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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절에 간 추기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가톨릭' 이 교회를 나타내는 말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2세기께부터였다.

라틴어의 '카톨리쿠스' , 그리스어의 '카톨리코스' 가 어원 (語源) 인데 '전반적인' 혹은 '보편적인' 이라는 의미의 형용사다.

그 본래의 뜻에서 파생해 '포용적인' 또는 '도량이 넓은' 이라는 뜻도 함께 지니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은 교회를 가톨릭이라 지칭한 적이 없지만 기독교의 목적이 특정한 개인이나 인종,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전체 인류의 구원' 이므로 가톨릭이란 표현이 그 교회를 나타내는 가장 적합한 명칭이라는 데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포용성' 을뜻하는 그 명칭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가톨릭은 다른 종교에 비해 배타성이 적은 종교로 인식돼 있다.

16~17세기 이탈리아 천문학자 갈릴레이는 로마교황청의 압력에 못 이겨 자신의 과학적 이론이 '위법' 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말았지만 그의 친구였던 가톨릭 사제 (司祭) 들은 과학과 종교가 충돌할 수밖에 없음을 인식시키려 애썼다.

가장 친했던 바르베리니 추기경은 갈릴레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천체가 어떻게 운행되는가를 가르치고 있지만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가를 가르친다네. 내가 자네에게 배울 수 있는 것처럼 자네도 나에게 배울 수 있지 않겠나. " 가톨릭이지닌 그같은 포용성의 바탕에는 기독교의 본질이기도 한 사랑과 자비 (慈悲)가 자리하고 있다.

포용력이 전제되지 않은 사랑과 자비는 폭이 좁거나 맹목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사랑과 자비가 지구상에 존재했던, 존재하고 있는 모든 종교 경전 (經典) 의 핵심을 이뤄왔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질량 (質量) 으로 인류 구원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는 불교방송이 캐럴을 들려주고 신부 (神父) 를 출연시켜 성탄절의 의의를 되새기게 하는 '성탄특집 코너' 를 마련하더니 이번엔 김수환 (金壽煥) 추기경이 서울성북동 길상사 (吉祥寺) 의 개원법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는 흐뭇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랑과 자비가 모든 종교의 근원 사상이라면 서로를 경원하고 배타적 감정을 보이는 것은 종교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종교계에 서로를 포용하는 분위기가 확산된다면 우리 사회의 해묵은 갈등과 반목을 없애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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