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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14> 대한민국 장수 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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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면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년 이상된 기업은 41개국에 걸쳐 5586개다. 이 중 대부분은 아시아와 유럽에 집중돼 있다. 아시아가 3214개(57.5%), 유럽이 2345개(42%)다. 국가별로는 일본이 3146개(56.3%)로 으뜸이다. 이어 독일(837개, 15%)·네덜란드(222개, 4%)·프랑스(196개, 3.5%) 순. 특히 일본의 경우 1000년 이상된 기업이 7개나 된다. 100년 이상은 5만여 개다. 장수-. 이는 비단 사람만의 욕심은 아니다. 기업인이라면 자신이 일군 기업의 영원불멸을 바랄 것이다. 자, 한국 장수 기업을 탐험해 보자.

정선구 기자

‘50세’ 이상은 780개

우리나라에서 천년 기업 혹은 수백년 기업은 어림도 없다. 우리 선조들이 장사를 경시해서다. 수명을 50년으로 확 낮춰보자.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50년 이상 된 기업은 780개. 그렇다고 백년 기업이 없는 것은 아니다. 두산(1896년)과 동화약품공업(1897년)이 그 주인공들이다.

두산은 ‘박승직상점’이 모태다. 박승직 창업주는 1896년 8월 서울의 배오개시장(지금의 종로4가)에 포목상을 차렸다. 이 상점은 1925년 주식회사 형태로 바뀌었고, 45년 폐쇄됐다가 이듬해 두산상회라는 이름으로 재개업했다. 53년 6월엔 두산산업㈜으로 상호가 변경됐다. 한국기네스협회는 95년 두산그룹을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선정했다. 창립 100주년을 맞은 96년, 두산은 일대 변신을 꾀한다. 90년대 들어서면서 주력이던 식음료사업을 매각하더니 인수합병을 통해 두산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 같은 굵직한 기업을 거느린 중공업 그룹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동화약품공업. 상당수 기업 분석 전문가들은 이 회사를 국내 최초 기업으로 꼽기도 한다. 두산과 달리 설립 당시의 업종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국내 최초의 제조업체이자 제약회사이며 최초의 등록상표(부채표), 최초의 등록상품(활명수)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다. 같은 상호와 같은 제품을 내걸고 같은 자리(서울 중구 순화동 5번지)에 있는 유일무이한 기업이기도 하다. 설립자는 민강 선생. 1897년 당시 궁중에서 사용되던 생약 비방에 양약의 장점을 취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신약 활명수의 개발자 민병호 선생의 아들이다. 이 회사는 CF 스타 양성소이기도 하다. 서수남·하청일·박원숙·김수미·한진희·전원주·설운도·임현식·이순재씨가 이 회사 광고모델을 거쳤다.

신한은행·우리은행·단성사 논란

백년 기업을 이야기할 때 두산과 동화약품에 대해서는 기업 분석 전문가들 사이엔 이견이 없다. 그러나 2006년 조흥은행을 흡수합병한 신한은행과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은행, 지난해 부도가 나서 아산M그룹에 인수된 단성사에 대한 논란은 많다. 그래서 본지는 인수합병됐어도 상호를 유지하며 이어온 100년 미만의 기업은 ‘우리나라 장수 기업 100위’ 표에 포함시켰지만, 백년 기업이 갖는 의미가 매우 커 신한은행·우리은행·단성사는 제외했다. 그럼에도 역사적 가치가 있어 이들 세 기업을 살펴본다.

1897년 우리나라에 은행이 세워졌다. 한성은행이다. 고종 시절 이조참판·도승지·예조판서를 지낸 김종한이 설립했다. 그는 관직에 있으면서 대금업 등 경제활동도 펼쳐 한성은행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이 은행은 43년엔 동일은행을 합병해 조흥은행으로 이름을 바꿨다. 80, 90년대 조흥리스·조흥투자자문·조흥백년재단을 세웠고 충북은행과 강원은행을 합병하면서 덩치를 키웠다. 당시만 해도 은행 서열은 조흥· 상업· 제일· 한일·서울 순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2006년 신한은행에 합병됐다.

