로 진동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원통 모양의 기계로 굴착하는 TBM은 비용이 더 들긴 해도 굴 뚫는 속도는 NATM을 앞선다. 다만 장비 국산화가 덜 돼 있고 실패 사례도 있어 국내에서 널리 활용되지 않고 있다. 선진국에 비해 기술 수준도 떨어진다. 따라서 대심도 터널을 뚫을 때는 NATM 방식을 주로 쓰되 TBM 방식을 보조 공법으로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땅 보상비가 적게 들어간다는 점이 대심도의 가장 큰 매력이다. 토지 보상비 산정 기준으로는 서울시 ‘지하부분 토지 사용 보상기준 조례’,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용지규정’, 한국감정평가협회 ‘토지보상평가지침’ 등이 있다. 서울시 조례는 토지 소유자의 통상적 이용행위가 예상되지 않고, 지하 시설물 설치로 인해 일반적인 토지 이용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는 깊이를 ‘한계심도’로 규정했다. 조례에 따르면 한계심도는 지하 40m로 보상 비율은 땅값의 0.2% 이하다. 이보다 얕은 20m 이내는 0.5~1%, 20~40m는 0.2~0.5%다. 일정 깊이 이하의 지하 공간은 전혀 보상하지 않는 나라도 많다.

독일의 경우 10m까지 5%, 25m까지 1% 정도 보상하고 30m 이하는 아예 보상하지 않는다. 보상비가 줄기 때문에 대심도 철도의 건설비는 일반 철도보다 ㎞당 300억원 이상 적은 900억원이면 된다. 서울 지하철 9호선 건설에는 총 3조4600억원, ㎞당 1360억원이 들어갔다. 역 수가 적어 역사 건설비도 줄일 수 있다. 국토부 권석창 광역도시철도과장은 “㎞당 1300억원 이상 들어가는 일반 지하철에 비해 건설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킨텍스~수서~동탄 노선이 1순위
경기도가 교통학회 연구 용역 결과를 토대로 제시한 노선은 3개, 총 145.5㎞ 구간이다. 3개 노선은 일산 킨텍스~수서(수서~동탄 구간은 KTX 노선으로 건설)를 연결하는 46.3㎞(킨텍스~수서~동탄 74.8㎞) 길이의 A노선, 인천 송도와 서울 청량리를 연결하는 49.9㎞의 B노선, 의정부와 금정을 연결하는 49.3㎞의 C노선이다. 역사는 A노선 9개(수서~동탄 KTX 노선의 2개 대심도 철도 전용 역 포함), B노선 9개, C노선 7개다. 역과 역 사이의 거리는 대략 6~8㎞다. <지도 참조>

교통학회는 2016년 3개 노선이 모두 개통되면 하루 이용자가 76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3개 노선을 동시 개통하면 1개 노선만 건설할 때보다 이용자가 14% 정도 늘어난다고 계산했다. 이른바 ‘네트워크 효과’다. 교통학회 오동규 박사는 “이용객은 ㎞당 4384명으로 서울 지하철 중 이용객이 가장 적다는 6, 8호선과 비슷하다”며 “실제 운행이 이뤄지면 이용자 수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비는 재정사업으로 추진할 경우 A노선과 B노선 각각 대략 4조8000억원, C노선 4조3000억원 등 약 13조9039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됐다. 터널 굴착 비용 외에 역과 기지창 건설 비용, 차량 비용 등이 모두 포함된 것이다. 대심도 철도 기지창은 킨텍스, 과천, 인천 문학 등 세 곳에 설치하는 것으로 상정했다. 민자로 건설하면 경쟁 효과로 11조1200억원 정도가 들어갈 것이란 예상이다.

이 철도의 최대 장점은 속도다. 광역권 철도 통행시간은 기존 철도에 비해 40∼55% 단축된다. 최고속도는 시속 160~200㎞, 표정속도(정류장 정지 속도를 포함한 평균속도)는 시속 100㎞가 가능한 전철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사업성은 일반 전철 두 배 수준의 요금(3000원)을 기준으로 A>B>C노선순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국토부에서는 사업성 분석을 바탕으로 A노선을 우선 건설하는 방안과 동시 건설하는 방안을 함께 검토 중이다. 국토부의 검증 절차를 거쳐 이르면 이번 주 잠정 결론이 날 전망이다.

