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e칼럼

신화 속 아마존 여전사를 추적하다-상

중앙일보

입력 2009.04.28 09:38

업데이트 2009.04.28 14:57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신화에 나오는 아마존 여전사들이 흑해로 이주했다고 자세히 기술했다.
고대 로마의 유명한 문인이자 역사가, 그리고 정치가인 키케로는 페르시아 전쟁역사를 자세하게 기술한 <역사>의 주인공 헤로도토스(BC484~BC425)를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리스인 최초로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시가 아닌 실증적 학문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최초의 역사서라고 일컫는 그리스 신화를 다룬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나 오디세이는 역사서라기보다 장편서사시다. 헤로도토스는 과거의 역사를 시가(詩歌)가 아니라 사실적으로 기술했다.

그는 역사를 쓰기 위해 지중해를 중심으로 수 많은 나라들을 직접 여행했다. 그리고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 사기(史記)를 기술한 사마천(司馬遷)의 피나는 노력을 연상시킨다. 사실 사람들은 사마천을 ‘동양의 헤로도토스’라고 부르는데 인색하지 않다.

아마 남자로써 가장 치욕적인 궁형(宮刑)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불후의 명작 사기를 저술한 데는 헤로도토스의 노력과 인내보다 더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따지자면 헤로도토스도 참주(僭主)였던 친척이 피살되자 망명길을 떠나야 했던 불우한 시절을 보낸 인물이다.

“남자를 죽이기 전까지는 결혼하지 않아”

신화 속에 나오는 아마존 여전사(warrior women)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서술했다. “…frequently hunting on horseback with their husbands; in war taking field; and wearing the very same dress as the men.

남편과 말 잔등이에 타고 자주 사냥에 나섰으며, 들판을 누비고 다녔고, 그리고 남자와 꼭 같은 옷을 입고 다녔다.”

이어지는 대목이 살벌하지만 볼만하다. “No girl wed till she has killed a man in a battle. 전쟁에서 한 명의 남자라도 죽이기 전까지는 절대로 결혼하는 소녀가 없었다.”

이 이야기는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They have no right breasts…for while are yet babies their mothers make red-hot bronze instrument constructed for this very purpose and apply it to the right breast and cauterize, so that its growth is arrested, and all its strength and bulk are diverted to the right shoulder and right arm.

그들(아마존 여전사들)은 오른쪽 가슴이 없었다. 여자가 어릴 때 어머니가 (가슴을 없애는)그러한 목적을 위해 구리로 된 기구를 빨갛게 달군 다음 오른쪽 가슴에 갖다 대고서는 가슴을 지져 태워버린다. 그렇게 되면 가슴의 성장은 멈추게 되고, (가슴에 갈) 힘이나 크기도 오른 쪽 어깨와 팔에 모이게 된다”

오른쪽 가슴을 어릴 때 불로 지져 없애

그리스 신화 속의 아마존 전사. 오른쪽 가슴이 훨씬 작다.
부연해서 설명하자면 어릴 때 어머니가 딸의 가슴이 크기 전에 불로 지져 없애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며 가슴에 갈 영양분이 힘을 정말로 필요로 한 어깨와 팔에 모이게 돼 그야말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존 여전사들이 창을 던지고, 활을 쏠 때 거추장스러울 수 있는 오른쪽 가슴을 어릴 때부터 밋밋하게 만들어야만 전투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정말 간담이 서늘한 이 이야기다.

지중해 연안은 물론 유럽을 비롯해 지금의 러시아 카스피해까지 여행하는 등 당시 눈으로 볼 때 세계 각지를 돌아다닌 헤로도토스가 정말 이런 여전사를 직접 목격했는지, 아니면 우연히 다른 지역을 갔다가 옛날부터 전해 오는 이야기를 흘러 들어 쓴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사실 그의 역사를 보면 소위 부풀린 ‘뻥’이 많다는 이야기는 일찍부터 있었다. 가슴을 불로 지져 없앴다는 살벌한 이야기기가 남자를 뺨칠 정도로 용감하고, 용감을 넘어 잔인한 여전사를 부풀리기엔 그만이다.

