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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비즈니스 시대를 여는 기초과학의 힘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대한민국”을 외치며 온 국민이 시청 앞 거리를 점령하던 2002년 여름만 해도 우리나라 축구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지금 K리그의 인기는 그저 그런 수준. 어느새 우리는 평소에는 전혀 관심조차 없었던 피겨여왕 김연아와 수영의 제왕 박태환에게 열광하고 있다. 이는 비단 스포츠만의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우리는 쉽게 열광하고, 또 쉽게 잊어버린다. 흔히 냄비 근성에 비견되는 우리의 성급한 기질. 과학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과학 하면 중· 고등학교 때 달달 외워가며 시험을 보고 그 다음 날 잊어버리면 그만인 암기과목쯤으로 생각할 것이다.

이처럼 과학이라는 분야가 일반인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우리나라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과 정부와 기업체의 지원 부족이 원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일단 좋은 대학만 들어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국·영·수 중심의 주입식 교육으로 진행된다. 창의력이라는 것은 학생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능력이 돼가고 있다. 이런 아이들이 자라서 기초과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해나가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우리나라 정부 및 기업체가 기초과학 분야를 등한시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금 바로 산업 현장에서 적용하기 쉬운 공학 분야 즉, 자동차·반도체·조선·철강 산업 등에만 집중 투자해 급속한 발전을 이뤄왔다. 하지만 기초과학이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어야 더 큰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일 터이다.

이웃나라 일본뿐 아니라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던 중국도 기초과학을 바탕으로 각종 산업에서 두드러진 발전을 이뤄내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 중 하나인 랜드(RAND)연구소가 작성한 ‘떠오르는 중국시대에 한국의 과학기술 전략’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 연구개발(R&D)에만 전념하는 중국의 과학자 및 엔지니어 수는 74만2000명으로 미국 다음이며 한국(14만1000명)보다 5배 이상 많다. 한 국가의 기초과학 역량을 평가하는 지수인 과학기술논문색인(SCI) 평가에서도 중국은 9위로 16위인 한국을 크게 앞지른다. 이런 노력으로 중국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한 명도 없는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 법이라고 했다. 일본의 고바야시 마코토 교수는 1972년에 발표한 ‘CP대칭성의 파괴’라는 논문으로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으며, 73년 양자와 중성자를 이루는 쿼크들 사이에 존재하는 일명 색힘(color force)을 발견한 미국의 데이비드 그로스와 데이비드 폴리처, 프랭크 윌첵 등 3명의 교수는 2004년도에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30년이 훌쩍 지나서야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이제 냄비 근성은 도려내고 인내심과 미래에 대한 비전으로 20~30년 후를 내다봐야 한다. 긴 안목과 비전으로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행히 현 정부는 기초과학의 발전 없이 경제성장을 이끌 신기술을 독창적으로 개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첨단 과학, 문화, 예술 도시인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에 팔을 걷어붙였다. ‘응용기술의 수입에서 원천기술의 생산으로’ ‘떠나가는 두뇌에서 들어오는 두뇌로’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핵심 정신이다. 세계 석학들이 오고 싶어하는 도시, 이들이 모여 최첨단 과학연구를 할 수 있는 연구시설과 함께 문화예술이 조화된 글로벌 과학도시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노벨상 수상자들뿐 아니라 우리가 열광하고 있는 김연아나 박태환도, 하루아침에 탄생한 것은 아니다.

한국은 과거 포항제철로 대표되는 1970년대 산업비즈니스 시대에서, 삼성 반도체로 대표되는 90년대 기술비즈니스 시대로, 이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로 대표되는 2010년대 과학비즈니스 시대로 전환기를 맞고 있다. 과학비즈니스 시대는 원천기술이 자유롭게 논의되고 생산되는 창조성과 상상력의 시대다. 과학비즈니스벨트는 ‘중이온 가속기 실험실’과 ‘아시아 기초과학연구소’를 중심으로 한국의 노벨과학상이 다져지는 공간이 될 것이다. 큰 뜻을 품고 새롭게 시작하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정부뿐 아니라 기업과 교육계 등이 모두 한마음이 되어 오랜 시간 투자를 한다면 과학계의 김연아나 박태환이 탄생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닌 듯 보인다.

편경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추진지원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