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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독립성 놓고 벌어진 중세 ‘타운 대 가운’ 투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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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1118년 그녀의 삼촌 풀베르는 당대 일급 철학자 아벨라르에게 조카의 교육을 맡겼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나이 17세, 아벨라르는 39세였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고 엘로이즈가 아벨라르의 아들을 낳은 뒤 둘은 비밀리에 결혼했다. 분노한 풀베르는 사람들을 시켜 아벨라르를 거세시켰다. 아벨라르는 수도사가 되었고, 엘로이즈는 수녀원에 들어갔다.


논쟁적인 성격의 아벨라르는 수도원에서 뛰쳐나와 1132년부터 10년 동안 파리 성당학교에서 교사로 지냈다. 그의 강의가 어찌나 대단했던지 전 유럽에서 수많은 학생이 모여들었다. 당시 유포된 이야기는 이렇다. 그의 신학적 입장이 문제가 돼 프랑스 ‘땅’에서 강의하는 것이 금지되자 나무 위로 올라가 강의를 했고, 강의를 듣고자 학생들이 그 아래로 몰려들었다 한다. 또 프랑스 ‘공중’에서 강의하는 것마저 금지되자 강에 배를 띄워 강의하니 학생들이 강둑으로 몰렸다고 한다.

아벨라르의 명성에 힘입어 유럽 각지에서 수많은 학생과 교사가 파리에 모여들었다. 중세의 다른 어떤 성당학교보다도 다양하고 수준 높은 강의를 자랑하던 파리 성당학교는 1200년께 파리대학으로 도약했다. ‘중세 최대의 남녀 스캔들’이 대학 탄생의 산파역을 한 셈이다.

중세 대학의 규모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13세기 파리대학의 재학생은 7000명가량이었다. 당시 인구를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규모다. 대학생들은 자신이 대학 소재지 주민과는 다른 독립적·특권적 공동체를 이룬다고 믿었고, 주민들은 학생으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 했다. 이로 인해 ‘타운(town·주민)’과 ‘가운(gown·대학생)’ 간에 격렬한 난투극이 벌어지기도 했다(그림).

얼마 전 서울 에서 대학생들이 대졸 초임 삭감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중세 대학생들이 독립성을 위해 싸웠다면, 요즘 대학생들은 취업과 임금 문제로 21세기판 ‘타운 대 가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자칫 세대 전쟁으로 번지지 않도록 지혜를 모을 때다.

박상익(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