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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서역에서 헤매다]4.우리 민족 恨서린 '황토의 고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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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상은 오늘도 내내 사막이었다. 이따금 사막의 신기루가 나타날 때면 숨이 막혔다.

그런 사막 밑의 여기저기에 1천여군데나 되는 대규모 지하묘지가 있는 줄을 누가 알겠는가.

그 묘지들을 마음껏 장식하고 있는 고대 위·진과 16국시대의 벽화들은 신화에서부터 곡예 그리고 부엌 취사 광경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고비사막 지하의 세계를 아랑곳 없이 지상의 사막을 달려야 했다. 도연명이 노래한 그대로 “가고 가고 어디로 가려느냐”.

고비사막과 그 너머 타클라마칸사막은 도대체 어디쯤인가. 이런 질문은 용케도 내가 누구인가라는 오래된 질문과 다른 것이 아니었다.

여기가 어디인가.

바로 여기에서 사막의 분진들이 일제히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것이다. 여기와 한통속인 쿤룬산에 시원을 둔 황하 상류 일대의 분진도 함께 솟아오른다.

그것은 고도 1만㎞ 안팎의 공중에서 대기단(大氣團)을 이루어 시안(西安) 낙양의 상공을 지나 산둥(山東)지방을 향해 날아간다.

황하 하류와 황해 난바다를 건너가서 마침내 한반도를 뒤덮고도 남음이 있다.

그래서 멀리 태평양 저쪽 화와이에까지 갈 때도 있는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기류는 언제나 서역에서 동쪽으로 그 머리를 두고 있다. 지구의 자전(自轉)과도 관련되는지 모른다.

중앙아시아 사막의 그 미세한 분진이 떼지어 올라 신장 위그르·간쑤(甘肅)·칭하이(靑海) 일대만한 크기를 공중에 만들어 그 분진의 광야가 편서풍을 만나 기나긴 여정의 항행(航行)에 나서는데,이것이 바로 황사이다. 이 황사의 활동은 아마도 지구의 지각운동이 안정된 이래 한번도 달라지지 않은 영원한 활동이리라.

해마다 4월이면 한반도에 어김없이 도달하는 이 불문율의 황사현상은 몇백만년도 더 되풀이되어 그것이 쌓이고 쌓여 황토가 되게 한다.

한반도 백두대간 이서(以西)의 어떤 도시도 그 포장도로를 한 삽만 파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황토가 있다.

실로 오랜 세월을 서역의 사막과 황토지대에서 피어오른 황사가 몇만리를 날아와서 한반도의 지층을 만들어 온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나는 내 국토의 서방정토를 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사실은 꿀처럼 단 난저우(蘭州) 수박이 멀리 아프리카에서 실크로드를 거쳐온 것이나 고대 중국의 포도가 실크로드를 거쳐 유럽 갈리아 지방에까지 가서 맛있는 프랑스 포도주가 되는 것 이상으로 하나의 국토도 혼자 만들어지지 않은 것을 말한다.

모든 존재는 관계적 존재이다. 어떤 세계가 그 고유한 특수성에만 집착하는 일은 문을 열지 않은 집과 같다. 그 고유함이야말로 오랜 보편적인 시간이 다져놓은 하나의 문화적 역참(驛站)일지 모른다.

한반도의 한(恨)서린 황토 세상이 내가 가고 있는 사막과의 숙명적인 인연 없이는 한반도가 아니겠다.

그렇듯이 인류의 영지(英智)나 문명은 그런 역참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낯설게 번져가서 동화되는 것이다. 서쪽의 것이 동쪽으로 오고 동쪽의 것이 서쪽으로 간다.

그런 오고 가는 교류의 혼재야말로 언제나 새로운 문화의 힘을 낳게 마련이다.

지난 20세기초만 하더라도 키플링이 단정한 ‘동은 동,서는 서’라는 절대구분론은 그들의 서구중심사관의 또다른 쪽에서 세계경영의 척도가 되었던성 싶다.

