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원도 아껴 장학금 더 주고 싶은 욕심뿐”

중앙일보

입력 2009.03.27 00:56

업데이트 2009.03.27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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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만난 사람=채인택 피플·위크앤 에디터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회장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관정 이종환 교육재단’의 장학생 이지은씨가 보낸 감사편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형수 기자]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이종환(85) 관정교육재단 이사장은 체코 프라하에서 날아온 편지를 읽고 있었다. “이종환 이사장님께”로 시작되는 편지는 ‘관정(교육재단) 5기 장학생으로 체코 국립예술대에서 안무가 과정을 밟고 있는 이지은’ 씨가 보낸 것이었다. “집안이 파산 상태에 이르면서 현실이 이렇게 무섭고 내 힘으로 감당해 낼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절실히 느꼈다. 관정재단의 장학생이 되었기에 세계적인 현대무용 안무가가 되리라는 꿈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표정이 딱딱하기로 유명한 이 이사장은 편지를 읽는 동안은 내내 웃고 있었다.

삼영화학그룹 회장인 이 이사장이 ‘관정 이종환 교육재단’을 설립한 건 2000년이다.

지금까지 사재 6000억원을 투입했다. 국내외 장학금과 교육기관 보조금 등으로 498억 원을 지급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5일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등급의 훈장이다.

이 이사장은 지난해 2월엔 미국 경제전문지인 포브스가 12개 국가에서 4명씩 총 48명을 선정한 박애주의자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훈장 수여식이 있던 25일 오후 축하 손님으로 북적이던 재단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수훈 축하 인사를 건네자 “사회에 더 많은 기여를 해야 하는데, 훈장을 주셔서 감사하고 기쁠 따름”이라며 “(장학금을) 주면 줄수록 더 주고 싶은 욕심만 생길 뿐”이라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자장면 회장’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검소하기로 소문난 분이 거액의 사재를 출연해 장학사업을 하고 있는데.

“나름의 철학이 있다. 우리나라는 믿을 거라곤 인재뿐이다. 자원이 없는 나라다. 미래는 오로지 인재 교육에 있다. 내가 먼저 하면 다른 이들도 함께 할 수 있을 거고, 분명히 미래가 있을 거라는 신념을 갖고 한 일이다.”

-‘모든 재산을 천사처럼 쓰고 가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고 들었다.

“난 지금도 만원 쓰는 게 쉽지 않은 사람이다. 만원도 나 개인에게는 큰 돈이다. 하지만, 인재 육성을 위한 돈은 하나도 아깝지가 않다. 줄수록 기분이 좋고 더 주고 싶을 따름이다. 더 주지 못해서 대단히 아쉽다.”

-장학생들이 다 딸·아들 같겠다.

“더러 편지가 오는데, (이지은 장학생 편지를 다시 꺼내 들며) 그걸 읽으면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다. 장학금이 그들에게 큰 힘이 되는 거 같아 흐뭇하다. 학생들이 공부에 대한 의욕이 참 대단하다는 걸 느낀다.”

-2010년 ‘관정 아시아상’을 만들어 외국 인재에게도 혜택을 주기로 했던 계획은.

“잠시 연기하고 있다. 경제위기로 인해 환율이 너무 올라서 2010년에 제정하는 건 조금 어려울 거 같다.”

-경제 위기와 환율 상승으로 장학사업에도 애로가 있을 텐데.

“수익이 줄었지만, 장학금은 기일을 절대 어기지 말고 달러 베이스로 지급하라고 지시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장학금이 더 필요할 것 아닌가.”

-최근 나눔과 기부가 일종의 트렌드가 됐다. 이 분야를 한국에서 개척한 분인데.

“기부하는 분들이 늘어난 건 참 반가운 일이다. 예전에는 약간 다른 생각들을 품고 기부를 하는 분들도 있다고 들었지만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감독 체제가 잘 정비되어 사회 환원 자금이 다른 목적으로 유출되는 경우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들어 경기가 너무 어려워 기업들이 장학재단 운영을 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재단에 대한 규제도 까다롭다. 자율성을 줄 필요가 있다.”

-‘남북 통일말 사전’을 발간하는 등 통일문제에도 관심을 보여왔다.

“정치인은 아니지만 통일에 관심이 많다. 남북관계가 긴장되면 경제인들이 기업을 하는 데도 지장이 많다. 오랫동안 통일에 대해서 생각을 해왔고, 어떤 일을 도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신규 사업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90을 앞두고 있지만,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하는 성격이라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삼영중공업이다. 약 두 달 전에 결정하고 건설에 들어갔다. 50년이 넘게 사업을 했지만 내 마음에 진정으로 쏙 드는 기업을 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을 벌였다. 새로운 사업을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재단의 장학금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다. 우리 재단을 어떻게 해서든 더 단단히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벌인 일이다.”

-장학사업에서 앞으로의 목표와 계획은.

“우리 장학생 중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재단을 설립한 게 2000년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박사학위를 받는 학생들이 나오고 있다. 슬슬 때가 오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한 마디 부탁 드린다.

“지금은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글로벌 시대다. 우리나라만 잘 되어도 안 된다. 경제뿐 아니라 문화적 교류와 발전도 중요하다. 그렇기에 더더욱 교육이 중요하고 보람 있는 일이다. 글로벌 수준에 맞는 인재가 많이 나와야 나라의 미래가 있다.”

정리=전수진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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