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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파워인터뷰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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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파워인터뷰는 그게 궁금해 강기갑 민노당 대표를 만났다. 의사당 폭력사태에 대한 공식 사과가 진심인지도 알고 싶었다. 강 대표는 인터뷰에서 ‘피가 거꾸로 치솟는다’고 표현했다. 국회 사무총장의 책상 위로 뛰어 올라가고 소림사 승려처럼 철제 봉을 휘둘렀던 그의 심리 상태가 그런 말들에서 얼핏얼핏 배어 나왔다. 그는 경제성장보다 평등이 중요하다며 남미의 쿠바와 베네수엘라를 한국의 경제 모델로 제시했다. 그걸 납득하기는 어려웠다. 인터뷰는 15일 오전 9시부터 국회 민노당 대표실에서 두 시간 동안 진행됐고, 18일에도 일부 추가답변을 받았다.(※는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강기갑 민노당 대표는 의사당 폭력이 잘못됐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검경의 수사는 정치적이어서 소환에 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안성식 기자]


-강 대표를 인터뷰한다니까 많은 사람이 수염을 기르는 이유를 물어 보라더라.

“제가 농사도 자연농법으로 짓는데 풀도 안 벤다. 잡초가 우거져야 천적도 발생하고 방어가 되니까. 사실은 1990년대 말에 농촌 총각 결혼대책위를 구성해서 첫 쌍 결혼시킬 때까지 이발을 하지 말고 수염도 깎지 말자고 서로 다짐했다. 첫 쌍 결혼하면서 수염을 깎았는데 다음 쌍 할 때까지 안 깎고 그러다 보니….”

-정치를 어떻게 하게 됐나.

“농민운동도 정치 세력화가 필요하더라. 2004년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부의장을 하고 있었는데 전농이 민노당과 결합하면서 농민후보 몫으로 비례대표가 됐다. 전농은 간부가 아닌 일반 회원 중에서 비례대표를 내려고 했는데 할 만한 사람들이 다 재판에 계류 중이어서 내가 엉겁결에 선택됐다.”

-정치를 한 게 잘됐다고 보나.

“농사를 짓는 게 가장 가치 있고 좋은 일이라는 생각에 변함없다. 흙으로 돌아가 농사꾼으로 살고 싶다.”

-하지만 18대는 지역구 출마는 본인이 결정한 게 아니었나.

“비례대표로 당선돼 국민 인지도도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불출마는 당에 대한 배신행위였다.”

-그럼 결국 정치를 떠나긴 어렵겠다.

“그건 모른다. 선거재판도 받고 있고, 요즘 국회 (폭력)사태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도 있고. (※현재 검찰이 수사 중) 나는 주어진 순간에 온몸을 던질 뿐이다.”

-정당의 대표가 국회 책상 위에서 뛰고, 봉을 휘두르는 걸 보고 모두 충격을 받았다. 아침에 택시를 탔는데 국회에 가자니까 운전기사가 ‘싸움질만 하는 거길 왜 가느냐’고 대놓고 빈정대더라.

“그때 피가 거꾸로 솟았다. 어쨌든 자제하지 못한 데 대해 자책했고,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국회 활동하면서 울분을 많이 느꼈다.”

-어떤 울분인가.

“노무현 때나 이명박 때나 국회가 정부 거수기다. 장관들은 국회의원 기만하고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게 굉장히 많다. 그런 것에 대한 울분과 분노를 삭히려고 단식도 하고, 묵상도 했는데 이번에 그걸 참지 못해 10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됐다.”

-제도 정치권에 들어온 것은 대의 민주주의를 인정한다는 뜻이고, 그 핵심은 다수결이다. 다수당이 의회를 주도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다수결이란 게 소수 의견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전제가 달려 있는 거다. 그게 안 지켜졌다. 이번 MB악법을 보면 용납할 수 없다. 총선에서 다수당이 됐다고 맘대로 법 만들어 처리하라는 것은 아니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있고, 반대할 권리도 있지만 법이 바뀔 때까지는 법을 어기면 처벌받는 것 아닌가.

“그런 게(저항과 거부) 자유롭게 일어나야 제도도 개선하고 악법도 개정할 수 있다.”

