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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진단과 해법-릴레이 인터뷰 ⑤ 김종석 한국경제연구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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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만난 사람=박태욱 경제담당 대기자

  김종석 한국경제연구원장은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긴급상황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부가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졸 정규직의 고임금과 마찰적 노사관계, 반기업 정서에 근거한 출자총액제한 등 불량 규제를 정치권이 해결해줘야 한다"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현재의 위기만 넘기면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낙관한다"고 말했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거쳐 미국 프린스턴대(경제학 박사)를 나온 김원장은 미 다트머스대 교수,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을 거쳐 1991년부터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로 있으며 2007년 4월부터 한국경제연구원장으로 재직중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 경제 전망이 어떻습니까. 많은 연구기관들이 하반기에는 나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데.

“많은 전망기관이 상반기에는 어렵고 하반기에는 풀린다는 상저하고(上低下高) 전망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근거는 우선 2008년 패턴이 상고하저였기때문에 전년 동기 대비로 경제전망이 나오는 것을 감안하면 하반기에는 수치가 나아질 것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걸 뒤집어 해석하면 금년 상반기가 엄청나게 어려운 고비가 될 것이라는 뜻도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름이 고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구체적으로 분기별로는 어떻습니까?

“1분기는 마이너스가 거의 확실한 것 같고, 2분기도 불가피해 보입니다. 3분기부터는 어느 정도 회복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때부터는 부양정책 효과가 시차를 두고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미국 주택시장 하락세가 연말까지는 바닥을 칠 것이라는 미국쪽 전망입니다. 벤 버냉키 FRB 의장이 하반기에 경기회복 될 거라고 얘기한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 이번 위기는 분명 미국 부동산에서 시작됐습니다만, 아직 드러나지 않은 위험 요소는 뭐가 있을까요?

“작년 9월 위기설 이후 한경연을 포함한 많은 연구기관들이 우리 경제의 어느 부분이 취약한지 살펴 봤습니다. 대체로 건설분야 PF 문제, 과다한 가계대출 문제, 인수합병 주도로 성장한 일부 기업들의 유동성 문제 등이 지적됐는데 이렇게 위험 요소가 드러나면 역설적으로 큰 문제가 아닙니다. 지뢰가 있으면 피해갈 수 있으니까요. 역설적으로, 비행기 사고나 교통사고 등 보면 전혀 아닐 곳에서 터져 확대 재생산돼서 대형사고로 가곤 합니다. 지금 미국, 유럽, 한국 모두 전혀 상상하지 못한 곳에서 문제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사전적 대비도 좋지만 뜻밖의 장소에서 위기가 발생했을 때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특히 재정부·금감위·한은 등 정부 기관 사이의 정책 협조와 조정(코디네이션)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정작 위기가 닥쳤을 때 대응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말이죠."

- 한편 정치권에서 기업에 투자를 하라고 요구하면서, 100조원을 쌓아두고 있다는 말도 나왔는데.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시장경제 원리와 기업 본질에 대한 견해 차이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정치권은 아직도 기본적으로 기업을 정치의 수단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기업의 팔을 비틀어서 정책에 따르도록 하는 것은 글로벌 경제시대에 맞지 않는 접근방식입니다. 물론 정치적으로 안타까운 마음에서 그런 얘기 할 수 있다고 보지만, 기업인들이 가지고 있는 현금이 얼마건 쓸 일 있으면 쓰지 말래도 쓸 것입니다"

- 정치권은 큰 틀에서 일종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을 얘기한 것 아닐까요? 또 정치인들 보기에 그동안 기업을 위해 규제 많이 풀어줬는데, 어려운 상황에서 호응해줘야 하지 않느냐 하는 기대도 있는 것 같고요.

