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여기서 한국축구는 올인한다

중앙일보

입력 2005.03.18 07:42

업데이트 2005.04.12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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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경기도 파주에 축구국가대표팀 트레이닝 센터(NFC)가 있다. 한.일월드컵 직전인 2001년 11월 9일 문을 열어 월드컵 4강신화를 만들어낸 곳이다. 국가대표팀과 청소년대표팀이 훈련에 집중하는 곳이고, 유소년 꿈나무 육성 프로그램도 진행되는 곳. 한국 축구의 현재와 미래가 다듬어지는 곳이다. 국가대표팀이 사우디아라비아와의 2006 월드컵 최종 예선전을 앞두고 소집된 지난 14일 이곳을 탐방했다.

자유로를 타고 문산 쪽으로 달리다 팻말을 보고 우회전해 1km쯤 가면 NFC가 나온다. 3만4000평 넘는 널찍한 곳이다. 오후 들어 바람이 세지면서 깃대에 걸린 태극기와 국제축구연맹(FIFA)기.대한축구협회(KFA)기가 소리를 내며 펄럭거린다. NFC 직원들이 현관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기 시작한다. 직접 또는 소속 구단 직원이나 가족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선수들이 하나 둘 들어온다.

도착하는 모습은 제각각이다. 최고참 유상철을 태운 승용차는 마치 의전차량처럼 서서히 미끄러져 들어왔다. 박재홍.김상식은 어른 댁에라도 온 듯 조심스레 내려 숙소로 들어간다. 김영광은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하며 웃는다. 벤츠를 몰고 이동국이 빠른 속도로 달려 들어왔다. 2001년 독일의 베르더 브레멘에서 임대선수로 뛸 때부터 이동국은 벤츠를 몰았다.

◆그래픽 크게보기

① 융단 같은 잔디구장에서 볼 뺏기 게임으로 몸을 푸는 선수들 ② 14일 NFC에 들어오는 김정우.박동혁.김치곤(왼쪽부터) ③ 선수들 식사 준비로 분주한 주방 ④ 숙소에서 책을 읽으며 쉬고 있는 김동진 ⑤ 사무국 직원들의 선수 맞이 최종점검 ⑥ 고급시설로 된 체력단련장.[파주=김경빈 기자]

◆최고시설에 최고급 식사

도착한 선수들은 배정받은 숙소에서 짐을 푼다. 숙소는 고급 호텔 수준이다. 축구협회가 준비한 트레이닝복과 운동화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청소년 선수는 4인 1실, 국가대표는 2인 1실, 코치는 1인 1실이다.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의 방은 2층 오른쪽 복도 끝이다. NFC 직원들은 '히딩크방'이라고 부른다.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이 썼기 때문. 고급 호텔 스위트룸 못잖다.

선수들은 옷을 갈아 입고 식사부터 한다. 전문영양사 신현경(32)씨가 식단을 설계한다.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 만큼 끼니당 4000~5000㎉(일반 성인 권장량은 2500㎉). 14일 저녁 메뉴는 주꾸미샤브샤브.감자양념구이.소등심구이.생선구이에 각종 봄나물이었다. 스파게티와 공기밥 등 탄수화물류는 기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전을 위해 출국하는 15일 새벽엔 샌드위치와 주스 등 간단한 간식을 줬다. "대개는 식성이 좋고 메뉴를 가리지 않지만 최성국 선수처럼 유난히 김치찌개나 김치볶음 같은 '신토불이' 메뉴를 좋아하는 선수도 있어 신경을 쓰죠."(신현경)

◆철통경비 속 훈련 빼곤 자유

일단 대표선수들이 들어오면 NFC는 철옹성이 된다. 경비가 강화되고, 외부인 출입은 엄격 통제된다. 선수들의 숙소 생활은 자율이다. 훈련 스케줄 말고는 잠자리에 들고 나는 시간도 맘대로다. 김동진은 책을 많이 읽고, 이동국은 잠을 많이 잔다고 한다. 지하 1층, 지상 3층짜리 본관 건물은 PC방.당구장.노래방 등 오락시설도 갖췄다.