-의사당 폭력과 관련해 경찰이 출석을 요구했는데 거부했다. 강 대표도 법에 따라 국회의원 됐고, 의원은 법을 만드는 게 직업인데 법을 인정 안 하겠다는 건가.

“경찰도 모자라 검찰총장까지 직접 나서 수사를 지시했다. 국회에서 의사활동을 못하도록 신변을 넘겨버리겠다는 소환엔 결코 응할 수 없다. 정치적 의도가 담긴 수사다. 당 차원에서 논의해 대응할 것이다.”

-북한 문제를 어떻게 보나.

“서구는 자본주의 금융자본의 탐욕적 폐해가 많이 나타났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가 무너지고 있다. 그러나 동유럽과 러시아 등은 자본주의 폐해가 많이 퍼지진 않았다. 그런 쪽으로 가면 경제교류를 할 분야가 굉장히 많다.”

-러시아·동유럽과 관계를 강화하면 자본주의 폐해에서 벗어난다는 말인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하면서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미국 경제가 어렵고 한계를 보이고 있지 않나. 그쪽(동유럽권)으로 진출해야 한다. 그러려면 남북 관계를 소통시키고 활성화시켜야 한다.”

(※강 대표의 주장과 달리 러시아는 이미 자원을 무기화했고, 말을 잘 안 듣는 우크라이나에 대해선 올겨울에 가스 공급을 중단해 우크라이나 경제에 치명타를 입혔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핵을 안 갖는다고 하다가 핵 실험을 했다. 그건 왜 비판 안 하나.

“전쟁 반대· 핵 반대· 비핵화가 민노당의 중심 기조다. 북핵을 푸는 데 남측이 더 적극 나서야 한다. 이명박 정권은 남북 관계를 더 꽁꽁 얼어붙게 하면서 먹혀들지도 않는 비핵 3000(※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국민소득 3000달러를 만들어 주자는 주장)같은 얘기나 한다.”

-노무현 정부 때는 햇볕정책을 펴고 대화도 했다. 그런데도 북한은 핵실험을 하지 않았나.

“캄캄할수록 불을 켜야 한다. 상대가 거꾸로 가도 더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북한은 냉각탑을 파괴하고 비핵화로 가겠다는 의지를 보이는데, 북한이 다르게 갈 것이라고 전제하면 대화가 안 된다.”

-금강산에서 우리 관광객이 북한 병사의 총에 맞아 죽었다. 북한은 사과하지 않았다. 그래도 가만히 있어야 한단 말인가.

“유감 표명은 하지 않았나? 저는 그렇더라도 단절이라든가, 우리도 못한다는 식보다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하고 똑같은 것인데, 북한이 그럴수록 더 적극적으로 끊임없는 노력하는 해야 되는 관계다.”

-북한에는 그렇게 관대한데 왜 여당에 대해선 못 그러나.

“우린 언제든지 소수 정당으로 대화하고 협의하고 한다. 그런데 우리에겐 연락도 없이 다 교섭단체 중심으로 한다. 그래서 교섭단체를 폐지하란 주장을 하는 것이다.”

(※강 대표는 북한의 핵실험과 핵무기 보유에 대해서는 끝까지 직접적인 비판을 하지 않았다. 대신 6자회담이 잘 안 되고 남북 관계가 경색된 데 대한 이명박 정부의 책임론을 길게 언급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는 이유는 뭔가.

“우리 사회를 양극화시킨다. 사람은 풍요나 편리함만으로 잘사는 것이 아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배려하고 서로 위하는 맘으로 가는 세상이어야 한다. 그런데 양극화는 갈등·불화·불신을 더 조장하기 때문에 국민소득은 올라가도 행복지수는 떨어질 것이다.”

-경제성장보다 평등이 더 중요하다는 뜻인가.

“그런 것이다. FTA는 양극화를 심화시켜 우리 사회를 더 불행하게 만들 것이다. 대기업 수출이 좀 늘어난다지만 우린 얻을 게 별로 없다고 본다. 한·미 FTA 체결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18대 국회가 구성됐는데 검증 절차를 밟지 않고 해당 상임위만 통과시켜 본회의로 가겠다는 건 입법부가 행정부의 거수기가 되라는 것과 같다.”