“국민의 기대가 있는 것은 당연히 기업들도 잘 압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 아래서 기업의 으뜸가는 사회적 책임은 생존 자체입니다. 살아남아서 일자리 지키고 소득 창출해 주는 게 가장 큰사회적 책임입니다"

- 기업이 자체 판단하는 게 맞지만, 위험을 회피만 할 게 아니라 이럴 때 공격적으로 해야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기업을 운영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위험관리의 과정입니다. 투자 자체가 리스크-리턴, 위험성과 수익성이 비례관계로 갑니다. 돌이켜 보면 60년대 대한민국이 안보적으로 얼마나 불안한 사회였습니까. 그 때' 싸우면서 일하자' 같은 구호가 있었을 정도입니다. 그런 전쟁위협 속에서도 고성장을 이룬 것이 대한민국입니다. 지금도 이라크 같은 곳에 투자하는 한국 기업들이 있죠. 기업인의 본질은 리스크-리턴만 맞으면 지옥에 가서 악마와도 거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왜 한국에서 기업들이 투자 안하느냐. 제가 보기에는 리스크에 비해서 리턴이 너무 낮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리스크를 줄여주면 기업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투자할 것이라고 봅니다"

- 일자리 문제에 대해 묻겠습니다. 지난주 전경련이 주도해서 30대 그룹이 대졸초임을 낮추기로 했는데. 옳은 방식입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말했던 잡 셰어링이라는 것은 일자리 유지를 말한 거지,임금 얘기가 아니었는데요. 이러다 신입사원 월급만 줄어드는 기형적 임금구조가 생기는 것 아닌가요?

“기형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동안 우리나라의 대졸 초임 자체가 지나치게 높아 기형이었다고 보는 게 정확하죠"

- 그렇다고 전체적으로 월급을 줄이는 것도 아니고, 지금 들어올 신입사원 월급만 줄인다면 이상한 얘긴데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왜곡 문제와 과도한 청년실업률 문제의 원인이 대졸 정규직 중심의 고임금 구조와 마찰적 노사관계라고 봅니다. 이를 해소하지 않으면 우리 대기업들의 국제 경쟁력 지속가능성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청년 실업자 문제만 해도 젊은이의 84%가 대졸자인데 대학 나오면 다 대기업 가는 줄 아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대기업, 정규직 과보호가 이쪽으로 쏠림현상을 만든 겁니다. 청년실업이 과다해진 한 원인입니다. 물론 청년들이 가고 싶어 하도록 중소기업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 주면 좋은데 그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90%가 넘는 중소기업의 처우를 하루아침에 개선하는 것 보다는 과보호받는 대기업 정규직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처우의 격차를 줄여주는 것이 바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청년실업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 물론 기업 입장에서는 과거부터 고임금 구조를 손대고 싶었겠겠지만, 지금의 위기상황을 이용하는 듯한 느낌을 노동계나 취업준비생들은 받고 있단 말이죠.

“가정을 해서 취업 준비하는 대학생에게 연간 1000만원 덜 받고 삼성전자 들어가겠냐, 안가겠냐고 물어보면 답이 어떨까요? 임금이 그보다 더 적어도 가겠다는 사람이 수만 명은 될 것 같습니다. 기업들이 이런 분위기를 이용하는 것 아니냐고 표현 하셨습니다. 사실은 최근 다행히 노사민정간에 타협이 일어나는 등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때의 아팠던 학습효과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공감대가 있을 때, 우리가 유지했던 잘못된 고용의 관행이나 기형적인 임금구조를 정상화하면, 위기가 지난 뒤에 중소기업·대기업들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으로 봅니다. 그것을 두고 악용이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기회라고 봅니다. 모두를 위한 윈윈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마디로 중소기업 임금을 높일 수 없으니까, 대기업 초임을 낮춰 맞춘다는 얘긴데요. 이건 지난 10년간 비판했던 하향평준화 방식 아닌가요?

