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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싱글 '주말외유族' 급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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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중견 건설회사에 근무하는 조모(26.여)씨는 금요일인 지난 20일 평소와 달리 출근길에 여행가방을 따로 준비했다.열흘전쯤 직장다니는 친구 3명과“금요일밤에 사이판으로 뜨자”고 했던'야반도주'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오후5시.한시간 후면 김포공항으로 출발해야 한다.그런데 갑자기 거래처에서 사람이 찾아오는 바람에 잔무처리가 늦어졌다.결국 6시40분쯤에야 도망치듯 회사를 빠져 나올수 있었다.

“직장생활이 다 이런건가요.쥐꼬리만한 월급에 웬 스트레스는 그렇게 덤으로 많이 주는지.” 저녁7시30분.김포공항 국제선 제2청사 14번 게이트에서 만난 조씨의 푸념이다.대부분 직장생활 3~4년차인 조씨의 친구들도 하나둘씩 가벼운 옷차림으로 속속 합류했다.“왜 굳이 사이판까지 떠나느냐”는 물음에 그녀들의 대답이 걸작이다.“제주도부터 울릉도까지 주말이면 안가본 데가 없어요.국내는 더이상 성에 차지 않아요.비슷한 값이면 물건너 가서 스트레스 푸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요”.'금요일 퇴근은 사이판으로,월요일 출근은 괌에서.' 조씨의 경우처럼 요즘 금요일 밤이면 서울을 빠져나가 태평양의 섬으로 탈출하는 직장인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이름하여'금요일 밤의 엑서더스'. 괌.사이판.홍콩.필리핀등 4~5시간 전후의 비행이면 닿을수 있는 거리에 있는 섬들이 이들에게 손짓하는 휴식처다.

지난해 첫선을 보인'금요일 밤에 떠나 월요일 공항에서 출근하는 여행상품'은 올들어 공무원사회는 물론 일반 직장에서도 격주 토요휴무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직장인들의 금요일 밤 탈출이 급속히 늘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괌과 사이판의 경우 금요일 밤8~9시에 출발해 월요일 아침6~7시 도착하는 비행편을 마련하고 있다.지난 20일의 경우 아시아나항공은 승객이 넘쳐 사이판행 임시 비행편을 마련할 정도였다.

이날 밤8시55분에 사이판으로 출발한 아시아나 OZ 252편의 경우 2백60석이 만석된 상태에서 아열대의 휴양지로 푸른 날갯짓을 했다.최소한 3박4일만큼은 절대자유.모든 것을 잊자.누구의 간섭과 방해도 거부한채. 기내를 둘러보니 신혼부부로 보이는 승객은 20%내외.원색의 옷차림과 선글라스를 걸친 20~30대 남녀 직장인이 절대다수다.남녀가 무리지어 떠나는 광경도 보이지만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떠나는 경우가 태반이다.

새벽4시.거제도의 절반도 안되는 크기의 미국보호령 사이판섬.밤이라 상쾌한 공기가 먼저 마중나와 기다린다.숙소에서 여장을 푼 뒤 한숨 돌리며 잠을 청하고 나면 완전히 딴 세상이 아침을 열어준다.

의류제조업체 3년경력의 이모(28)씨는 동행한 친구들과 함께 사이판 남쪽 오비안 비치로 출발한다.

“제주도 근해에서 스킨스쿠버를 해봤지만 아무래도 사이판의 바닷속을 따를순 없죠.하루종일 코발트빛 바닷속을 드나들면서 원색의 열대어들과 산호들이 만들어내는 천연의 회화를 보다보면 직장생활의 묵은 때가 훨훨 떨어져 나가는 것같아요.” 법률회사에 근무하는 고경희(29.여)씨의 경우 20일 오후 좀 특별한 시내관광에 나섰다.

“사이판에 오기전까지는 2차대전 당시 징용된 한국인과 위안부들이 이곳에서 많이 희생됐다는 얘기만 얼핏 들었었어요.막상 한국인 위령탑과 위안부 거주 동굴등을 둘러 보니 가슴이 미어지는군요.” 역사현장 순례도 사이판에서 얻는 값진 알맹이중 하나인 것이다.영화'빠삐용'의 마지막 장면이 촬영된 만세절벽과 일본군 최후사령부외에 드라마'여명의 눈동자'가 촬영된 곳도 둘러볼수 있어 스크린 기행도 함께 이뤄진다.같은 시각.사이판 서쪽의 산호섬 마나가하에는 젊은이들을 유혹하는 환상적인 해변과 백사장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이곳은 20대초반의 직장인들이'활약'하는 곳.올초 괌에 다녀왔다는 무역회사 직원 김모(23.여)씨는“야자수 그늘에 그냥 누워 하늘만 보고 있어도 스트레스를 잊게 된다”며 탄성을 내지른다.

23일 월요일 오전7시15분 김포공항 국제선 입국창구.출국때 만난 조모씨는“돈이 모이면 다음번엔 괌으로 뜰 거예요”라고 말했다.그는 출근길을 서두르며 지하철역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사이판=글.사진 장세정 기자

<사진설명>

사이판 서쪽 해안에 위치한 타가비치에서 제트스키를 즐기는

모습.초보자라도 간단한 작동요령만 익히면 금방 바다를 가르는 제트스키를

즐길 수 있다.사이판에는 제트스키.스노클링.윈드서핑등 수상스포츠를

즐길수 있는 곳이 즐비하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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