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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시대'서 정몽헌회장 자살 자세히 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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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 고 정주영 회장을 모델로 한 천태산(최불암 분)회장이 소떼를 몰고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는 장면. 대역을 써 촬영한 후 실제 김 위원장 얼굴과 합성 처리했다.

▶ 고 정몽헌 회장을 모델로 한 천사국(김갑수 분)회장이 투신자살 직전 혼자 술을 마시며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있다.

고(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과 이병철 삼성 회장을 모델로 해 제작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MBC 대하 드라마 '영웅시대'(이환경 극본.소원영 연출)가 오는 5일 첫 방송된다. 지난달 30일 시사회에서 공개된 '영웅시대' 초반부는 제작진이 예고했던 대로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투신 자살 사건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이 장면이 지나치게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그려져 방영 뒤 논란이 예상된다. 드라마는 정 회장 투신 상황을 10여분에 걸쳐 묘사했다. 이 때문에 시청자들이 '영웅시대'를 허구적인 드라마가 아닌 사실을 재구성한 재연 다큐멘터리로 인식할 가능성도 있다.

제작진은 드라마 도입부에 '상당 부분 사실에 근거했으나 등장 인물의 개인 및 가족사 부분은 허구'라는 자막을 내보내 논란을 비켜갈 장치를 마련했다. 그러나 정몽헌 회장이 쓰던 것과 유사한 뿔테 안경을 쓴 세기그룹 천사국 회장(김갑수 분)이 검찰의 강도 높은 조사 후 밤 늦게 혼자 본사 집무실로 돌아와 몇통의 유서를 남기고 몸이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작은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지는 장면은 누가 봐도 지난해 8월의 투신 자살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정주영 회장의 '소떼 방북' 당시의 뉴스 자료 화면이 그대로 나오는 데다 화면 합성 기술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년의 정주영 역을 맡은 최불암씨와 악수하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이런 묘사는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제작진의 입장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1, 2부에 잠시 나왔다 40부 이후 다시 등장하는 최불암씨조차 "대본을 처음 받아보고 뉴스를 보는 것 같았다. 이 사건(정몽헌 자살)을 모르는 국민이 누가 있으며, 아무리 천태산이라고 말해도 그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 내용이 완전히 다큐멘터리라 (연기하는데) 혼돈이 오더라. 완전한 가공인물로 표현하면 정주영을 기억하는 시청자들이 연기 못한다고 비난할 것이고, 아주 똑같이 흉내내면 드라마가 아닌 다큐멘터리로 여길 것 같아 10분의 2 정도만 캐릭터를 따오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시사회장에서 제작진은 정주영.이병철이라는 실명을 거론하기를 의식적으로 피하면서 시종 '그 분''그 쪽'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병철 회장이 모델인 국대호 역의 전광렬씨는 본인을 "'그 분'중 한 분"이라고 소개할 정도였다.

'영웅시대'의 신호균 책임PD는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을 차용한 건 사실이지만 이게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건 아니고, 단지 드라마의 재미와 극적 효과를 위해 활용한 것일 뿐"이라면서 "역사적 사실을 징검다리로 하고 그 여백을 상상력으로 채우는 사극과 비슷하게 생각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소원영 PD도 "두 인물을 모델로 한 건 사실이지만 그대로 옮겨 오지는 않았다. 인물 한사람에 여러명의 캐릭터가 섞여 있기 때문에 '이 인물은 실제로는 누구'라는 식으로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천태산의 둘째아들 이국은 정몽구(정한용), 다섯째 오국은 정몽준(이영범)씨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대한그룹 국대호 회장의 삼남으로 훗날 후계자가 되는 철규는 삼성 이건희 회장(임채무)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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