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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한국에 유리한 미 외교 실무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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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미국 오바마 정부 외교팀의 구체적인 진용이 드러나고 있다. 국무·국방부 차관보를 비롯한 주요국 대사 임명이 이루어지면서 미국 외교의 ‘허리’ 부분이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지난 몇 년간 한반도 문제를 담당했던 팀의 ‘대약진’이다. 워싱턴 정가의 소식통에 따르면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 미국대사가 국방부의 ‘국제안보국(ISA)’ 담당 차관보에 임명된다고 한다. 국제안보국은 유럽과 러시아, 중앙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나토(특히 나토군의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포함)를 담당하는 국방부 내 5개국 중 가장 크다. ‘한국통’인 버시바우 대사가 이라크, 이란, 아프가니스탄 등 해결이 가장 시급하면서도 위험한 미국의 ‘화약고’를 챙기게 된 것이다.

또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주 이라크 대사에 내정됐다고 한다. 이라크의 민주화 과정과 미군 철수, 그리고 그 후의 중동지역 안보구도를 그려내는 중책을 맡게 된 것이다. 북핵문제와 6자회담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뚝심과 인내력, 그리고 뛰어난 협상력이 발탁의 배경이라고 한다. 버시바우 대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국통’이 미국 외교안보의 최대 난제 중 하나인 이라크 문제를 담당하게 된 것이다.

 힐 차관보와 절친하며 그의 ‘멘토(mentor)’로 알려진 리처드 홀브룩 전 주 유엔 대사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특사로 활약 중이다. 보스니아 전쟁을 종식시킨 데이턴 협정을 이끌어 내면서 명콤비를 이루었던 홀브룩과 힐은 이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총괄하게 됐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홀브룩과 힐이 동구권의 해체와 민주화를 다루는 동안에, 버시바우 대사는 주 러시아 대사, 캐슬린 스티븐스 현 주한 미국대사는 주 유고슬라비아 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홀브룩을 필두로 힐, 버시바우, 스티븐스가 한 팀으로 소련과 동구권의 해체과정에서 일어난 전쟁과 민주화 과정, 그리고 대량살상무기 처리문제 등의 난제를 함께 해결해낸 것이다. 또 지난 몇 년간은 한반도 문제, 즉 한·미관계, 북핵, 동북아 안보질서 등을 담당했었다.

 여기서 가장 고무적인 사실은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이들이 미국 외교안보의 가장 중요한 과제와 분쟁지역을 맡았다는 점이다. 우선 한국대사로 근무했었다는 경력이 큰 도움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한·미관계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가 미국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한국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프가니스탄 지원문제를 필두로 해 한·미관계를 진정한 의미에서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격상시키는 데 있어서 한국의 입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이들이 포진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한국의 입장을 보다 정확히, 그리고 가장 미묘한 부분까지 미국에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편 커트 캠블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월러스 그렉슨 국방부 동아태 차관보 등이 ‘일본통’이라는 점을 감안해 한국이 소외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는 기우다. 그렉슨은 비록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 해병대 사령관을 지냈지만 객관적이고 공정한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캠블 역시 과거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방부의 동아태 부차관보를 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문제에 정통한 인물이다. 따라서 이들이 일본에 편파적일 것이란 과민한 반응은 하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한국에 유리하게 짜인 미국의 새 외교안보 진영을 십분 활용하는 전략적 사고와 외교력이 우리에게 있느냐다. 한·미관계를 진정한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격상시키기 위해서 한국은 미국과 그 어느 때보다도 긴밀해야 한다. 미국의 세계전략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필요에 따라서는 적극 협력해야 한다.

함재봉 미국 랜드연구소 수석정치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