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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개 ‘히든 챔피언’은 누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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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삼광전자는 삼성전자의 아류? 아니다. 이 회사는 스피커 그릴(그물망) 생산업계의 강자다. 세계 시장 점유율은 35% 안팎. 명실상부한 세계 1위 업체다. 거래처도 탄탄하다. 일본 샤프·소니·파오니 등 일본 부품업체에 납품한다. 그럴듯한 챔피언 벨트를 매지 않아도, 업계에서 ‘최강’으로 군림하는 기업은 많다.

경기침체 속, 매출 성장세 지속 … 평균 부채비율 50% 미만 #‘우량 재무구조 기반 고속성장’ #대한민국 ‘다윗기업’의 위대한 도전

삼광전자는 대표적 사례다. 아모텍은 아모레퍼시픽의 계열사? 이 역시 아니다. 세계 ‘칩 바리스터(Varistor·전자부품)’ 시장을 호령하고 있는 업력 15년의 중소기업이다. 그것도 고만고만한 회사와 경쟁하는 게 아니다. 세계적 부품기업으로 손꼽히는 일본 TDK, 독일 EPCOS 등과 자웅을 겨루고 있다.

아모텍의 칩 바리스터는 그야말로 ‘숨어 있는’ 톱 메이커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있다. 돌멩이 하나로 거인 골리앗을 무너뜨린 다윗의 이야기는 신화로 남아있다. 탁월한 기술력으로 중무장한 작지만 매서운 기업, 이른바 ‘다윗기업’은 요즘 같은 글로벌 불황 속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다.

문제는 이들의 활동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계 1위를 질주하고 있음에도 사명(社名)조차 낯선 업체가 부지기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 우리는 이제 이들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경제 부활의 키를 이들이 가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다윗기업엔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동력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 한승호 회장은 “한국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선 경제구조 밑단을 책임지고 있는 강소기업을 발굴,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한국엔 얼마나 많은 다윗기업이 있을까?

이코노미스트와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는 창간 25주년 특집으로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승승장구하는 숨은 다윗기업을 발굴했다. 먼저 후보군으로 세계 일류 제품을 보유한 129개 ‘기술혁신형’ 기업(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 인증·이노비즈 기업)을 선정했다. 전체 기술혁신형 기업(1만5286개)의 14% 비율이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실적은 뛰어나다. 129개사의 평균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329억원, 28억원. 전체 기술혁신형 기업 평균 매출액(90억원), 영업이익(4억9000만원)의 3.7배, 5.7배다. 세계 일류 제품으로 글로벌 시장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실적으로 보인다.

혁신기술로 골리앗 무너뜨리는 다윗기업

평상시 같으면 놀라운 실적일 수 있지만 지금은 침체기다. 전년 대비 실적을 감안해야 숨은 다윗기업을 골라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이코노미스트와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는 129개사 가운데 연매출 50억원 미만, 영업이익률 10% 미만, 부채비율 150%를 초과하는 기업은 제외했다. 경기가 제아무리 바닥으로 떨어져도 수익성과 건전성을 유지하는 기업을 찾아낼 요량이었다.

이 같은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은 네오티스(기계·부품), 다믈 멀티미디어(반도체), 대한트랜스(제조), 루트로닉(의료), 모아텍(전기전자), 메가젠임플란트(의료), 바이오스페이스(의료), 뷰웍스(의료), 삼광전자(전자), 수산중공업(건설기계), 스웨코(전기·절연), 시큐브(솔루션), 세코닉스(의료), 잘만테크(컴퓨터), 주성엔지니어링(반도체), 제일메디칼코퍼레이션(의료), 아모텍(부품제조), 안철수연구소(소프트웨어), 알티베이스(소프트웨어), 오로라월드(문구·완구), 오리엔트바이오(제약), 오스테오시스(의료), 올메디쿠스(바이오), 이노와이어리스(무선통신), 이너스텍(무선통신), EMW안테나(부품), 이화다이아몬드공업(다이아몬드 생산), 코맥스(보안감시기기), 케이씨아이(화학), 쎌바이오텍(제약), CTC바이오(사료), 한미반도체(장비부품), 한스바이오메드(의료) 등 총 33개사다. 이들은 불황 한파가 몰아치는 지금, 거함보다 탄탄한 쪽배를 타고 쾌속질주를 하는 강소기업, 이를테면 다윗기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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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개사의 실적은 눈부시다. 평균 매출액은 433억원, 영업이익은 54억원에 이른다. 기술혁신형 중소기업 129개사의 평균 매출액, 영업이익보다 각각 31%, 92% 높은 수치다. 부채비율도 평균 46%에 불과하다.

