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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제 온 일본 거장 기타노 다케시 감독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올해 부산영화제에서는 일본영화들이 특히 많은 조명을 받았다.

한국관객들에게 일본영화들은 아직 접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큰 호기심을 부르기도 했겠지만 올들어 각종 영화제에서 일본영화들이 좋은 성적을 거둠으로써 성가가 높아진 탓도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기타노 다케시 (北野武.50) 감독의 '하나비' 는 인기가 폭발적이었다.

그의 작품이 한국에 공식적으로 소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젊은 영화애호가들 사이에는 '비등점' '소나티네' 같은 작품들이 비디오테이프로 유통되어 이미 '기타니스트' (기타노 다케시감독의 열성팬)가 된 이들도 꽤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그를 따로 만나 일본영화계의 현황과 그의 영화관 (映畵觀) 등에 대해 들어 보았다.

- 최근 일본영화들이 활기를 띠고 있다.

그 힘과 동력이 어디에서 온다고 보는가.

“그런가. 나는 그렇다고 보지 않는다.

이마무라 쇼헤이 (今村昌平) 와 내가 칸과 베니스에서 대상을 탄 것 외에 별다른 게 없지 않은가. ”

- 칸에서 신인감독상을 탄 가와세 나오미 (川瀨直美) 같은 젊은 감독들이 주목받고 있지 않은가.

“그래? 난 그런 감독 있는지도 몰랐다.

지금 일본영화는 이마무라 쇼헤이같은 일부 감독들을 빼고는 전부 형편없다. 내가 보기로는 일본영화계에서 나는 암적인 존재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나를 이기고 나오는 젊은 감독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감독이 없다.

기타노 타케시를 뛰어 넘는 젊은 감독이 나오지 않으면 일본영화는 재기불능이다.

젊은 감독들을 보면 카메라워크같은 테크닉은 그런대로 뛰어나다. 그러나 그들은 삶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는다. 삶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공부하지 않으니까 그들이 만드는 영화가 호소력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

- 너무 비관적인 것 아닌가.

“일본 영화는 오즈 야스지로와 구로자와 아키라감독에서 끝이 났다.

일본영화가 부활하고 있니 어쩌니 말들이 많은 모양이지만 내가 볼 때 지금 일본영화는 일본 프로축구인 J리그와 흡사하다.

J리그는 출범 초기엔 열화같은 인기를 끌었으나 조금 지나자 시들해졌다. 일본영화도 그런 식으로 반짝 인기를 끌다 쇠락하는게 아닐까 싶다. ”

- 폭력장면을 빼고 당신 영화를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폭력의 미학' 하면 우위썬 (吳宇森) 이나 쿠엔틴 타란티노감독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이들의 영화를 어떻게 보는가.

“그들 영화에 나오는 폭력장면들이 격렬하다고 느끼긴 하지만 특별히 어떤 정서나 감정을 느끼지는 않는다. 타란티노는 편집이나 촬영이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꼼꼼하다. 내 경우엔 일부러 삭제해 버리는 장면도 그는 굳이 살려두는 편인 것 같다. ”

- 샘 페킨파감독의 '가르시아' 를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꼽은 것을 읽은 적이 있다.

“페킨파감독의 일부 영화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영향을 받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젊은 시절에 고다르의 초기영화나 펠리니의 몇몇 영화를 즐겨 본 적이 있지만 난 결코 영화광이 아니었다. 그 후 어느날부터 내가 생각하는 것을 여러 장르를 통해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 충동과 정열이 중요하다. ”

- 할아버지가 한국인이라고 들었다.

“어머니한테서 '너에게는 한국인의 피가 4분의 1쯤 흐르고 있다' 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형들은 나에게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호적이 없어서 추적해 보진 못했지만 어릴 적 살던 동네에 한국인들이 많았던 건 사실이다. 지금도 가장 친한 친구 두 명은 재일교포 2세들이다. ”

- 영화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이 굉장히 사실적이다. 성격이 원래 다혈질이고 다소 폭력적 (?) 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아마 일본연예계에서 주먹이 가장 빠른 사람을 꼽으라면 내가 될 것이다.

또 전과가 있는 유일한 연예인일 것이다 (웃음) . (약 10년전에 그는 '프라이데이 습격사건' 으로 쇠고랑을 찬 적이 있다. 자신의 스캔들 사진이 일본잡지 '프라이데이' 에 크게 실리자 잡지사를 찾아가 사진기자를 폭행했던 것이다) .스포츠는 복싱과 야구를 직접 하기도 해서 좋아한다.

특히 복싱은 어릴 때 프로선수가 되려고 했을 정도로 미쳤었다. 축구는 잘 하지는 못하지만 보는 건 좋아한다. ”

공동기자 회견장에서 그는 '앞으로 부산영화제에 자주 올 테니까 월드컵 예선전에서 한국이 일본에 한번만 져주면 안 되겠느냐' 며 좌중을 한바탕 웃겼다.

부산 = 이영기기자

[기타노 감독 누구인가]

1947년 동경에서 출생. 메이지대학을 중퇴했다.

'아사쿠사 (淺草) 프랑스 座' 에서 연기수업을 받은 후 '투 비트' 를 결성해 2인조 콤비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약하면서 인기연예인으로 떠올랐다.

이후 콤비를 해산하고 '비트 다케시' 라는 예명으로 솔로로 활동하는 한편 라디오.TV.영화.출판 등으로 영역을 넓혀 나갔다.

시집.에세이집, 소설을 포함해 모두 14권을 출간해 '일본의 르네상스 맨' 으로 불린다.

현재 TV프로 진행자로서 일주일에 7개의 고정 프로그램을 맡고 있으며 시사만화도 그린다.

3년전 오토바이 사고로 죽음 직전까지 가는 중상을 당한 뒤에는 그림그리기에도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다.

작품에는 '그 남자 흉폭하다 (영어제목 ; 폭력경찰)' (89년) , '3 - 4×10월 (비등점)' (90년) , '그 해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93) '소나티네' (94) , '모두 섹스중입니까' (95) '키즈 리턴' (96) 그리고 올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하나비' 가 있다.

각본.편집.주연.감독을 혼자서 도맡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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