그러나 여자에게 중요한 2차 성징(性徵)을 쉽게 없앨 수 있는지, 또 그럴 정도라면 죽는 사람들도 많았을 텐데, 정말 그 정도까지 했는지는 의심 가는 대목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남자는 종족 보전용, 去勢하거나 죽여 없애

아마존 여전사는 이미지 변천을 계속하면서 섹시한 모습으로 단장했다.
선천적으로 육체적인 힘이 남자보다 딸리는 여자가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아 그들을 지배하려면 상식을 넘어 혹독하고도 잔인한 시련을 겪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남자를 종족유지수단으로만 이용했다. 배란기가 돼 남자를 끌어 들여 밤을 지새운 뒤에는 거세(去勢)를 해서 노예로 부렸다. 숫자가 많아지면 반란이 두려워 죽여 없앴다. 또 자식도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살해 했다고 한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와 같은 아마존 족의 이야기는 비단 그리스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의 설화에서 나타난다. 또한 남자를 능가하는 여전사에 대한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다. 로마제국 군대를 물리친 고대 영국(켈트 족)의 여왕 부디카(Boudica)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서기 60년경, 네로 황제가 로마제국을 통치하던 시절,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던 영국(Britain)의 동남부(Norfolk 지역)에 살고 있었던 아이시이나이(Icenai)라는 켈트족 일파가 있었다. 그러나 로마 총독은 그녀를 여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여자를 깔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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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남편이 죽자 로마의 박해는 더욱 심했다. 로마 총독은 반항하는 부디카를 묶어 놓고 매질했으며, 부하들을 시켜 그 두 딸을 강간하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실수였다. 여왕은 결코 맥없이 그대로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부디카는 켈트 족의 여러 부족들을 통합해서 반란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성공적이었고 독립군은 런던까지 진격했다.

고대 영국의 부디카는 전형적인 여전사

전투준비에 나선 여전사의 모습. 비너스가 무장한 모습이라고도 전한다.
이후 8만 명에 이르는 로마 시민과 동맹 도시 구성원들, 그리고 켈트족을 가혹하게 수탈했던 자들, 강한 자에 붙어서 동족을 배신하고 침략자의 앞잡이가 되었던 자들이 부디카와 그 독립군에 의해 죽게 되는 일이 시작된다.

부디카라는 이름은 고대 켈트족의 언어에서 victory(승리)를 의미했다고 한다. 라틴(Latin) 식으로는 로마의 승리의 여신의 이름인 빅토리아(Victoria)로 표현되기도 했다.

훗날 영국이 최고의 전성기에 들어서게 되었던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마침내 그녀가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이 바로 부디카(Victory)에서 받은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부티카는 어쨌든 고대 영국인 켈트 족의 기개를 보여 주었고, 그 후손들을 위해서 좋은 선례를 남겼다. 다시는 로마제국이 켈트 족을 착취할 수 없었다. 이처럼 전설 속의 부티카는 영국인의 마음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신화와 전설이 등장하는 것이고, 헤로도토스는 전해 내려오는 신화를 실제 사건으로 현실화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헤로도토스는 원래 고대 그리스 지방에 살고 있던 여전사들이 싸움에 져 흑해로 이동했다는 이야기를 자세하게 썼다.

카자흐스탄에서 아마존 여전사 유골 발견

아니나 다를까. 과학자들은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아마존 여전사들을 흑해에서 찾아냈다. 헤로도토스가 이야기한 그 아마존 여전사들을 발견했다. 과학자들은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에서 아마존 여전사들의 유골과 소장품의 유적을 발견했다.

이 뼈에서 DNA를 추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 DNA를 가지고 몽고에서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찾는 과정에서 놀랍게도 노랑머리 여인을 발견했다. 아마존 여전사들이 몽고까지 흘러 들어간 것이다.

참고로 브라질 열대 우림 아마존 강의 아마존 족은 훗날 탐험가가 이 곳을 방문했다가 싸움에 참여하는 여자들을 보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름을 붙인 데서 유래하며 원래 아마존 신화와는 관계가 없다.

※ 다음 칼럼에 계속됩니다.

김형근 칼럼니스트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