자산이 100이라면 부채는 50에도 미치지 않는 알짜 회사들이다. 여기엔 어음을 취급하지 않는 회사(대한트랜스)도 있다. 세계 경제가 불황에 시달리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우량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안정적 성장을 꾀하고 있다는 얘기다.

세계 일류 기업 육성해야 불황 탈출

이들의 활약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제조업체 대한트랜스가 생산하는 ‘네온사인용 변압기’는 유럽시장 점유율 4위를 차지하고 있다. 독보적 무선 네트워크 기술을 무기로 세계 핸즈프리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이너스텍은 모토롤라와 자웅을 겨룰 만한 업체로 평가 받고 있다. 외국 유수의 잡지에서 이너스텍의 제품을 ‘최고’라고 치켜세울 정도다.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업체 알티베이스는 세계 최대 DBMS 기업 오라클도 생산하지 못한 ‘하이브리드’ DBMS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기존 DBMS와 달리, 중요한 데이터를 따로 분류·저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완구업체 오로라월드는 세계 인형시장 점유율 45%를 차지하는 히든 챔피언이다.

지난해에도 캐릭터 완구를 무려 3000만 개 수출했고, 500억원에 달하는 외화를 벌었다. 이만하면 ‘국민’ 중소기업이라 불러도 손색없어 보인다. 국내 최초로 제품개발에 성공해 세계로 진출한 다윗기업도 많다. 치과용 의료기기 전문기업인 제일메디칼코퍼레이션은 국내 최초로 치과 교정용 스크루(작은 나사못) 제품을 개발해 미국·일본·독일 등 세계 50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치과 교정용 고정장치는 차세대 세계 일류상품 중 하나다. 의료용 레이저 기술 특허를 31건 보유하고 있는 루트로닉은 지난해 1000만불 수출탑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극심한 경기침체도 이 회사의 질주를 막진 못했다는 것이다. 전문사료제조업체 CTC바이오는 값싼 열대작물 추출물을 이용해 만든 동물사료 ‘CTC자임’을 출시하고,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이 제품은 특히 t당 7000원에 가까운 원가를 절감할 수 있어 “사료 원료인 곡물 값이 급등하는 지금, 최상의 사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CTC바이오 조호연 대표는 “지난해 CTC자임은 90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해외 실적”이라며 “올해는 120억원, 2010년엔 150억원의 수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 일류 기업을 육성해야 한국경제가 어두운 불황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여기서 일류 기업은 대기업이 아니다. 세계 일류 제품을 보유한 작지만 강한 ‘다윗기업’을 말한다. 지식경제부 자료를 보면 2004~07년 수출 증가율은 연평균 13.5%에 그쳤지만 세계 일류 제품으로 선정된 품목의 증가율은 31.3%에 달했다.

전체 수출상품 대비 세계 일류 제품 수출액 비중도 2004년 31%에서 2007년 48%로 껑충 뛰었다. 세계 일류 제품이 그만큼 한국경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수출 증진을 위해선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세계 일류 제품의 발굴·육성이 중요한 정책과제”라며 “세계 일류 기업이 올해 수출목표 4500억 달러 달성에 첨병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던 시기, 글로벌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다윗기업들. 이들의 ‘위대한 도전’이 칠흑 같은 터널 속에 ‘등불’을 켜고 있다. 작은 새싹을 잘 가꾸면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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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개 일류 기업서 33개사 솎아내

숨어 있는 다윗기업 어떻게 선정했나?

이코노미스트와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는 2월 16일부터 3월 23일까지 총 3단계로 ‘숨은’ 다윗기업을 선정했다. 첫 번째 후보군은 800여 개에 달하는 지식경제부 선정 세계 일류 기업이었다.

1차 후보군에서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가 인증한 ‘기술혁신형’ 중소기업 129개사를 선별했다. 작지만 매운 기업을 선정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세계 일류 기업으로 선정돼 있는 129개사가 과연 불황을 잘 견디고 있는지는 평가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연매출 50억원 미만, 영업이익률 10% 미만, 부채비율 150% 초과 기업은 제외했다.

숨어 있는 다윗기업 33개사는 이렇게 선정됐다. 이코노미스트와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는 33개사에 대한 현장 및 구두조사를 통해 힘 있는 장외 기업 5개사도 뽑았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진짜 다윗기업을 조명할 목적이었다. 다윗형 ‘장외’ 세계 일류 기업인 대한트랜스, 메가젠임플란트, 알티베이스, 이너스텍, 한스바이오메드의 선정 배경이다.

이윤찬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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