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진예술 160년展' 9일부터 호암갤러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지난 95년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이었던

장 클레르는 미술이 인체를 다뤄온 역사를 특별전으로 꾸미면서 맨 마지막을

회화 대신 헬무트 뉴튼의 등신대 누드사진 작품으로 장식했다.

이런 상징적인 장면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넋나간 모델이나 하녀처럼 분장을 하고 사진을 찍은 미국 여성작가 신디 셔먼의 작품이 오늘날 화랑이나 미술관에서 회화작품과 나란히 내걸리는 것은 흔한 일이다.

사진과 회화의 간격이 점점 없어져 보이는 것은 사진이 가진 특유의 불가사의한 매력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같다.

정지된 순간을 잡아내는 찰나성과 얼마든지 복제 가능한 이미지의 재현성.

이런 매력에 몰두한 화가,조각가는 신디 셔먼

이외에 이미 많았었다.알렉산더 로드첸코는

1920년대 중반 자연의 구성적인 모습을 담은 사진을 남겼고 카메라가 보편화된 70년대에 들어서 루카스 사마라스.솔 르윗.앤디 워홀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가들이 사진을 이용하거나 사진 자체로 작업을 진행했다.

미술가들이 남긴 이런 작업들은 사진의 긴 역사 속에서 보면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호암미술관이 9일부터 9월7일까지 개최하는'사진예술 160년'전은 사진의 전 역사에서 보이는 다양한 얼굴을 한자리에서 소개하는 전시다(10일부터 일반공개).'샌프란시시코 현대미술관 소장품전'이란 부제가 붙은 것처럼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은 자체 소장품만으로 긴 사진의 역사를 훑어볼 수 있는 세계에서 몇 안되는 미술관 중 하나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서 사진콜렉션이 시작된 것은 1935년부터.일찍부터 사진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었던 것은 서부라는 자유스러운

분위기도 있었지만 f.64(카메라의 최소조리개값)라는 그룹을 만들어 활동하던 미국 풍경사진의 대가 안셀 아담스가 샌프란시스코에 터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연유로 시작된 사진콜렉션은 초대관장인 그레이스 맥켄 몰리의 열성에 의해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사진과 도로시아 랭등의 사진을 잇달아 기증받으면서 착실히 명성을 쌓게 됐다.

이번에 국내에 소개되는 사진은 1만여점의 이곳 소장품 가운데 사진의 역사를 대표할 만한 작가를 중심으로 고른 1백21점.

사진술이 처음 등장했을 때 아무도 사진이 예술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다만 그때까지 부유층만이 즐길 수 있는 초상화를 서민들까지 확산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술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수많은 초상사진들이 찍혔는데 이번 전시도 1848년 무렵 찍힌 한 소년의 초상사진부터 시작된다.

초상사진처럼 초창기의 사진은 사진이 가진 매력적인 기능,재현과 기록에 충실한 것들이 대부분이다.그 모습을 펠릭스 테이나르의 피라밋 사진이나 에드워드 머브릿지의 말탄 사람의 연속동작 사진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세기들어 사진의 역사는 일변하는데 그 이유는 간편한 카메라와 휴대용 필름의 등장 때문이었다.이런 편리함 때문에 사진은 개인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매체가 됐고 비로소 예술과 연관을 맺기 시작했다.

알렉산더 로드첸코가 사다리를 오르는 사람을 기하학적 구도로 포착한'무제'나 비에 젖어 뿌옇게 흐려있는 도시의 풍경을 마치 인상파그림처럼 카메라에 담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봄소나기'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카메라는 30년대들어 사회와 새로운 관련을 맺는데 미국 농업안정국에 고용됐던 도로시아 랭이 찍은 퀭한 눈초리의 남부농장주연맹대표의 초상은 다큐멘타리 사진의 한 전형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이어 등장하는 에드워드 웨스턴의'사막'이나 안셀 아담스의'원더호수에서 본 맥킨리산'처럼,미국의 자연을 웅장하게 찍은 사진들은 라이프지의 등장과 함께 사진을 미국적 장르로 인식시키는데 많은 기여를 한 작품들이다.

50년대 중반이 되면 현대사진의 파이오니어라고 불리는 로버트 프랭크와 윌리엄 클라인이 등장해 주관적 표현이란 사진의 새로운 기능을 찾아내게 된다.프랭크의'아스토광장'이나

클라인의'검은 비상구'는 50년대 중반 뉴욕의 일상모습을 흔들림이 있는 영상과 거친 입자로

표현해 현대문명의 비관적 모습을 주관적으로 그렸다는 평을 듣는 작품들이다.

최근 사진은 로버트 매플소프의 정물이나 누드사진처럼 고전주의로 회귀하려는 움직임도 없지 않지만 현대미술의 주요 관심과 거의 비슷하게 인체를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디 셔먼이 얻어맞은 여인의 분장을 하고 찍은 사진이나 존 코플란스의'두손'에서 이런 흐름을 읽을수 있다.그외에 사진의 역사가

보여온 얼굴은 다양하다.그러나 1903년 천연당 사진관이 세워지면서부터 시작되는 우리의 사진 역사를 여기에 오버랩시켜보면 상당부분이 비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사진의 역사를 되돌아 보는 이번 전시가 국내에서 열리게 된 점은 여기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만하다. 윤철규 미술전문기자

<사진설명>

▲사진 발명 초창기에는 사진의 역할을 사실의 재현으로 보았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사진 속의 현상은 모두 연출된 것이라는 인식 아래 사회적으로 가공된 이미지를 담아내는 경향이 짙어졌다.샌디 스코글랜드의 1994년 작품'결혼식'.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