“교육이나 서비스라면 하향평준화가 문제가 됩니다. 지금 생산성을 넘는 임금이라든가, 노동시장 처우가 양극화된 문제 같은 것은 그렇게 볼 사안이 아니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자꾸 처우가 좋은 쪽으로 몰리고 실업이 장기화 됩니다. 이런 격차를 줄이는 것은 하향평준화가 아니고 잘못된 이중구조를 타파하는 것입니다"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등은 그런 임금 구조 속에서도 계속 이익을 내 온 것 아닙니까.

“그런 상황이 앞으로도 지속가능하느냐는 차원에서 봐야 되겠죠. 지금 현대차는 글로벌 자동차시장서 상당히 유리한 고지에 있지만 앞으로도 그런 국제적 경쟁력이 지속 가능하냐는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현대차뿐 아니라 삼성전자, 엘지, 포스코, 현대중공업도 이런 글로벌 위기 속에서 한 번 생각해볼 때가 왔다고 봅니다"

- 지금 전경련이 일률적으로 일정 액수를 기준으로 삭감을 하자는 얘기를 하고 있는것 아닌가요.

“아닙니다. 전경련이 얘기하는 것은 가이드라인이고, 권고일 뿐입니다. 전경련이 삼성이나 LG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할 권한도 없습니다. 이 문제는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 문제 중 하나입니다. 그간 주요 대기업들의 초임이 계속 올라 경쟁국보다 수준이 높아진 것은 좋은 사람 뽑기 위한 경쟁적 현상의 결과입니다. 사실 괴로워하며 올린 겁니다. 서로 자존심 문제도 있었구요. 그런 딜레마를 깨기 위해 이번에 권고한 것이고, 주요 그룹이 호응한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걸 계기로 대기업만 생각했던 많은 유능한 대졸자나 졸업생, 젊은이들이 그럴바에 차라리 창업하거나 유망 중기에 가보겠다는 자극제 되면 그것도 국가적으로 손실은 아닐 것으로 봅니다"

- 그래서 30대 그룹이 자발적으로 호응한다고 가정할 때, 취업자는 얼마나 더 뽑을 수 있는 건가요.

“계량화 하기는 어렵지만 기업들 움직임을 보면 초임 낮아진다는 전제하에 당초 계획한 것보다 모집 인원을 늘리는 것은 분명합니다. 만약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자리를 잡으면 내년이나 그 이후에도 기업들이 인력 계획을 세울 때, 그동안 초임이 부담스러워서 못뽑던 인원을 더 뽑을 수 있을 겁니다"

- 초임부담 때문에 고용이 제한되는 부분이 있기는 있었나요?

“분명히 있었다고 봅니다. 그 증거가 몇몇 주요 기업들이 최근 수년간 인턴이라는 이상한, 기형적인 제도로 비정규직을 뽑아 썼다는 사실입니다. 인력 수요는 있는데 정규직으로 쓰기에는 부담이 되니까 그런 일 벌어진 것 아닙니까. 이는 전형적으로 우리나라 노동시장 경직성에서 이중구조 현상이거든요."

- 결국은 일자리가 문제입니다. 기업 외에 나머지 주체는 어떤 노력 있어야 할까요?

“이런 얘기 하고 싶습니다. 일자리 창출하고 지키자고 하니, 일자리가 목적이 되고 마는데요. 사실은 일자리는 일거리에서 나오는 겁니다. 일거리를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경제 활성화 해야하고 경기침체를 막아야 합니다. 그 다음,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고학력 사회라 일자리에 대한 눈높이가 너무 높습니다. 기대치를 현실화해야한다는 얘기죠. 한국경제원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경기 외에 제도적 요인에 의한 일자리 감소의 비중이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큽니다. 즉 고용제도 경직성에 의해서 일자리 창출이 제대로 안된다는 얘기죠. 고용의 다양화·유연화 이것이 꼭 필요합니다. 이와 관련 7월부터 닥치는 기간제 활용제한 기간 만기문제, 파견 근로에 대한 제한 등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할 게 많습니다"

- 기간 연장 문제가 나와서 말씀인데, 오히려 2년 하면 끝낼 것을 4년으로 늘려서 오히려 부담만 되는 것 아니냐는 기업 얘기도 있더라구요.