-그럼 국회가 바뀔 때마다 법안을 다 다시 검토하라는 말인가.

“그렇다. 모든 법은 대가 달라지면 다 폐기된다. 다 다시 발의한다.”

-17대 때 한·미 FTA를 추진한 건 열린우리당, 즉 지금의 민주당이었는데 이젠 반대하고 있다. 새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이 맺은 계약을 모두 파기할 수 없듯이 국가든 정당이든 승계 책임이 있지 않나. 국회가 바뀔 때마다 모든 걸 다 바꾸면 얼마나 소모적인가.

“한·미 FTA는 17대 국회에 제출됐다가 이명박 정부가 18대에 다시 제출했다. 국회는 절차를 밟아 다시 논의해야 한다. 미국 산업에 변화가 생겼고, 오바마가 재협상을 하자는데 2월에 통과시키겠다는 것은 다수당의 오만불손이다. 대통령이 입법부를 맘대로 갖고 놀겠다는 독선이다.”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사실 민노당은 어떤 경우든 FTA에 찬성하지 않을 것 아닌가.

“그렇다. 우린 찬성 안 한다. 하지만 우리가 찬성 안 해도 통과되는 법 많다.”

-양극화 현상은 FTA와 상관없이 노무현 정부 때 심화됐다. 한·미 FTA가 이뤄지면 양극화가 심화된다는 근거는 뭔가.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희생물로 삼는 성장은 노동자·농민·기층 서민들의 실질적인 경제 향상과는 무관하다. 실물 내수 경기 회복되지 않는다. 그래서 FTA는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그럼 보호무역으로 돌아가자는 것인가.

“쿠바와 베네수엘라 같은 상호 공존의 교환 무역체제로 가야 한다. 무역을 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수출 무역을 하되 서로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고 도와주고 상생해가는 이런 행태의 무역을 해야 한다. 모든 걸 경쟁만이 살길이라고 해서 잠식해 버리고 독식해 버리는 무역 체계는 개선해야 한다.”

(※세계 제5위의 산유국인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쿠바에 거의 무상으로 석유를 제공하고 있다. 쿠바는 이에 화답해 노동인력을 베네수엘라에 파견 중이다. 하지만 이것은 정상적인 무역 거래라기보다는 남미에 있는 대표적 반미국가들끼리의 상호 부조에 가깝다는 평가다.)

-우리보다 훨씬 못사는 그런 나라들이 어떻게 모델이 될 수 있나.

“신자유주의 세계화도 우리를 잘살게 한다는 보장이 없다. 미국도 현재의 신자유주의 체계보다는 상호공존의 무역 체계와 질서를 마련하는 게 훨씬 더 잘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미국이 아닌 중국이나 EU와 FTA를 체결하는 것도 반대하는가.

“지금의 무역 체계, WTO 세계화 같은 기조는 반대한다. 새로운 무역 체계와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 쿠바나 베네수엘라처럼 서로 잡아먹는 게 아니고 상생관계를 지속하면서 부족하고 취약하고 없는 것을 도와 주고 보완해 주고 함께 성장 발전시키는 무역 체계로 가자는 거다. 제3 세계에서 그런 주장을 많이 한다.”

강기갑 대표는 …

1953년생. 사천농고를 졸업한 뒤 가톨릭 농민회 활동을 시작했다. 세례명은 로베르토. 29세 되던 해에 천주교 수사(修士)가 되기 위해 수도원으로 가 6년간 생활하다 하산했다. 한겨레신문 사천지국장, 사천시 농민회장 등을 지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부의장을 지냈고, 전농이 민노당과 결합한 뒤 2004년 농민 비례대표로 제17대 국회에 진출했다. 지난해 4월 18대 총선 때는 사천에서 한나라당 실력자인 이방호 의원을 178표 차로 꺾어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수염을 기르고 한복과 고무신 차림으로 등원한다. 지난해 7월 민노당 대표가 됐다. 올해 초 국회파행 때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의 책상 위에 올라가 몸을 날리고, 철제 봉을 휘둘러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이와 관련, 경찰의 소환 통보를 세 차례 받았으나 모두 거부해 현재는 검찰이 수사 중이다.



파워인터뷰 팀

김종혁 문화·스포츠 에디터, 김정하 정치부문 기자 ,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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