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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시선? 오직 일로 평가받고 싶은 ‘왕의 남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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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왕차관'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 복귀 3개월을 맞았다. 화장실 갈 틈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다음은 중앙SUNDAY 기사 전문.

‘왕비서관’이 ‘왕차관’으로 돌아온 지 3개월이 됐다. 1·19 개각으로 복귀한 박영준(49)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얘기다. 그는 이명박 정부 출범 때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이었다. 각종 인사와 참모회의, 청와대 직원 감사 등 주요 업무에 깊숙이 관여하며 ‘실세 중의 실세’로 불렸다. 그러던 중 지난해 6월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제기한 ‘권력 사유화’ 논란에 휘말리면서 사임했다. 7개월 뒤 그는 실세 차관이 정책 속도전을 이끄는 ‘차관정치’의 주역으로 컴백했다. ‘왕차관’이란 별칭이 붙었다.

16일 목요일 오전 10시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1003호 앞. 실·국장급 공무원 대여섯 명이 복도를 서성이고 있다. “차관님은 아직 안 오셨나?” “총리님 주재 회의가 길어져서….” 10여 분 새 벌써 세 팀째다. 사무실 전화벨은 계속 울렸다.

“예…. 1분만 보고하시면 된다고요…. 그런데 일정이 계속 바뀌셔서….” 같은 대답을 반복하는 비서가 난감한 표정이다. 한 공무원이 “대한민국 차관 중 제일 바쁜 것 같다”고 푸념했다.

“1분 약속이 어렵다”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간다”는 말을 곧이 듣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그랬다. 오전 10시10분쯤 공무원 네댓 명과 함께 자신의 방으로 후다닥 들어온 박 차장은 4대 강 살리기 회의 등 3개 회의를 잇따라 주재했다. 방문 앞에서 계속 기다리던 공무원들이 앞 팀이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바통터치 하는 식이었다. 곧 한승수 총리가 참석하는 오찬 행사장으로 향했고 차관회의, 국무총리실장(장관급) 주재 회의가 이어졌다.

오후 4시20분쯤부터 다시 오전과 같은 풍경이 반복됐다. 비서는 전화로 ‘예약’을 받느라 바빴지만 그 예약들은 쉬이 지켜지지 않았다. 사무실 앞 복도에 10여 명씩 줄을 서기도 했다. 정부 부처의 한 차관은 문 앞에 서서 20여 분간 기다리다가 다음 회의장으로 향하는 박 차장의 팔을 붙잡고 “2분만”을 외친 뒤 잠시 얘기를 나누는 데 성공했다.

이날 박 차장이 참석한 회의는 모두 9개나 됐다. 외부 손님은 박세직 재향군인회장이 유일했다. 2주 전에 약속을 잡았다고 한다. 박 회장도 이날 적잖이 기다렸다. 만남은 10여 분.

‘실세 차관’ 반기는 공무원들

박 차장이 관여하는 회의는 약 30개. 이 중 위원장을 맡아 직접 주재하는 회의는 고용대책·사회안전망 태스크포스(T/F) 회의, 국가정책조정 실무회의 등 10여 개다. 먹거리 안전확보 T/F 등 몇 개는 업무를 이관했는데도 그렇다. 현안 관련 회의도 수시로 맡는다.

석면 탈크 파동 때도 박 차장이 대책회의를 주재했다. 식사는 대개 조찬회의-오찬회의-만찬회의로 한다. 취임 이후 지금까지 일요일에도 빠짐없이 출근하고 있다. ‘국정 실무조율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총리실 관계자는 “박 차장이 오고 나서 부서 분위기가 많이 활발해졌다. 지난해와 달리 요즘은 용산참사 같은 현안도 총리실에서 곧바로 대책을 마련한다”고 말했다. 박 차장의 첫 업무가 용산참사 대책회의였다. “업무는 많아졌지만 총리실이 힘을 받는 것 같아 솔직히 일할 맛이 난다” “실세 차관이 오면서 업무 추진력이 좋아져 한결 편해졌다”는 목소리도 들렸다.

45도 인사하며 ‘로키 행보’

총리실 국무차장은 정부 부처를 정무적으로 총괄하는 자리다. 최근까지는 다리를 다친 조원동 사무차장 대신 총리 수행 업무도 맡았다. 지난달 총리가 터키를 방문할 때도 동행했다.

“얼굴 보기가 지나치게 힘들다”는 불만도 만만치 않았지만 대체로 “나름 처신을 잘하고 있다”는 평이었다. 총리실 관계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는 ‘로키(low key)’. 철저히 몸을 낮춘다는 얘기였다. 총리실의 한 서기관은 “솔직히 ‘왕의 남자’가 온다고 해서 긴장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묵묵히 자기 일만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라고 했다. 한 관계자는 “지방 현장 에 가면 기념사진 같은 걸 찍지 않느냐. 그래도 (박 차장이) 명색이 총리실 서열 3위인데 실국장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본인은 한사코 사양하더라”고 전했다.

박 차장은 16일 오후 “2분만”을 부탁하던 동료 차관에게도 45도 이상 고개를 숙이며 양손을 꼭 잡았다. 표정은 환했다. 전망 좋은 그의 사무실엔 커다란 회의용 탁자와 집무용 책상, 화분 몇 개가 전부였다.