“기간제를 늘리는 게 순기능 외에 역기능도 많습니다. 고용안정이나 고용의 질의 문제는 무조건 몇 년 후에는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식의 '법률 만능주의'로 접근하면 안됩니다. 거꾸로 사람이 귀해지고 완전고용이 된다고 합시다. 기업들은 비정규직 쓰라고 해도 안 씁니다. 이런 문제는 법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곪아 터집니다. 이런 불량규제 없어야한다고 생각해요. 또 기간제로 있다고 해도 다 해고되지는 않습니다. 절대 다수는 그 회사에 남아 있게 되죠. 그렇기 때문에 고용의 질은 떨어져도 지금은 오히려 고용의 양, 고용총량을 늘리는 데 전력 다해야 할 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지금 파견근로자 문제에 대해 기업들이 다소 미지근한 반응인 것 같은데. 서로 위험을 감수해가면서 노사나 정부가 모두 밀어붙일지 의문인데요.

“지금 오히려 발등의 불은, 기업이나 근로자 아니라 정부에 떨어져 있습니다. 금년 7월부터 1년 사이에 97만명이 해당된다고 합니다. 이 중 절반만 재고용되고 나머지가 안된다고 하면 50만명이 실업자가 된다는 얘기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엄청난 사회적 긴장이 생깁니다. 정부가 사안의 긴박성을 직시해야 합니다"

-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현실적으로

“장기적으로는 폐지해야 하는 제도인 것 맞습니다만, 현실적으로는 정부가 연장을 제안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7월부터 기간제 근로자들이 야금야금 대량 해고되는 일만큼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지금 재정, 소비, 기업투자 문제 등도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지금 하는 정책의 방향, 규모, 시기 등에 대해 어찌 평가하나.

“어려운 일이죠. 그런데 지금 내수외에는 기댈 곳 없지 않습니까. 수출도 잘 안되고 그야말로 자력갱생해야 합니다. 그런데 내수라는 게 소비, 투자, 정부 지출로 구성돼 있습니다. 지금 소비나 투자는 기대하기 어렵고,이럴 때 '최후의 소비자'인 정부가 과감히 풀어야 합니다. 이와 관련, 재정건전성이 나빠진다는 우려가 있는 줄 아니다만, 재정건전성이라는 게 바로 이럴 때 쓰라고있는 것 아닙니까. 2분기 중에라도 정책 효과 나타나도록 조속한 집행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습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국회연설 보니까, 이미 지방 정부에 연방정부 보조금이 나갔습니다. 이게 제대로 집행 안되면 백악관에 주지사 불러서 공개망신시키겠다고 압박하더군요. 저는 지금 그런 리더십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지금 추경 짰다고 일 다했다고 하면 안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 패키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타이밍입니다. 우리 경제는 지금 자유낙하 상태로 잘못하면 경착륙으로 갈 수도 있는데 이걸 막기위한 부양책과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 재정건전성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것이라는 말에 공감합니다만, 그래도 규모가 규모인만큼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저는 우리 한국경제의 건전성이나 성장 잠재력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풀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중요한 것은 추경의 규모보다 내용과 질입니다. 사실이 이 문제는 일본이 반면교사죠.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에 아무도 안가는 시설 따위 쓸 데 없는 것에 돈 써서 얼마나 문제가 많았습니까. 이런 용도로 쓰면 안되고 성장잠재력과 연결되는 곳, 사회 안전망 확충 등에 써야 합니다"

- 사회 안전망에 써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경기 부양 사업 얘긴데 결국 길 뚫고 이런 식으로 하게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 않나요?

