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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마저 … “386 정치, 노무현과 함께 몰락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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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된다.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 그 비극의 정점에 한 시대의 정치 세력이 함께하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 당에서 노무현 시대를 상징해 온 아이콘, 386 정치인들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일찍이 스스로를 ‘구시대의 막내’라고 예언했다. 그 말처럼 386 정치의 운명도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한때 한국 사회의 변혁기를 주도했던 386 정치는 이제 고어(古語)가 되고 마는 걸까.

‘386 정치’의 만개는 노무현 정권 시대였다. 노 전 대통령 집권 1년 만에 치러진 2004년 4월 17대 총선에서 152석을 확보하며 압승한 열린우리당의 초선 의원은 108명에 달했다. 그중 31명이 386세대였다. 청와대와 정부 내에도 386 출신이 대거 포진하며 국정 운영의 중심축으로 등장했다. “한국 정치의 주류가 보수에서 진보로 급변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이상의 정치, 현실에선 무기력=그러나 민주화 투쟁 경험만을 믿고 ‘이상 정치’를 주장하며 국회에 입성한 386 의원들은 급격히 동력을 잃어 갔다. 국민 통합, 경제 성장 등 현안에는 능력을 보이지 못한 채 4대 개혁 입법 논쟁 등 이념 공방을 거듭한 탓이다. 또 종합부동산세와 ‘3불(不) 정책’을 밀어붙이고 한·미 동맹보다 북한과의 관계를 우선시하는 시각을 보이는 등 내놓는 정책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갈등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말만 하고 일은 안 하는 NATO(No Action Talk Only) 정부”라는 비아냥도 나왔다. 한때 80% 선에 달한 참여정부의 지지율은 10% 선까지 추락했고 열린우리당은 선거마다 참패를 거듭했다. 결국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당 사수파(친노)와 탈당파(운동권 주류)로 산산조각 난 386 그룹은 대선 참패에 이어 18대 총선에서 줄줄이 낙선했다. 맏형 격인 신계륜 의원을 비롯해 전대협 세대인 우상호·이인영·오영식·임종석·정청래·정봉주 의원 등이 국회를 떠났다.

◆각개 약진과 위기 재연=그럼에도 18대 국회에서 살아남은 386 정치인들은 최고위원 3석(송영길·안희정·김민석)과 비서실장(강기정)·원내수석부대표(서갑원)와 대변인(조정식) 등 요직을 차지하며 각개 약진했다. 하지만 김민석 최고위원이 불법 자금 수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데 이어 친노 계열인 안 최고위원, 서 부대표, 이광재 의원이 검찰의 수사 칼날을 맞았고 이 의원은 구속까지 됐다. 노 전 대통령조차 30일 검찰 소환이 확정되면서 그동안 “‘차떼기 정당’ 한나라당에 도덕성만은 우위”라고 주장해 온 386들은 치명적 위기를 맞게 됐다. 지도부 내 386 인사들이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4·29 재선거 공천 배제에 앞장선 것을 놓고도 “‘친노 386’들이 당을 좌지우지하며 분열의 수렁에 빠뜨렸다”는 비주류의 비난이 높아지고 있다.

◆자성과 진화 요구=당 안팎에선 그러나 “다음 국회에서도 민주당의 주력군은 386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많다. 원내외에 100명 가까운 지역위원장을 거느린 386을 뛰어넘을 미래 세대가 잘 보이지 않는 데다 선거전략·경험에서도 이들을 앞설 세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시대에 부응하는 반성과 진화 노력이 386들에게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영식 전 의원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지난 정권에서 386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젊은 친구들이 더 발로 뛰어 주고 다른 세력들보다 도덕성에서 더 엄격했으면 하는 것이었다”며 “안타깝게도 그에 부응하지 못한 건 자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강찬호·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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