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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세 박승복 샘표식품 회장의 건강 비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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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복 회장은 올해 한국 나이로 88세다. 국내 상장기업 대표이사 중 신격호 회장과 동갑으로 가장 나이가 많다. 아흔을 바라보지만 지금도 술자리에선 위스키 반 병을 비운다. 비결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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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한쪽에 선친 박규회 창업주의 사진을 걸어둔 박승복 회장.

1월 15일 오후 2시 서울 충무로에 있는 샘표 본사에서 만난 박승복 회장은 활기가 넘쳤다.

[CEO와 病] 매일 식초 마셔…신체 나이 49세

“오늘만 이미 스케줄 세 개를 소화했어요. 새벽 5시에 일어나 조찬 모임에 갔다가 오전엔 상장회사협의회에서 간부 회의가 있었어요. 그리고 점심 약속을 다녀온 후 지금 인터뷰하러 왔지요.”

박 회장이 현재 맡고 있는 ‘감투’는 20개가 넘는다. 이 중 한국상장회사협의회 회장은 13년째, 한국식품공업협회 회장은 10년째 맡고 있다. 또한 국무총리실 출신자 동우회인 국총회 회장과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이사를 16년째 지내고 있다.

덕분에 술자리는 잦지만 지금도 앉은 자리에서 위스키 반 병을 거뜬히 비운다. “친구들이 거의 다 세상을 떠난 바람에 지금은 함께 할 사람이 없어 자주 못 마셔요. 한 명 있긴 한데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게 영 시원치 않아 보여서 ‘빨리 죽어라’고 했어. 협회 간부들과 가끔 마시는데 요즘은 와인을 많이 마시더라고. 그래도 난 위스키가 좋던데….”

평생 술을 마셔왔지만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다. 기자가 못미더워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지난해 말에 받은 건강검진 결과표를 내밀었다. 혈압, 콜레스테롤, 간수치, 혈당 등 모두가 정상이었다.

“의사가 올 A랍니다. 신체 나이가 49세라던데 앞으로 어디 가서 40대라고 소개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

운동으로 관리해온 건 아닐까. 그는 “총리실에 있을 때 공무원들은 골프를 자제하라고 해서 그만둔 뒤부터 숨만 쉬고 산다”며 “지금은 일 때문에 운동할 시간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집안 내력과도 무관하다. 6형제 중 첫째인 그는 동생 둘을 먼저 보냈다. 박 회장이 건강 관리의 첫째 비결로 꼽는 것은 다름아닌 ‘식초’다.

젊은 시절 술을 많이 마셨던 그는 늘 위염, 위궤양 등과 같은 ‘속병’을 끼고 살았다. 그러다 환갑이 가깝던 80년 일본 출장 길에 지인에게서 식초를 소개받았다. 처음엔 마시기 괴롭고 속이 쓰려서 수 차례 포기했지만 굳게 마음 먹고 꾸준히 한 달을 마셨다. 한 달이 지나자 피곤함이 사라졌고 석 달을 버티니 속병이 다 나았다.

그 후 정기 검진 외엔 병원에 가본 적이 없다. 실제 박 회장은 염색을 하지 않았지만 머리카락이 검고 피부는 젊은이처럼 윤이 났다.“지금은 흰머리가 약간 생겼죠. 식초를 열심히 먹다가 해외 출장을 다녀오면서 두세 달 정도 마시지 못한 적이 있었어요. 어느 순간 거울을 봤더니 흰머리가 생겼더군요. 지금은 해외 출장 때도 식초를 가지고 다닙니다.”

박 회장은 매일 식후 세 번 소주 한 잔 분량의 식초를 물에 타 마신다. 그렇게 30년을 마셔왔다. 그의 식초 사랑은 방송을 탄 후 전국에서 식초 열풍을 일으켰다. 그의 아이디어로 샘표는 지난해에 벌꿀과 섞어 마시기 편한 ‘벌꿀흑초’를 내놓았다. 함경남도 함주 출신인 박 회장은 원래 기업인이 아니었다.

함흥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한 그는 당시 최고 인기 직장이었던 산업은행 전신 식산은행에 들어갔다. 해방 후엔 서울로 와 근무를 계속했다. 59년 은행에서 상사로 모셨던 송인상 씨가 재무부 장관으로 간 것이 인연이 돼 공무원이 됐다. 73년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차관급)이 된 그는 박두진, 정일권, 김종필 등 세 명의 총리를 보좌한 최장수 행정조정실장이다.

격동기에 최고위급 공무원으로 지내면서 최초 국가 홍보 화보 발간, 기념 금겴뵌?제작, 소양강댐 건설, 용인민속촌 건립 등 많은 일을 해냈다. “행정조정이라는 게 정부부처 간의 갈등을 조정해 주는 역할이었습니다. 민원도 많았고 스트레스도 많았어요. 하지만 전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날 다 풀어버리는 성격입니다. 혼자서 단골 술집에 가서 정종 석 잔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 바로 자버리죠. 비록 술을 많이 마셨지만 스트레스가 이어지지 않으니까 건강에 도움이 된 것 같아요.”

1976년 선친이 돌아가시자 장자였던 박 회장이 가업인 샘표를 이어받았다. 샘표는 해방 이듬해인 46년에 설립된 국내 최대 간장 제조업체다. 54년에 등록된 이 회사의 상표인 ‘샘표’는 국내 최장수 브랜드다.

60년대 초반 ‘맛을 보고 맛을 아는 샘표간장’이란 광고 음악을 처음 선보이면서 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회사를 맡은 박 회장은 프리미엄 양조 간장을 개발하는 등 국산 양조 간장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지난해 1650억 원(추정치)의 매출을 올린 샘표식품은 국내 간장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간장만 놓고 보면 일본의 기코망과 야마사에 이어 세계 3대 업체로 손꼽힌다. 그는 “식품 회사는 안전한 제품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나와 내 가족이 먹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아랫사람에게 일을 주고 아예 맡기는 것이다. “김종필 전 총리를 모시면서 바람직한 리더의 모습이 무엇인지 알게 됐습니다. 그분은 일단 일을 주면 일체 간섭하지 않고 믿고 맡깁니다. 아마 그 스타일이 저도 모르게 몸에 밴 것 같습니다.” 박 회장은 현재 아들인 박진선(59) 사장에게 경영을 모두 맡기고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

그는 “매일 출근을 하지만 회사 일에 신경 쓸 틈이 없다”며 “아들에게 잘라 달라고 말하지만 자르지 않더라”며 웃었다. 은행원으로 24년, 공무원으로 12년 그리고 CEO로 33년을 지내면서 한국 산업화 과정을 현장에서 겪은 박 회장에게 최근 위기는 오히려 기회다. 그는 “국내 기업들이 외환위기 때 혹독하게 당했기 때문에 지금의 위기도 잘 이겨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난 2001년 상처한 박 회장은 혼자 살지만 수많은 ‘감투’ 때문에 적적할 틈이 없다. “24시간도 모자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혼자 살다 보니 ‘살림’도 직접 한다. 일하는 아주머니가 일주일에 두 번 와서 빨래와 청소를 해주는 것이 전부다.

“혼자 사니까 아침엔 간단하게 토스트와 오렌지 주스로 해결합니다. 채소를 많이 먹으라고 하던데 난 고기가 없어서 못 먹어요. 점심과 저녁은 대부분 약속이 있어서 밖에서 먹고 들어오죠.”이처럼 멋있게 사는 노신사에게 꿈은 무엇일까. “지금 그런 게 있으면 욕심이지 뭐”라며 털털 웃고 말았다.

손용석 기자 soncine@joongang.co.kr 사진 정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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