"즉각적 효과나, 전후방 고용 창출 효과만 보자면 주택이 가장 크죠. 집 한 채 지으면 그 과정에서 먹고 사는 사람 아주 많습니다. 주택경기가 단기적으로 경기 부양 효과가 큰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지금 찬 밥 더운 밥 못가리는 상황이니까, 사업 선택이 애매할 경우에는 우선 다년도 사업으로 이미 확정된 계획들, 서울-춘천간 전철처럼 몇 년에 걸쳐 하기로 한 것들을 앞당겨 하면 상대적으로 실수가 줄어들 것으로 봅니다. 정리하자면 ^확정 프로젝트 조기 달성^주택경기 부양^사회 안전망 확충^소비 진작 위한 쿠폰제 도입 등이 고려돼야 합니다"

- 소비 쿠폰 얘기가 나왔는데, 외국서는 많이 시행 됐지만 우리는 경험이 없죠. 예전 일본서는 실패한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통할까요?

“일본은 내수 진작 목적이 더 컸죠. 우리는 그런 내수진작보다 빈곤층 대책의 하나로 생각하자는 겁니다. 사실 부작용이 커서, 경제학자들은 원론적으로 이런 소비쿠폰같은 정책을 좋은 정책으로 평가하지 않죠. 그러나 지금은 올해를 잘 넘기는 것이 지상과제입니다. 여기서 잘못되면 대형위기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금년 여름을 넘기는 것에 모든 지혜와 정책적 노력 집중돼야 한다고 봅니다.

- 소비쿠폰이 빈곤층 대책이라면, 차라리 용도나 기간 제한없이 돈을 그냥 주면 좋은 것 아닌가요.

“사실 지난해의 유류세 한시 인하가 그런 것인데요. 물론 아주 극빈층은 현금 보조가 옳죠. 그런데 차상위 층은 소비 촉진적 요소를 가미하기 위해서 기간 정한 상품권(소비쿠폰)이 효과적이라는 의견이 일부 있습니다. 저도 계층에 따라 차별화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빈곤층위한 생계보조는 현금이 확실하고, 차상위 게층 생활안정과 소비진작은 쿠폰이 나은 것 같습니다. 한편, 최근 일부 구청의 복지예산 횡령 사건을 보면서 복지 전달체제도 이번 기회에 다시 점검해야 다고 생각합니다.

- 전달체계 문제를 없애려면 전국민에게 모두 주는 게 좋긴 한데요.

“일본이 그랬죠. 그건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먹고 살만한 사람에게까지 국민세금 돌려주는 건 안되죠"

- 기업 입장에서 보면 돈이 움직이는 기미가 보이나요? 이른바 돈맥경화는 풀리고 있는지.
“답답합니다. 우선 은행들끼리 자율조정 해야 한다는 말은 맞는데, 자기들끼리 모여서 어느 기업 죽이고 그 부실은 어느 은행이 져라 이런게 실무자끼리 협상해서 될 문제인가요? 그렇게 하면 당장 자기 은행 재무제표 나빠지고 BIS 비율 떨어지는데요. 서로 떠넘기기 바쁘니까 자꾸 말만 돌고 12월부터 했는데 1월, 2월 미루기만 하는 거 아닙니까. 이거야 말로 정부가 명확한 가이드라인 만들어 시달해야죠. 이게 왜 안되냐면 결국 정책의 사후 책임 문제가 됩니다. 나중에 청문회 등에 불려나간다면 누가 하겠습니까. 결국 첫 단추를 높은 사람이 풀어줘야 합니다"

- 정부가 주요 정책 결정에 대한 면책성 조치를 내놓으라고 말씀하시는 거네요.

“공무원들이 감사원 감사와 청문회 얘기만 나오면 하던 일도 덮는다고 합니다. 은행들보고 당신들이 알아서 하라고 떠넘기는거죠. 왜 하루빨리 이 문제를 해결 안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 그럼 그 문제가 해결된다고 할 때 다른 문제는 없나요.

