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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따라 변하는 출산 풍속도…남편도 분만실 동행 아내와 고통 나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모든것은 세월따라 변하게 마련. 평소 음전하기만 한 아내가 출산의 고통을 견디다 못해 고함을 쳐도 남편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분만실앞 복도를 서성거리기가 고작인 게 전형적인 출산 풍속도. 결코 변할 것 같지 않았던 이 풍속도도 최근들어 변하고 있다.

남편이 분만실에 들어가 아내와 출산의 고통을 함께 하거나 분만실까지는 아니라도 진통실에서 아내의 팔다리를 주무르며 곁을 지키는 이들이 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임산부 혼자서 산부인과를 가는 것이 창피할 정도 (?)가 됐다.

임신여부를 알아볼 때는 물론이고 초음파 검사등 정기검진때도 남편과의 동행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 이같은 현상은 자기 개성이 강한 신세대들이 이제 하나 둘 아버지가 돼가고 있는데다 한 두명의 자녀만 두려는 이들이 대부분이어서 자식에 대한 집착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 게다가 각 병원들이 무통분만법인 라마즈 분만법을 권유해 남편과 산모가 함께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노력도 한 몫하고 있다.

서울강남구삼성동 차병원에서는 매주 40여쌍이 참여하는 '라마즈분만법' 교실이 열린다.

이 교실에서는 임산부 아내와 남편이 함께 나와 같이 라마즈 호흡법을 배우는 것은 물론 누운 채로 다리를 벌리고 실제 애낳는 모습의 실연까지 해낸다.

이처럼 남편까지 열심인 것은 매주 2시간씩의 5주과정을 이수하면 분만실에까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89년부터 시작된 이 과정을 거친 남편만 2천여명. 처음에는 아내가 신청을 해놓고 남편을 억지로 끌고 오는 지경이었지만 요즘은 남편이 솔선해 신청하는 경우가 더 많다.

또 신청자도 정원인 40쌍을 훨씬 넘는 2~3배가 몰려 신청경쟁이 치열할 정도. 그래서 차병원측은 수강인원을 늘일 것을 고려하고 있으며 분당 차병원에도 지난 6월부터 라마즈 강좌를 새로 개설했다.

차병원 외래 수간호사 서승온 (34) 씨는 "요즘 아버지들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데요. 라마즈 교육도 받지 않은 사람이 분만실에 들어가겠다고 때를 쓰는가 하면 밖에서 기다릴 땐 꽃은 기본이고 팬티나 양말까지 준비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라고 들려준다.

차병원의 경우처럼 라마즈 분만법을 권장하고 있는 곳이 인천 중앙길병원과 삼성서울병원. 94년부터 라마즈 분만법을 시작한 중앙길병원에서도 지금까지 5백여명의 남편이 분만실에서 아내와 함께 고통을 나눴으며 분만실은 아니어도 진통실까지 남편을 출입을 허락하는 삼성서울병원에서는 95년이후 5백여명의 남편이 라마즈 분만법을 배워 아내와 산고를 나눴다.

남편이 아내와 함께 분만의 고통을 나누는 일은 미국에서는 극히 일반적인 일. 자녀양육관련 미국 인터넷사이트인 '파더후드웹' 의 최근 조사에서도 기혼여성 9백28명 (복수응답) 의 95.9%가 '분만실에 남편과 함께 있었다' 고 응답했다.

나머지는 남편외 가족 (26.7%).친구 (10.6%).출산도우미 (1.6%) 와 함께 했다.

산모들은 대부분 '분만실에서 남편과 있는 것이 좋았다' 고 (79.8%) . 이처럼 미국에는 라마즈 분만 여부와는 상관없이 남편이 분만실에 들어가고 있다.

실제 둘째 아들의 분만을 남편과 함께 한 김미은 (32.서울시송파구방이동) 씨는 "애 낳는 과정이 끔찍할 정도로 힘들다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 이후로 아이 대하는 태도는 물론 저한테도 무척 달라졌어요. 한동안 청소에서부터 기저귀갈이까지 집안일을 혼자서 다하더라니까요" 라며 경험담을 들려준다.

출산때의 모습만 달라진 것이 아니다.

출산전에 아내와 남편이 나란히 산부인과를 찾는 것은 물론, 출산후에도 휴가를 내 병실을 지키는 남편도 흔하다.

인천 중앙길병원의 수간호사 이상하 (32) 씨는 "임신 초기부터 남편과 함께 오는 경우는 전체 환자중 60%가 훨씬 넘을 정도며 어떤 부부는 서울에서까지 라마즈 분만법 교육을 받으러 오기까지 한다" 며 "요즘 남편들은 마치 본인이 출산하듯 아기를 맞이하는 것 같다" 고 말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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