1899년 설립된 민족자본은행 대한천일은행은 구한말 선각자들이 ‘화폐융통(貨幣融通)은 상무흥왕(商務興旺)의 본(本), 즉 금융발전이 곧 경제발전의 기초’라는 창립 이념을 바탕으로 삼았다. 고종의 윤허와 황실 내탕금을 자본금으로 지원받았다. 나중에 이름이 상업은행으로 됐다. 32년 한일은행 전신 조선신탁회사가 출범했는데, 99년 금융 구조조정 과정에서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쳐져 한빛은행이 됐다. 2002년 우리은행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국내 최초 영화관 단성사는 1907년 창립 당시 2층 목조건물로 세워졌다. 주로 전통 잔치를 여는 공연장으로 사용되다가 1910년 상설 영화관으로 개축됐다. 1919년 10월 최초로 한국인에 의해 제작된 연쇄활동 사진극 ‘의리적 구토’가 상영돼 한국영화 사상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나운규의 ‘아리랑’이 개봉된 곳이 바로 여기다. ‘역도산’(65년), ‘겨울여자’(77년), ‘장군의 아들’(90년) 같은 흥행작을 상영하기도 했다. 지난해 경영 악화로 부도가 났고, 충무로 영화영상테마파크 주관사 아산M그룹에 인수됐다.

미국 후버 대통령 투숙

조선호텔은 조선철도국이 1914년에 만든 최초의 근대식 호텔이다. 북유럽 양식의 4층 건물에 루이 16세식 응접실을 갖췄다. 1915년엔 후버 미국 대통령, 1920년엔 히로히토 일본 왕세자가 투숙한 적이 있다. 81년 미국 웨스틴그룹과 파트너십을 맺고 웨스틴조선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95년 신세계가 웨스틴조선 지분을 100% 소유하게 됐다. 섬유 분야에서는 경방이 최초다. 1919년 경제 독립과 민족자존이란 창업 이념으로 출범했다. 45년엔 해방 기념 특별상여금이 직원들에게 지급됐는데, 월급의 100배였다고 한다. 김각중 회장은 2000년부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두 번이나 맡았다.

건설업계에선 대림산업이 뿌리가 깊다. 39년 목재업으로 출발해 건설사업으로 분야를 넓혀 지금에 이르고 있다. 아파트 브랜드 e-편한세상으로도 유명한 이 회사는 시공능력평가제도가 생긴 이래 46년 연속 10대 건설사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대한상의 업종 분류로 보면 대림산업보다 먼저 건설업에 뛰어든 기업이 있다. 효자원이다. 25년 북한산 자락에서 탄생한 기업이다. 주로 조경과 관상수 판매, 상하수도 설비공사를 맡았다. 관급공사 위주로 운영했기 때문에 일반인에겐 생소하다. 지금은 종합건설회사로 탈바꿈된 효자건설(효자원 계열사)로 이어지고 있다. 모기업 효자원은 98년 서주우유·서주아이스바로 유명한 서주산업을 인수해 식품업을 주력 업종으로 하고 있다. 목재업의 효시 성창기업은 1916년 경북 영주에서 성창상점으로 출발했다. 이후 본사를 대구와 부산으로 옮기면서 58년 국내 최초로 합판을 미국에 수출한다. 외환위기 때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 대상에 포함됐으나 조기 졸업하고 올해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됐다. 마산청과시장은 최초의 도매시장이다. 22년 마산청과조합으로 시작했다. 38년엔 마산청과시장㈜으로 변경됐으며 51년 중앙도매시장법 공포로 중앙도매시장 업무 대행기관으로 지정됐다. 운수업은 20년 세워진 전북고속이 처음이다.

1400년 넘은 건설사  

가족기업사 전문가 윌리엄 오하라가 쓴 책 『세계 장수기업, 세기를 뛰어넘은 성공』(예지)의 첫 소개 기업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인 일본 건설회사 곤고구미(金剛組)가 나온다. 578년에 창업해 1400년 넘게 버텨온 이 기업은 백제의 사찰 건축 기술자 유중광(柳重光)이 창립 초기에 몸담았다. 일본의 쇼토쿠(聖德) 태자가 시텐노지(四天王寺)라는 사찰을 지을 때 그에게 건축 책임을 맡겼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여관으론 호시료칸(法師旅館)이 꼽힌다. 718년에 세워져 46대손까지 이어지고 있다. 몇 차례 화재를 겪기도 했는데, 창업주 후손들은 그래서 “불을 주의하라. 물에서 교훈을 얻어라. 자연과 친화하라”는 원칙을 갖고 있다.

이탈리아에는 포도주의 명가와 총의 명가가 있다. 피렌체에서 태동한 마르케즈 안티노리(1385년)와 알프스 산기슭 트롬피아 계곡에서 탄생한 베레타(1526년)다. 특히 총기 제조 기업 베레타는 ‘전쟁 있는 곳에 베레타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 미국에서는 가장 오래된 장례서비스 회사 백맨장의사가 있다. ‘1769년부터 우리 가족은 당신의 가족을 돌보고 있다’가 기업 좌우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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