"금융의 또다른 전선은 외환입니다. 국내적으로 구조조정해서 유동성 경색 풀어도, 금년 상반기에는 주기적·반복적으로 국제금융불안과 달러 경색현상 나타날 가능성이 큽니다. 우선 경상수지 흑자 유지하고 외채 관리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과제인 것 같습니다"

- 달러화가 한국에서 고공행진 하는 이유는 뭡니까?

“한국 금융시장 개방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거죠. 그런데 많은 분들이 개방이 높아 어렵다고 말할 때 그동안 개방을 통해 얻은 혜택은 간과합니다. 그동안 외국인이 개방된 우리 경제에 투자 많이해서 주가도 많이 올랐죠. 사실 너무 열어 빨리 빠져나갔다는 것은, 나중에 문제가 해결되면 대한민국으로 돈이 홍수처럼 몰려올 가능성도 됩니다."

- 그래도 단기적으로 환율 등락폭이 워낙 크니까, 일각에서는 외환에 대한 일정한 규제 필요성도 제기되는데요.

“경제위기 끝나면 G20가 되건 IMF가 되건 새로운 금융질서 형성 불가피합니다. 그때 무역 규범이나 WTO처럼 공조체제로 가야죠. 우리는 외국자본 싫다고 홀로 규제에 나서면 한국만 소외되는 겁니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 사안은 못됩니다"

- 런던 G20회의가 얼마 안남았는데, 보호무역주의 파고가 높아져 우려가 큽니다.

“그 문제는 글로벌 경제를 둘러싼 또다른 불확실성중 하나입니다. 전쟁이란게 진짜 전쟁이건 무역 전쟁이건 에스컬레이트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애당초 시작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에 보면 선진국 리더들도 모두 대중 영합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오바마도 사르코지도 다 마찬가지죠. 그게 정치의 본질인 듯 합니다. 이렇게 영합적으로 흘러서 자국 자산 보호를 위해 암묵적인 형태의 보호무역 시작되면, 상대방도 마찬가지로 대응합니다. 이 경우 가장 큰 피해자는 무역으로 먹고 사는 대한민국입니다. 이번 런던 G20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목소리를 높여야 할 대목이 이거라고 봅니다."

-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이나 정부가 기업을 위해 뭘 해주면 된다고 보시는지.

“원론적으로 대통령도 얘기했지만, 기업하기 좋은나라를 만들면 됩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얘기하면 자꾸 사람들이 기업주만을 위한 걸로 착각하는데, 기업에는 기업주도 있고, 근로자도 있습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된다는 것은 일하기 좋고 돈벌기 좋은 나라라는 뜻도 됩니다. 이렇게 돼야 부자 국민, 잘 사는 나라가 되는겁니다. 이를 위해 우선 반기업 정서 없애고, 그런 반기업 정서에 근거한 각종 제도와 정치논리 해소해야 합니다. 투자규제 풀고, 그 다음 우리나라 기업환경에 가장 큰 저해요인인 잘못 형성된 마찰적 노사관계를 정상화해야 하고, 고임금에 의한 왜곡· 노동시장의 이중성에 의한 양극화 등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위기 이후 글로벌 자동차·반도체·조선산업 재편되면서 우리 선도기업들이 글로벌 리더로 떠오를것으로 봅니다."

- 국내 기업들이 잘 해나갈 것으로 낙관적으로 보시는데, 그 근거는?

“10년전 위환위기 때는 대기업은 부실했고 은행들도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면 한국은 은행과 선도 대기업들 모두 잘 버티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 일본 유럽은 은행들, 대기업들이 막 넘어가고 있습니다. 전례없는 일이라는 것은 지금 선진국 애기입니다. 미국은 정말 처음 겪는 일이구요. 그런데 대한민국은 사실 이런 일 많이 겪었습니다. 외환위기, 오일쇼크 등등. 마이너스 성장도 몇 번 해봤죠. 그런 의미에서 현재 대한민국이 겪는 문제는 기본적으로 경기침체 문제일 뿐입니다. 거꾸로 우리 기업들이 중상을 입은 선진국 기업들을 합병하지 말라는 법도 없죠"

- 경제위기 관련해서 하고 싶었던 얘기는 더 없으신지.