지자체의 이해는 노선마다 다소 엇갈린다. A노선과 B노선은 각각 경기도가 앞장선 동탄2신도시, 인천시가 야심 차게 추진해 온 송도신도시의 교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다. C노선은 동부간선도로의 정체 등 서울 동북부 지역의 교통문제를 풀 수 있다는 점에서 서울시가 수혜자다. 그러나 서울시는 반대만 안 할 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지자체장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쟁심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주도하는 사업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박수나 치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어차피 대심도 철도 건설 여부는 국토부가 결정할 사안이다. 엄청난 건설비 때문에 지자체 자체 재원만으로는 어림없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여러 사업자가 제안해 놓은 상태여서 민자사업으로 추진될 공산도 크다.

전문가들은 대심도 철도 건설에는 기술적으로 극복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고 지적한다. 배규진 한국터널학회장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방재·배수, 기존 지하 구조물을 피해 터널을 뚫는 근접시공기술 등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지하 50m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화재다. 승객을 지상으로 어떻게 신속히 탈출시키느냐, 아니면 터널 내 대피공간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신흥대 유지오 교수는 “비용이 더 들더라도 2개 터널을 뚫고 두 터널을 피난 연결통로로 이으면 한 터널에서 불이 나더라도 승객을 다른 터널로 대피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터널 내 공기 오염도 우려된다. 고속으로 달리는 차량의 힘으로 자연 환기가 이뤄지긴 해도 일정한 간격으로 환기용 수직구를 설치해야 한다. 자기 땅 밑으로 터널이 뚫리는 것을 꺼리는 심리적 거부감 역시 해소해야 한다. 아파트 단지 같은 곳에서는 집단 민원이 발생할 수 있다. 보상비를 더 주거나 노선을 우회해야 풀 수 있는 문제다. 차량이 지나갈 때 발생하는 진동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 오태상 부장은 “암반이 단단할수록 진동이 더 잘 전달된다”며 “터널이 지나는 지역의 주민 반대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역 추가 설치 요구를 둘러싼 진통도 불가피하다. 이미 파주 시민들은 노선 연장을, 성남 도심 등지의 주민들은 역 추가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또한 사업성 자체를 의심하는 회의론이 만만찮다. 비용을 줄이고, 예상 이용객 수와 수익을 부풀렸을 것이라는 의구심이다. 각종 민자사업의 수요 예상치가 과장됐다는 게 하나 둘 확인되고 있으므로 대심도 철도 사업은 수요 예측 등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수도권 집중 심화 가능성
수도권은 2450만 명이 몰려 사는 초대형 집적도시다. 세계적으로 일본 도쿄권(3380만 명)에 이어 둘째로 인구가 밀집한 곳이다. 비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살다 보니 주택·교통·교육·환경 문제가 동시다발로 발생하고 있다. 특히 서울 도심에서 30㎞ 이상 떨어진 곳에 신도시를 세우면서 교통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대심도 철도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교통혁명’일 수 있다.

하지만 서울 통근권의 외연이 확대될 것이라는 점에서 수도권 집중을 심화할 우려가 있다. 대심도 철도가 개통되면 자가용 통근의 한계점이라는 동탄신도시보다 더 먼 거리에 있는 오산·평택까지 서울 도심 통근권이 확대될 전망이다. 또 이용객이 이탈할 기존 철도는 채산성이 나빠질 수 있다. 자동차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에너지 소비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교통학회는 대심도 철도 3개 노선이 개통되면 연 45만t의 기름과 149만t의 이산화탄소 배출, 7000억원의 교통혼잡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시공 과정에서 익힐 세계 최고의 광역급행철도 기술, 터널 굴착 기술을 수출하는 꿈을 꿔 볼 수도 있다. 무엇보다 대심도 철도는 ‘제3의 공간’으로 불리는 지하공간(underground space)의 활용을 촉진하는 계기로 작용할 전망이다.

허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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