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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이 경쟁력이다] 안동 체험관광 '종갓집 스테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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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 지례예술촌에서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마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관광객들은 주인 김원길씨가 건네는 구수한 입담에 시간가는 줄을 모른다고 한다. [안동=조문규 기자]

"멋진 가족 여행입니다. 어렸을 때 생각이 절로 나는군요."

지난 13일 안동 지례예술촌에서 만난 황문성(41.회사원.대전시 대덕구 송촌동)씨는 "조용한 분위기에 공기도 맑아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며 흡족한 표정이었다. 전날 이곳에 도착해 하룻밤을 지낸 황씨는 "제사 지내는 모습을 보며 전통 제례를 배웠고, 초등생 아들(9)은 밤하늘 별자리를 찾으며 신기해 했다"고 말했다.

안동의 종갓집(종택.宗宅)에 머물며 양반문화를 체험하는 관광상품인 '종갓집 스테이'가 인기다. 종갓집 스테이란 사찰 체험을 하는 '템플(사찰) 스테이'에서 따온 말로 안동 지역의 지례예술촌.수애당.농암종택 등 세 곳이 대표적이다.

◇600년 고택이 관광자원=안동 시내에서 34번 국도를 따라 영덕 쪽으로 30여분 달리면 임하호가 나오고, 산허리를 돌면 숲 속에 한옥촌이 나타난다. 이 곳이 지례예술촌이다. 표지판이 없으면 사찰로 착각할 정도로 한적하다. 소나무.대나무로 잘 꾸민 정원이 양반집임을 짐작하게 한다. 기둥과 평상.서까래 등은 낡을 대로 낡았다.

이처럼 곰팡내 나는 집이 국내외 관광객을 불러 들이는 명소로 떠올랐다. 주말이면 안채.사랑채.서당.객사 등의 방 11개는 관광객들로 동난다. 문화.예술동아리 회원, 외국인과 국내 가족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지례예술촌이 문을 연 것은 1988년이다. 1663년 세워진 종택이 임하댐 건설로 물에 잠기게 되자 의성 김씨 지촌공파 13대 종손인 김원길씨가 300여m 뒤 지금의 산기슭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기둥.마루.대문 등 건축자재는 원래의 것을 사용했다. 김씨는 당초 집을 옮겨 '예술촌'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조용한 산속이어서 작가들의 창작활동 공간으로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김씨 생각대로 초기엔 문인들이 주로 이용했다. 5~15일씩 머물며 시.소설을 쓰곤 했다. 구상.이문열.한수산.강신재.유안진씨 등 문인과 무용가 홍신자씨 등 명사들이 이곳을 찾으면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학자.문화단체 회원.연예인과 외교사절 등의 방문이 잇따랐고, 일반인의 문의도 이어졌다. 더 이상 예술촌을 고집하기 어렵게 됐다.

88년 한해 200여명이던 투숙객이 지난해에는 3300여명으로 늘었다. 숙박료는 한 사람당 2만원, 4인 가족 기준 8만원이지만 방이 없어 투숙이 어려울 정도로 희망자가 늘고 있다. 지난해 수입이 1억원을 넘었다고 한다.

지례예술촌은 수몰 전 마을 이름이 지례리였던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술촌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임동면 수곡리의 수애당과 도산면 가송리 농암종택도 종갓집 스테이에 뛰어들었다. 수애당은 임하댐 건설로, 농암종택은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기 전 옮겨진 것이다.

수애당(경북도 문화재자료 56호)은 39년 수애(水涯) 유진걸(柳震杰.1918~50년 납북.정치인)선생이 지은 집. 그의 손자 효진(40)씨가 2001년 전통체험장으로 문을 열었다. 11칸의 방이 있으며 1박 가격은 3만~8만원. 연간 4000여명이 찾고 있다.

농암종택(경북도 유형문화재 31호)은 조선 중기 '어부사'를 지은 시인 농암 이현보(1467~1555)선생의 종가다. 17대 종손인 성원(51)씨가 사랑채 별당인 '긍구당'등 620여년 전 건물을 분천리에서 이곳으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낙동강변에 위치해 풍광이 뛰어나다. 지난해 5월 문을 열었으나 1년 만에 3000여명이 묵고 갔다. 숙박료는 방의 크기 등에 따라 4만~10만원이다. 농암종택 주인 이씨는 "종가의 빗장을 푼 것이 조상에게 죄스럽지만 한국의 전통을 널리 알린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양반문화 즐길 기회=지난 12일 밤 지례예술촌에서는 관광객 5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전통 제례가 열렸다. 관광객들의 요청에 따라 제사를 시연한 것이다. 주인 김씨는 제사 예절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수애당에서는 손님들이 아궁이에 직접 장작을 땐다. 고구마나 감자를 구워먹을 수도 있다. 마당에서는 투호.널뛰기.굴렁쇠 굴리기 등 민속놀이를 할 수 있다. 여름이면 모깃불을 피우며 시골의 정취를 맛보기도 한다. 오후 8시에는 한지 공예교실이 열린다. 방에 둘러앉아 주인 유효진씨의 부인 문정현(36)씨와 이야기를 나누며 종이 공예품을 만든다.

수애당에서 최근 가족과 주말을 보낸 주부 남지연(40.대구시 수성구 매호동)씨는 "중학 1학년생 아들과 초등 5학년생 딸이 종이 접시 만들기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흡족해 했다.

인터넷 홈페이지도 세 집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집안의 내력과 한옥의 모습, 잘 갖춰진 인터넷 예약시스템이 네티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지례예술촌의 김씨는 방문객이나 집 주변에 핀 아름다운 꽃, 새벽에 피어오르는 물안개 등의 사진을 찍어 올린다. 문의는 ▶지례예술촌(http://chirye.com) 054-822-2590 ▶수애당(http://suaedang.com) 054-822-6661 ▶농암종택(http://nongam.com) 054-843-1202

안동=홍권삼 기자<honggs@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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