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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멸종 위기 대처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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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 ‘섹스 & 더 시티’ 개봉일엔 모든 유세 일정을 취소하겠다.” 대선 후보 시절 버락 오바마가 던진 농담이다. 영화로까지 재탄생한 그 드라마 팬이 어디 오바마뿐일까. 주인공인 뉴욕의 30대 미혼녀 4인방의 일거수일투족에 전 세계 여성이 울고 웃었다. 특히 “괜찮은 미혼남은 죄다 어디로 간 거야”란 그녀들의 푸념이 남의 일 같지 않던 연만한 처자들 성원이 대단했다. 극 중에서 연애의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진 미란다가 파트너를 연속 소개받는 즉석 만남에 나간다. “저 하버드대 로스쿨 나온 여자예요.” “잘나가는 로펌의 변호사죠.” 순간 남자들의 표정이 심드렁하게 돌변한다.

미국이라고 다를 게 없나 보다. 명색이 남녀평등 시대라지만 구태가 여전한 짝짓기 관행 말이다. 학벌·경제력 같은 조건에서 남자는 자기보다 좀 못한 여자를, 반대로 여자는 좀 나은 남자를 고르는 세태는 만국 공통 같다. 그런 식으로 남녀가 차례차례 맺어지다 보니 결국 제일 조건 좋은 여자와 제일 조건 나쁜 남자만 짝을 못 찾을 공산이 큰 것이다. 최근 국민연금연구원의 보고서만 봐도 그렇다. 36세까지 미혼으로 남는 비율을 살폈더니 여자는 대졸 이상, 남자는 고졸 이하가 가장 높더란다. 이 땅에 ‘골드 미스’와 ‘농촌 총각’들이 넘쳐난 이유다.

2006년 미국 인구센서스에서 결혼 안 한 20~30대가 급증했다는 결과가 발표되자 언론이 흥미로운 원인을 지적했다. 바로 대졸자 중 남녀 성비의 역전이다. 젊은 층에 대졸 남성이 훨씬 적다 보니 대졸 여성이 눈에 차는 남편감을 찾기 힘들다는 거다. 우리나라 역시 2002년부터 그랬다. 초등학교 짝꿍처럼 남녀 대졸자를 일대일로 엮어 준다 쳐도 ‘나 홀로 여성’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미 세계 최저인 우리 출산율이 올해는 1.0명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며 ‘한국인 멸종 위기론’까지 나온다. 여하튼 해법은 결혼이다. 하늘을 봐야 별도 딸 게 아닌가. 통계를 보니 막대한 양육과 교육 부담에도 결혼만 하면 대개 한 명 이상씩은 낳는다. 요즘 농촌 총각들은 개도국 신부를 맞아 출산율을 높이는 ‘애국자’로 떠올랐다. 문제는 고학력 처자들이다. 눈 높은 그녀들이 선진국에서 남편감을 찾으려 해도 그쪽 역시 고학력 남자가 달리긴 매한가지다. 미란다의 선택은 남달랐다. 가임 연령이 넘도록 결혼 못할까 봐 난자 냉동 보관까지 고려했던 그녀는 착하고 귀여운 바텐더와 눈이 맞아 애부터 낳고 결혼에 골인한다. 영 안 할거면 모를까 꼭 하고 싶다면 발상의 대전환도 필요하지 않을까. 애국하기가 그리 쉬운 게 아니다.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