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한국경제]7.가계지출 구조조정하자

중앙일보

입력 1997.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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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 투피스 얼마죠. " "3백26만원입니다. " "주세요. " 서울 강남 갤러리아백화점 1층 샤넬 매장. 세계적인 토털패션 브랜드답게 비싸기로 유명하다.

여기에 와 "왜 이렇게 비싸냐" 고 물으면 촌사람이다.

그런데도 늘 호황이다.

지난 5월 개점 이후 웬만한 매장 3~4배 수준인 월평균 6억원이상의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롯데.신세계등 유명 백화점에 입점한 루이뷔통.프라다.구치를 비롯한 다른 고급 수입브랜드 매장도 상황은 비슷하다.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실직자가 줄을 잇고, 환율 급등.주가 하락.연쇄 부도등으로 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져도 아직 남의 나라 얘기로만 여기는 사람이 많다.

과시적 소비와 충동구매 문제는 일부 계층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저축은 국력' 이 아니라 '소비가 미덕' 인 세상이 돼 일반인 생활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다소 주춤해지긴 했지만 해외여행에서의 씀씀이는 여전히 호기롭고 고급 외제 의류.화장품등이 계속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골프장에는 평일에도 인파가 넘치고 있다.

올 1~9월중 해외여행객이 3백47만명에 달했고 여름 휴가가 낀 7~9월 1인당 해외여행 경비 지출은 1천8백25달러로 지난해보다 2백62달러가 늘었다.

L백화점에서 50만원이상 구매 고객에게 휴대폰을 공짜로 준다고 하자 첫날에만 6만명 넘게 몰리는 바람에 미리 준비한 2만대가 금세 동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오죽하면 '국민소득은 1만달러, 소비수준은 2만달러' 란 말이 나왔을까.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장기 불황과 대량실업은 기업.정부.근로자뿐만 아니라 가정주부등에게까지 고통분담을 요구하고 있다.

아주대 서윤석 (徐允錫) 교수는 "현 경제 난국은 기업이나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렵다.

가정에서도 소비를 줄이고 국산품 이용을 늘려야 한다" 고 말했다.

가계도 고성장.고임금에 익숙해져 있는 체질을 바꾸는 구조조정 대열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 오정훈 (吳부.근로자뿐만 아니라 가정주부등에게까지 고통분담을 요구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오정훈 (吳貞熏) 선임연구원은 "저축률이 떨어지면서 해외차입이 늘고 외환관리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면서 "민간부문의 저축을 늘리도록 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지난해 한국의 국민 저축률은 34.6%로 국내총투자율 (38.6%) 을 밑돌고 있다.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저축률이 투자율을 웃돌았는데 상황이 역전됐다.

경쟁국 대만은 아직도 국민 저축만으로 자국내 투자비용을 충분히 감당하고 남을 정도다.

문제는 방법이다.

옛날처럼 정부가 저축증대와 수입억제에 앞장설 수도 없다.

국민들의 자발적인 협조만이 유일한 해답이다.

한국은행 김재천 (金在天) 부부장은 "개방화시대를 맞아 해외여행이 불가피하겠지만 저축률이 떨어지고 연간 20억달러가 넘는 여행수지 적자가 발생하는 현 상황에서는 자제가 필요하다" 고 말했다.

기업체 구내식당이 붐비고 사내 회식이 간소화하는등 최근 서민층 사이에서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이 더욱 강도높게 확산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국소비생활연구원 김연화 (金連花) 원장은 "일부의 과소비가 자칫하면 서민들의 허리띠 졸라매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면서 "과소비.충동구매를 부추기거나 위화감을 조성하는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고 말했다.

이같은 가계부문의 고통분담을 위해선 정부도 정책적인 뒷받침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상지대 황신준 (黃愼俊) 교수는 "주부들의 의식 변화와 적극적인 협조를 유도하기 위해선 물가안정과 사교육비 경감방안등이 우선돼야 한다" 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월급생활자만 손해본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공평과세를 통해 불균형을 개선하고 소액저축에 대한 각종 유인책과 새로운 금융상품 개발 노력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유진권.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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