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여야 합의 못 하자 고흥길 ‘결단’…“법안 상임위 상정은 의회 기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고흥길 국회 문방위원장이 25일 열린 한나라당 정책의총에서 박희태 대표(左), 홍준표 원내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전격적인 ‘직권상정’ 통보에 민주당 의원들이 위원장석으로 뛰쳐나갔다. 전병헌 의원은 고 위원장에게 다가갔고, 이종걸 의원은 고 위원장의 팔을 잡았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함께 나오며 위원장석 주변은 아수라장이 됐다.

이에 고 위원장은 “미디어 법안 등 22개 법안을 상정한다”고 말하며 의사봉을 3회 두드린 뒤 정회를 선포했다. 고 위원장은 상정 15분 뒤인 4시5분쯤 회의장 뒷문으로 나갔다. 여야가 양보도 없이 수개월간을 끌어온 미디어 관련 법안의 상정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직권상정 여부는 불투명했다. 고 위원장은 19일 문방위 회의에서 23일을 시한으로 사실상 ‘최후통첩’을 한 바 있다. 그래서 전날인 24일에도 회의를 앞두고 긴장감이 고조됐었다. 하지만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가 “전체 국회 상황을 봐 달라”고 요청해 직권상정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고 위원장은 25일 오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오전 중 여야 합의를 지켜 본 뒤 직권상정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야 간 의견 차는 좁혀지지 않았고 ‘지원군’으로 나선 한승수 국무총리도 민주당 측으로부터 협조를 얻기는커녕 쓴소리만 듣고 돌아가야 했다.

이날 오후 회의가 시작된 뒤에도 한나라당 나경원, 민주당 전병헌, 선진과 창조의 모임 이용경 간사는 법안 상정에 관해 추가 협의를 벌였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고 위원장은 이날 회의 시작 전 “오늘은 우황청심환을 안 가져 왔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감 때 민주당 의원들이 연일 거세게 항의하자 “오늘은 우황청심환을 가져 왔다”고 말했던 것을 빗대 민주당 의원들을 안심시킨 것이다.

그러나 고 위원장이 직권상정을 결행하자 민주당은 펄펄 뛰기 시작했다. 전병헌 의원은 “법안 명도 정확히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한 고 위원장의 원맨쇼는 실패한 날치기 쇼”라며 “국회법상 원천무효”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당 변재일 의원은 “처리 의안을 미리 배포하지 않은 상태에서 행한 상정은 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간사인 나경원 의원은 그러나 상정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상임위 상정은 의회 민주주의 기본”이라며 “상정은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 아니며 법안 심의와 합의 처리의 노력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상현 대변인은 “민주당은 법안의 심사는 물론이고 그 전 단계인 회의 상정조차 막으며 국회의 입법 기능을 봉쇄해 왔다”며 이날 상정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이날 직권상정은 오후 1시40분쯤 한나라당 문방위 의원들에게도 통보됐다. 직권상정을 대비해서인지 이날 회의장 앞·뒷문에 평소보다 많은 3~4명의 경위가 배치되기도 했다. 한나라당이 26일 전체회의를 요구한 것도 “민주당이 이날 직권상정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는 교란 작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가영·임장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