그의 ‘로키 행보’에도 불구하고 그를 둘러싼 구설은 끊이지 않는다. 최근 박 차장은 총리와 국무총리실장 등이 있는 자리에서 “누를 끼쳐서 죄송하다”고 말하며 매우 쑥스러워했다고 한다. 그가 지난 대선 때 조직했던 ‘선진국민연대’ 출신들의 인사 구설에 관한 언론 보도 때문이었다. 박 차장이 직접 언급되지도 않은 일에 왜 ‘사과’했을까. ‘선진국민연대=박영준’이라고 할 정도로 그가 이 조직의 탄생부터 깊이 관여했기 때문이다.

선진국민연대는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외곽 지원단체였다. 박 차장과 김대식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이 주축이 돼 2007년 10월 전국 200여 개 시민·사회단체들을 네트워크로 묶었다. 대선 당시 등록회원수만 463만 명.

“난 인터뷰 안 해요” 손사래

이 조직은 지난해 10월 공식 해체를 선언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선진정책연구원’이 설립됐고, 대중 조직도 재정비 중이다. 선진국민연대 출신이 요직을 독식하고 있다는 비판도 계속 나온다. 올해 2월 이 대통령이 선진국민연대 간부 250여 명과 함께한 청와대 만찬에서 사회자가 “공기업 감사는 너무 많아 일일이 소개 못 하겠다”고 말했다는 얘기가 여의도에 떠돌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내각에서 선진국민연대 출신으로는 이영희 노동부 장관,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김성이 전 보건복지부 장관, 이봉화 전 보건복지부 차관 등이 있다. 장제원·조진래 의원, 박인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권영건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엄홍우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신방웅 한국시설안전공단 이사장, 임동오 사학진흥재단 이사장 등도 이 조직 출신으로 거론된다. 청와대에도 15명가량이 진출했다. 박 차장의 후임인 정인철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도 선진국민연대 대변인 출신이다. 박 차장이 물러난 뒤에도 인사 문제에 계속 개입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의 공기업 인사 담당자는 “(박 차장이) 청와대에 있을 때는 몇 번 만났지만 그 후로는 인사 문제로 접촉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한 행정관은 “선진국민연대 출신들이 요직에 진출했다는 것은 오해이자 과장”이라고 주장했다. “여러 단체의 네트워크라 인재풀도 넓고 이름만 걸어놓은 사람도 많은데 무조건 선진국민연대 출신이라고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도 했다.

실세 장·차관급 5명의 ‘4+1 모임’으로 구설에 오른 것도 박 차장에게 짐이 됐다. 곽승준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장,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 장수만 국방부 차관 등과 매주 수요일 만나던 이 모임은 파문이 커지자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왕차관’ 때문에 정작 총리는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자유선진당 조순형 의원도 6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박 차장의 이름을 거론하며 “‘왕차관 모임’도 있다는데 총리가 실세가 돼야 한다”고 질타했다.

박 차장의 입으로 ‘차관 3개월’을 듣기는 어려웠다. 그는 기자실에 피자를 돌리면서도 언론 노출은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16일에도 기자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난 인터뷰 안 해요!”라고 손사래 치며 황급히 뛰어가 버렸다.

“안희정·이광재 합쳐 놓은 사람”

세종로의 한 국장급 공무원은 “자신을 둘러싼 시선들을 의식해서인지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인 것 같다”고 했다. 국무차장에 임명된 직후 조류인플루엔자(AI) 실태 점검을 위해 일요일 아침부터 인천국제공항을 찾은 게 대표적인 예다. 4대 강 살리기에 반대하는 여주 신륵사 세영 스님을 직접 찾아가 설득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부처 공무원들 사이에선 “유력 의원의 보좌관 출신이라 그런지 정부 행정에 대해 비교적 잘 안다” “회의를 이끌어가고 부처 간 업무를 조율하는 솜씨가 전문 관료 못지않다”는 평판도 나온다. 박 차장은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보좌관으로 11년 일했다. 대선 때는 전국을 돌며 사람들을 설득하고 조직을 만들어냈다.

반면 ‘정보가 많고 이해의 폭이 넓지만 전문성은 떨어진다’는 평도 있다. 과천청사의 한 국장은 “관료 출신이 아니어서 그런지 복잡한 보고를 구두 보고로 대신하게 하더라”며 “진짜 실력으로 관료사회를 장악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가에 비해 정치권의 평가는 상대적으로 박하다. 올해 2월 기획재정부와 한나라당의 당정협의에 참석했을 때도 “국무차장이 올 자리가 아니다”는 비판이 있었다. 한나라당 중진 의원은 “박 차장은 안희정과 이광재를 합쳐 놓은 것 같은 사람”이라며 “4년 뒤 이명박 정부가 평가받을 때 그도 운명을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10년 넘게 보좌관으로 데리고 있었던 이 전 부의장은 물론 이 대통령도 박 차장에 대한 신임이 남다른 점을 염두에 둔 말이다.

‘대통령 형제의 사람’. 여의도가 박영준 국무차장에게 붙인 꼬리표다. 이 꼬리표가 정부 부처 차관에겐 든든한 힘이다. 그리고 넘어야 할 벽이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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