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은 기초과학 부문에서만 1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반면 한국은 한 명도 없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건가.
“한국 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딱 잘라 말하기 어렵지만 일본에서도 근대과학의 연구라고 부를 만한 게 시작된 건 메이지(明治)시대 이후였다. 당시 일본에서는 서양 기초과학 수준을 따라잡기 위해 대단히 역점을 두고 노력해 왔다. 아마도 그 과정 속에서 점차 독자적 (기초과학) 연구가 육성돼 온 것이라고 본다.”
“과학은 이노베이션의 모태, 위기 때 더 투자해야”
-국가별로 환경의 차이는 있겠지만, 노벨상이라는 결실을 얻기 위해 국가는 뭘 어떻게 해야 하나.
“물론 시간이 걸린다. 교육이건 연구건 장기간에 걸친 축적을 통해 결실이 이뤄지는 것이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특정 시점에서 어떤 정책이 좋고 나쁘다고 꼬집어 말하기는 힘든 일이다. 정책은 긴 안목으로 봐야 한다. 예컨대 일본의 경우 ‘고(高)에너지가속기’라는 건 긴 안목의 상당한 투자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부가 (기초과학 부문에) 만족할 만한 투자를 해줬다고 말하기 힘들다(웃음).”
-교육 문제를 얘기했는데 한국·일본 모두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각하다.
“무엇보다 중·고교에서 입시 중심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게 문제다. 가르치는 범위를 딱 정하고 그 안에서 경쟁을 시키고 있는 것 아니냐. 과학적인 흥미나 재미를 끌어내는 시스템이 아니다. 새로운 것을 흡수할 수 있는 방향을 틀어막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런 원칙에는 동감하지만 교육현장에서 과학적 흥미를 불러일으킬 방법이 제한돼 있는데.
“맞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먼저 교과서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본다. 가르치는 범위를 넓혀 새로운 분야를 더 많이 포함시키면 된다. 부분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또 고시바 도쿄대 명예교수가 제안하듯 대학원의 과학도들이 모교에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열정을 갖고 과학을 소개하는 것도 흥미로운 수단이라고 본다.”

-학부모 입장에서 자녀가 기초과학에 관심을 갖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난 가정교육은 전혀 하지 않아서…(웃음). 다만 어떤 걸 시킨다는 것에는 무리가 따르고 별로 좋은 게 아니다. 자연스럽게 자녀가 하고 싶어 하는 걸 시키면 된다. 다만 자녀에게 소질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시키는 게 좋다.”
-일본으로 대표되는 아시아의 기초과학 수준과 미국·유럽의 수준은 어느 정도 차이가 있나.
“분야에 따라선 일본이 미·유럽과 동등하거나 뛰어나다고 본다. 하지만 전체적인 층의 두께로 보면 일본이 약간 떨어진다. 내가 아시아를 잘 안다고 할 수 없지만 아시아의 경우 대체적으로 과학의 ‘응용’ 부문에 중점을 두다 보니 ‘기초과학’을 추구하거나 육성하는 데 소홀한 것 같다. 투자 액수도 그렇고 마인드적인 부분에서도 그렇다. 전반적으로 보면 연구 투자는 사회적으로 얼마나 공헌하느냐에 기준을 두고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 당연히 젊은이들도 단기 성과를 추구하게끔 ‘만들어지고’ 있다.”
-어떤 분야에서 일본이 미국·유럽에 앞서 있나.
“소립자 부문은 세계 톱 수준에 달했고, 여러 가속기 부문도 세계를 리드하고 있다. 또 물질과학에서도 세계 정상의 수준이라 할 수 있다.”
-21세기 유일의 장래 계획이라고 불리는 1조 엔(약 13조원) 규모의 리니어 콜라이더(linear collider·선형충돌장치)를 아시아에 유치하자는 움직임이 있다고 들었다. 이것이 아시아 과학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보나.
“리니어 콜라이더 같은 걸 아시아 어딘가에 두면 전 세계의 과학자와 관계자들이 그곳에 모이게 되고, 주변에도 그걸 지탱하는 여러 과학시설이 생기는 큰 효과가 있다고 본다. 다만 아시아는 인재 양성이라는 과제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그렇다면 기초과학이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당장 직접적인 기여를 한다고 기대하기 힘들지만 두 가지 점에서 도움이 된다. 첫째, 당장은 유익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장래에 그게 어떻게 발전할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다양한 축적을 꾸준히 쌓아 두어야 미래의 힘이 된다. 둘째는 ‘과학적 지식’을 통해 사물을 보는 관점이나 사고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넓은 의미에서 기초과학은 ‘정신활동’ ‘문화’로서의 의미도 있다.”
-과학, 특히 물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어려서부터 왠지 이론이나 원리가 좋았다. 고교 시절 읽은 아인슈타인의 책 『물리학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가 물리에 눈을 뜬 계기가 됐다. 또 내 고향에 있는 나고야대에서의 연구 결과들이 여러 미디어를 통해 소개되는 걸 보면서 ‘아, 나도 해 보고 싶다’는 흥미를 갖게 됐다.”
-학창 시절 특별한 가정교육을 받거나 과학에 눈뜨게 만든 원동력이 있었나.
“진짜 특별한 게 없었다(웃음). 초등학교 때는 성적이 좋았지만 중·고교 때는 항상 1위를 차지하는 그런 학생도 아니었다. 다만 어려운 문제나 불가사의한 것을 접하면 무조건 거기에 달라붙어 끝까지 파헤치는 경향이 있었다. 예컨대 난이도가 높아 모든 학생이 도무지 풀지 못하는 수학 문제가 나오면 대부분 그냥 넘어가고 포기하지만 난 시험이 끝난 다음에도 그것을 푸는 데 매달렸다. 연구도 마찬가지다.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어 가는 재미, 그리고 그 감각이 연구활동을 지탱해 준 동기부여가 됐다.”
-평소에 노벨상을 의식한 적은 있나.
“이번에 노벨상을 받은 것은 30여 년 전의 연구다(그는 교토대 재직 시절인 72년 마스카와 교수와 공동으로 우주의 성립과 관련한 ‘CP대칭성의 파괴’라는 논문을 완성했다. 입자와 반(反)입자 사이에 미묘한 성질의 차이가 있는 현상을 이론적으로 설명했고 이것이 30여 년 뒤 입증됐다). 시간이 많이 지났고 논문을 쓴 후에는 그와 별로 상관없는 연구를 해 왔기 때문에 크게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다만 주변에서 계속 이야기해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연구 결과는) 원래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관점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논문을 쓴 72년에도 설마 이로 인해 노벨상을 받으리라고 의식하지 않았지만 ‘꽤 중요한 걸 밝혔다’는 생각은 했었다(웃음).”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이 나이가 되면 할 수 있는 것에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 다만 그때그때 흥미가 생기는 걸 연구하고 싶다. 지금은 두세 개 정도 하고 싶은 연구가 있다. 특히 소립자 이론의 구조 중에 이중성(duality)이란 게 있는데 그와 관련한 것들을 연구해 나가고 싶다.”
-격변의 시기다. 100년에 한 번 있을 만한 경제위기라고 하는데 위기의 시대에 기초과학의 역할은 뭐라고 생각하나.
“단기적으로는 기초과학이 경제위기를 구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초과학으로부터 여러 형태의 이노베이션이 탄생한다는 점에서 이런 때일수록 미래를 보고 기초과학에 투자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의 젊은 과학도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과학이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아무도 모른다. 자기가 지금 하는 일이 장래에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엄청난 빛을 발하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나로선 ‘자신이 하는 일에 믿음을 갖고 계속해 도전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그게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