"김영광.김치곤 같은 젊은 선수들은 PC방 출입이 잦아요. 숙소 생활에서 눈에 띄는 선수들은 대개 신참입니다. 노래방은 인기가 없어요. 맨정신에 '필'을 받겠어요?"(이원재 축구협회 홍보차장) 당연히 이곳은 금주(禁酒)구역이다. 어쨌거나 이곳에서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는 함께 먹고 자고 훈련한다. 실력과 전술 쌓는 데 모든 걸 건다.

◆감독이 제왕

대표팀이 머무는 동안 감독은 이곳의 제왕이다. NFC는 감독의 요구에 맞춰 모든 일정과 설비를 제공해야 한다. 본프레레 감독은 "세계 어느 나라 대표팀 훈련시설보다 훌륭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나이지리아 대표팀을 맡았을 땐 잔디밭 밟기도 어려웠다. 이곳은 최선의 조건을 제공하는 놀라운 곳이다."

선수들도 만족해한다. "예전엔 주로 호텔에 묵으면서 미사리 같은 데서 훈련했어요. 아무래도 어수선하고, 훈련장은 너무 멀었지요. 여기선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어요. 오래 머물면 갇혀 있다는 답답한 느낌이 좀 들기도 하지만…."(유상철) "잡생각 없이 운동에만 전념하라고 만든 곳이죠. 더 이상 좋은 데가 있나요. 어차피 운동선수는 경기로 말을 하고 경기는 준비가 잘 돼야 잘 할 수 있잖아요."(김동진)

한 달여 만에 함께 모여 훈련을 한 선수들은 저녁식사 후 어울려 잡담과 장난 등으로 회포를 풀다 잠자리에 들었다.

파주=허진석 기자 <huhball@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잔디구장.숙소 유럽 안 부러워" 조영증 NFC 센터장

NFC 센터장은 국가대표 출신 조영증(51.사진)씨다. 그는 대표선수로 뛰던 시절(1975~86년)을 이렇게 회상했다. "잔디 깔린 훈련장을 찾아다니는 유랑생활이었어요. 버스로 망우리고개 넘어 먼지 날리는 길을 한시간반씩 달리기도 했죠."

대부분 훈련은 맨땅에서 했다. 대통령컵 같은 국제대회가 국내에서 열리면 경기 전날 서울운동장(현 동대문운동장)에서 잠깐 잔디를 밟아 보았다고 한다. "76년 처음으로 유럽 전지훈련을 했어요. 어디를 가든 축구훈련장이 있더군요. 호화로운 시설보다 언제든 나가서 뛸 수 있는 잔디구장이 숙소 바로 앞에 있는 게 너무나 부러웠어요." 그는 "NFC는 단순히 국가대표 축구 선수들을 위한 훈련장이 아니라 한국 축구의 중심이자 상징"이라고 했다.

지난해 각급 대표팀 또는 상비군이 NFC를 사용한 날짜는 355일. 대표팀이 이용한 날짜는 48일이고, 12세 이상~15세 이하의 상비군 유망주들이 79일 동안 사용했다. 여자국가대표팀이 21일, 여자청소년대표팀이 46일.

센터를 운영하는 사무국 직원들은 축구협회 정예 멤버다. 모두 한두 가지 외국어에 능통하고 국제 축구 흐름에 밝은 엘리트들을 모았다. 이들을 지휘하는 장연환(46) 사무국 차장은 이탈리아 피오렌티나대학교 체육석사로, 피렌체 고베르치아노 축구학교에서 축구지도자자격증을 받았다.

주말엔 일반에도 대여

일반인도 매주 토.일요일 NFC 운동장을 쓸 수 있지만 이용료는 비싸다. 두 시간에 25만원(파주시민은 1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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