그러던 것이 제2차대전,동서냉전체제와 그 해체를 지나는 과정에서 오늘의 범지구적인 문명감각에 이르렀다.

이제 동양과 서양의 고전적 구분에는 새로운 인식의 교감신경이 요구되지 않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동양과 서양 사이의 중양(中洋)을 선정함으로써 동서의 이질을 매개하는 내일의 신문명을 예감할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실크로드의 사막이 고대의 동과 서를 만나게 하는 자유분방한 국제적 현장으로써 실크와 종이,유리 주조물들이 오고 갔고 정신과 의식의 시장으로서 사상과 예술·신앙 그리고 문자들이 오고 간 것처럼 그런 세계사의 중간항(中間項)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서역은 참으로 이상적이었다.

불교와 이슬람,기독교의 한 갈래인 경교,마니교·조로아스터교·라마교·브라만교 할 것 없이 그것들은 서로 갈등관계가 아닌 공존관계의 이교(異敎)로 다양한 세상을 살았던 것이다.

지난 날 수많은 대상이 오고 간 이 험난한 길이야말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문화의 동맥이었다.

사막의 하루는 섭씨40도의 폭염을 다해서 저물어갔다. 어느새 사막의 밤은 으스스해진다. 옛날에는 낮에 쉬고 있다가 이런 밤에 길을 나섰던 것이다.

둔황(敦煌)에서 신장 위그르 우르무치나 텐산(天山)산맥 그 너머 텐산남로와 북로로 나아가는 길 대신 칭하이땅 걸무로 향했다.

이제 한층 더 자연은 비인간적이다. 사막조차도 공기가 희박한 높은 지대였고 그런 사막은 예외없이 4천m 이상의 황량한 산악으로 에워싸여 있었다.

산 꼭대기는 눈에 덮여있고 산 아래는 억만년의 암염(岩鹽)과 쇠의 원광들이 드러나 있었다.

척박한 사막 한복판에 양떼와 함께 서있는 목동에게는 모든 것을 자기 자신만이 결정해야 하는 그런 고아의 무의식에 잘 길들여 있는 것 같았다. 아니,그 목동은 고독 따위를 전혀 모르고 있는지 몰랐다.

그런 고원의 한곳에 천막을 치고 깔때기·모기·진드기 그리고 전갈 따위를 경계하느라고 선잠을 자야할 내가 자는 곳이 바로 태고시대에는 커다란 바다였다. 그런 바다였다가 지구 충돌이나 별똥에 의해서 어이없는 바다의 무덤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다소금이 바위와 흙 속에 무진장 매장되어있다.

걸무에 이르는 2일간의 자동차 여행은 30㎞쯤의 일방통행지역도 있어서 저쪽에서 오는 차를 서두를 이유 없이 기다려야 한다. 이런 오지에서는 시간이 없다. 가게 되면 가고 멈추게 되면 멈출 수 밖에 없다.

희망도 절망도 함부로 입에 담아서는 안되는 세상에 겁없이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일류로 일하기(一流的 服務),일류로 살기(一流的 享受)’의 표어는 돼지우리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그곳 소수민족들의 모듬살이에서는 숫제 먼 나라의 말이었다.

쿤룬(崑崙)산 입구에 올라서자 벌써 산소 희박으로 호흡이 어려웠다.

나는 오랜만에 단전호흡의 조식(調息)으로 견딜 수 있었다. 산소통 따위는 소용이 없었다.

조식이란 먼저 숨을 아끼는 것이므로 그것은 수행정신의 기본이기도 하다. 사람 뿐 아니라 짐승들도 숨의 양을 줄이고 살아가는 수행자인 셈이다.

모든 산의 으뜸이요 모든 물의 으뜸인 쿤룬산. 그 가장자리를 넘자 거기 끝모를 고원지대가 별세계로 펼쳐져 있었다.

‘아!’라는 소년적인 감탄이 있어야 했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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