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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化 베끼기'상반되는 두 시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베끼기'에 대해 완전히 상반되는 두 시각-하나는 범죄행위 또는 자살과 다름 없다는 것,

다른 하나는 하늘 아래 처음부터

새롭고 독창적인 것은 없다는 주장이다.

긴말이 필요없을 것 같다.우리 주류

대중문화와 서구의 문화 현주소 읽기가 바로 그 답이 될테니까.

◇복사기 같은 한국문화,그 추악한 현장=텔레비전을 보면 화가 난다.쓸만하다 싶은 노래는 금세 표절로 밝혀져 하차한다.회당 수천만원씩

쏟는 방송 드라마는 또 어떻고.숫제

일본 만화,미국 연애소설을 대놓고 베꼈다는 비난에 휩싸여 있지 않은가. 최근에 한국영화를 보러 가면 창작의 물결 대신'왕자웨이 따라 배우기'열풍을 만난다.

'홀리데이 인 서울'은 왕감독의'중경삼림'을 한뜸한뜸 따와서 기워 만들었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흥행에 성공한'비트'마저도 왕자웨이와 함께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감독의 '키즈 리턴'을 흉내 낸 흔적이 엿보인다.

아이디어의 무작정 도용과 함께 원숭이처럼 남의 문화풍을 고스란히 모방하는 것도

문제다.흉내는 한국 문화의 빈약함을 또 다른 각도에서 보여준다.

최근 인기를 끌고있는 가수 박진영은 노래 중간에 영어로 랩을 처리한다.그의 백댄서들은 미국 흑인들의 머리 모양을 하고 흔들어댄다.

어디 흉내낼 게 없어서 미국 하층 흑인문화를 그렇게까지 본뜨고 있는가. 방송을 보면 홈드라마와 코미디의 혼합체인 미국식 시트콤이 갑작스럽게 우리 브라운관에 넘치고 있다.일본식 트렌디 드라마도 그렇다.

한번 히트를 치면 끝없이 흉내의 연속이다.

자가복제도 있을 정도다.이런 양식이 과연 한국인에게 맞는지 고민한

흔적이란 찾을 수가 없다.

이런 조각 사례들로 봤을 때 한국의

주류 대중문화는 창조성과 주체성을 상실한 문화 조립 공장에 다름 아니다.

왜 그런 극언을 하냐고? 한국 주류 대중문화 생산자들은 창작의 고통을 남이나 다른 나라에 미룬 채 그들 것을 고스란히 모방한 상업물만 줄줄이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창작이 없으면 문화도 없다.한국 문화의 현주소를'추악한 문화 베끼기의 현장'이라고 해도 누가 반론을 제기할 것인가.이 땅을 풍미할 창조적 문화가 그립다.

◇모방 없으면 창작도 없다=가슴을 넓게 펴고 생각해 보면 베낀다는 것도 항상 나쁘지만은 않다.베낌과 흉내 내기가 창작으로 이어진 사례들도 많기 때문이다.

프랑스'누벨 바그'운동의 기수들은 미국 영화를 인용해 새로운 프랑스 영화의 길을 열었다.'황야의 7인'은 구로사와 아키라의'7인의 사무라이'의 내용을 그대로 미국식으로 재현한 것이다.

하지만 서부극의 비장미를 보여주는데

그만한 내용이 또 있을까. 틴 타란티노감독의'저수지의 개들'과'펄프 픽션'에 나오는 잔혹.황당한 장면들은

이탈리아의 영화감독인 다리오 아르젠토를

상당 부분 흉내 낸 것이다.

하지만 타란티노는 이런 이류 영화를 재료로 장미꽃을 피웠다.

홍콩 영화는 미국 영화와 50~60년대 한국 영화를 교과서로 삼고 배워 이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

우리의 미국.일본.홍콩 문화 베끼기는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중간 단계로 봐줄 수도 있지 않을까. 아주 과거로 가봐도 마찬가지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당시

선진국이었던 이집트의 문화를 상당량 베끼면서 수준 높은 문화를 일궈냈다.파르테논 신전으로 상징되는 주랑식 건축물(큰 기둥이 줄이은 건축물),사실적으로 새긴 조각들은 이집트 문화의 영향 아래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동방문화를 적극 수용함으로써 헬레니즘 문명을 이뤘다.이후 로마는 그리스를 모방했고 게르만족은 서로마의 문화를,슬라브족은 동로마의 문화를 적극 수용해 자기들의 문화 수준을 높였다.

언더에서 오버로 치닫는 한국의 민중음악도 서구의 포크송과 록음악,그리고 사라져 가던 우리의 민족음악을 차용하면서 새 생명으로 자라 오지 않았던가. 베낀 문화의 소비는 자체생산을 낳고 자체생산은 다시 새로운 창조로 발전하게 마련이다.

베끼기란 문화 수용을 통한 자체 문화발전의 한 과정인 것이다.

산업이랄 수 있는 주류 대중문화가 모든 것을 창작하겠다고 고민할 수는 없지 않은가.자체기술이 없다고 공장들이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채인택 기자

<사진설명>

이윤택 작.연출의 연극'오구-죽음의 형식'(사진)은 죽음과 장례식의 희화라는 모티브를 창의적으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듣고 있다.'중경삼림'을 베꼈다 해서 논란을 빚었던'홀리데이 인 서울'(사진)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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