“영원히 가는 위기는 없습니다. 한국의 경우 1980년 위기가 마이너스성장 21개월, 외환위기때 15개월 불황이었죠. 이번 위기는 두 위기 속성을 다 가지고 있죠. 금융위기이면서 글로벌 위기니까. 그래서 좀 오래가고 골이 깊을 가능성은 있는데, 과거에도 끝이 안보인다 10년 간다 했지만 다 극복했습니다. 오히려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 금산분리, 출자총액제한 문제 같은 것은 어떻게 보는지.

“그런 불량규제야말로 빨리 없어져야 합니다. 그걸 자꾸 악법이니 뭐니 하면서 정략적으로 해석하고, 마치 소수 대기업 위한 것처럼 왜곡하는 것은 정말 안타깝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지금 우리나라 은행들이 자본 확충이 필요한데, 이 나라 안에 민족 자본이 수백조원이 있단 말입니다. 그걸 못쓰게 하는 게 왜 정당화되는지 솔직히 이해 못하겠습니다. 지금은 서울 한복판이라도 공장 짓고 사람 뽑고 일자리 창출하는 게 우선인데, 왜 수도권과 지방을 나누고 대기업 투자를 막는 출자총액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건가요. 지금 우리가 그렇게 한가하지 않습니다. 정말 각성을 촉구하고 싶습니다."

- 노조 전임자 문제나 복수노조 등 노동계 현안도 현상유지를 할 것 같은데요

“그럼 안됩니다.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은 정말 부도덕한 겁니다"

- 지금 이걸 토론하고 고쳐야 하는데 다들 부담스러운 듯한 분위기죠.

“그게 단기주의 아닌가요. 그렇게 미루다 13년이 지난 겁니다. 이런 비정상적이고 기형적인 형태가 13년 된 것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 임기 중에 해결되기를 기대합니다"

- 10년 전 외환위기 때 경제부장이었습니다만, 그 때와 다른 게 위기 초기에 일자리 유지 문제가 제기되는 등 상생의 분위기가 있다는 점입니다.
“맞습니다. 그만큼 성숙한것이고 고마운 얘기입니다. 이것도 우리나라와 국민들의 자산일 수도 있습니다.어려움 속에서도 그런 현상을 보면, 낙관할 근거가 있는 겁니다"

- 사견을 전제로 가장 개연성 높은 시나리오를 그려본다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요.
“어디서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 솔직히 연구자로서 밤잠을 못잡니다. 예를 들어 가능성은 낮지만 미국의 주요 은행, 주요 기업 몇 개가 우연히 동시다발적으로 며칠 사이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그야말로 글로벌 패닉이 재연되겠죠. 우리나라에서 돈 빠져나가고 전세계적으로 마비가 올 겁니다. 그럴 가능성은 물론 낮지만 비행기 추락 같은것도 아주 작고 우연한 계기로 시작되거든요. 저는 그래서 지금 한국경제가 어디가 취약한지 말할 때가 아니라고 얘기합니다. 어디서 댐이 무너질것 같은지 미리 알면 거긴 안 무너집니다. 지금은 뜻밖에 이상한 일이 생길 경우에 대비해, 안전 벨트를 꽉 매고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문제가 생겼을 때 기민하게, 선제적으로 기동타격대가 가서 대응하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리 이승녕 기자

◆김종석 원장=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거쳐 미국 프린스턴대(경제학 박사)를 나왔다. 미 다트머스대 교수,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를 거쳐 2007년 4월부터 한국경제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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