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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국가 지배구조, 이대로는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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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시장 진입에 대한 정부의 인허가 과정도 크게 투명해졌다. 과거에는 정부가 관치금융과 시장 진입에 대한 제한으로 기업의 사활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기업이 시장에서의 평판과 경영분석을 더 두려워하게 됐다. 정경유착의 기반이 허물어진 것이다.

과거 대통령들은 기업들로부터 거둔 자금으로 정당 운영과 국회의원 선거비용을 지원하고 공천권을 행사함으로써 정당을 지배하고 의원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한 권력기관의 정치적 사용으로 의원을 비롯한 우리 사회 각계의 주요 인사들의 사생활과 비리에 대한 징벌, 협박적 수단도 갖고 있었다. 관치금융에 의한 정경유착과 지역 맹주에 의한 가신정치가 사라지면서 정당과 국회에 대한 대통령의 지배력은 크게 위축됐다. 더구나 지난 정부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권력기관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대통령은 정당과 국회, 재벌, 언론, 법조에 대한 영향력을 크게 상실하게 됐다. 대통령은 더 이상 두려운 권력의 존재가 아니라 일상적인 조롱의 대상이 됐다.

반면 국회는 헌법에 명시된 권한이 그대로 살아나게 됨으로써 실질적 권한이 막강해졌다. 과거에는 대통령이 국회를 행정부의 시녀로 전락시켰으나 이제는 오히려 대통령과 행정부의 정책 추진을 국회가 무력화할 수 있고,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국회가 가진 명시적 권한은 국정감사권 등을 포함해 어느 나라 의회 못지않게 막강하다.

민주주의 정치 체제하에서 국가 지배구조의 요체는 대표성, 책임성, 효율성에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지배구조는 이 세 가지 모두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 국민이 직접선거로 뽑아 민주적 정통성을 가진 대통령을 역시 국민이 직접 선출한 국회가 견제하게 함으로써 때로 국정이 오도가도 못하게 되는 ‘2원적 민주주의 정통성(dual democratic legitimacy)’의 문제를 어느 나라보다 심각하게 앓고 있다. 국정의 궁극적 책임이 대통령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통령은 입법 과정에 있어 무력하고, 국회는 국정에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지금 같은 ‘여대야소’에서도 국정이 표류하고 있는데 ‘야대여소’가 되면 국정의 비효율성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거쳐간 네 명의 대통령 모두 실패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고, 그 정부들은 ‘물정부’ ‘무능정부’ ‘아마추어 정권’으로 불렸다. 우리 국민은 민주화 이후 한결같이 무능한 대통령만을 선출했단 말인가. 아니면 우리의 국가 지배구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성찰해 보고 새로운 시스템을 모색할 때가 됐다. 오늘날 국가 간의 경쟁은 바로 국가 지배구조 간의 경쟁이다. 급변하는 세계경제 환경에 적시에 대응하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간에 승자와 패자가 갈리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제구조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가서도 안 된다. 또한 과거의 암묵적 정치 관행이 다시 살아나서도 안 된다. 권력은 투명하게 행사돼야 한다. 그럼에도 국가가 해야 할 일들을 적시에 해낼 수 있도록 이제는 헌법이 명시적으로 새로운 권력구조를 재구성해 내야 한다. 그것이 의원내각제가 되든, 대통령 중심제의 강화가 되든 지금의 무책임한 정치, 비효율적인 행정을 더 이상 지속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18대 국회가 지금 감당해야 할 가장 큰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조윤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