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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철의 수면 비타민] 밤마다 가위눌리는 사람들

중앙일보

입력

36세 주부가 가위눌림 때문에 잠자기가 두렵다며 병원을 방문했다. 꿈속에서 귀신이 뒤에서 잡아당기거나 꼭 껴안는 일이 매일 반복된다는 것. 2∼3년 전부터 이런 악몽에 시달리고, 최근엔 2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타나 같이 가자고 해 잠을 못 잔 적도 많다고 했다. 환자는 굿도 하고, 퇴마사를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잠자는 동안 의식은 깨어있는데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증상을 가위눌림, 또는 수면마비(sleep paralysis)라고 한다. 이런 증상은 10분 이내 끝나지만 공포심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무리 뛰려 해도 제자리걸음만 하고, 누군가 목을 졸라 소리를 지르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때론 관에 갇힌 것처럼 숨이 막히고, 죽은 사람이 보이거나 귀신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가위눌림은 인구의 20∼40%가 평생 한 번은 경험하는 아주 흔한 수면 현상이다. 다양한 연령층에서 나타나지만 1% 이내에선 매일, 그리고 1∼5%는 가끔 가위눌림에 시달린다. 환자들은 흔히 가위눌림을 귀신과 같은 영적인 것과 연관 짓지만 근거는 없다.

가위눌림은 렘(REM) 수면기와 각성이 뒤섞여 나타난다. 원래 렘수면 단계에선 정신은 활발하게 움직이는 반면 호흡을 제외한 모든 근육은 마비된 것처럼 꼼짝할 수 없다.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 공포감이 극대화되는 것이다.

가위눌림은 충격적 사건을 겪었거나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 또는 밤낮이 바뀌는 수면주기 장애, 수면 부족, 낮에 많이 조는 주간 수면과다 환자에게서 잘 발생한다. 또 항불안제 복용, 우울증, 신체질환을 앓아 만성적으로 수면이 부족해도 나타난다. 이 밖에도 반듯하게 누워 자거나 불편한 자세도 영향을 미친다. 사례로 든 환자는 20년 전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충격을 많이 받았고, 이후 경제적 어려움이 지속되면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컸다고 했다.

가위눌림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아침에 깰 때 주로 나타나는 격리형 수면마비다. 이는 일시적 증상으로 전체 인구의 40∼50%에 이른다. 불규칙한 잠 등 수면주기에 혼란이 생겼을 때 주로 발생한다. 다행히 이런 증세는 특별한 치료 없이도 호전된다.

둘째는 졸음병으로 알려진 기면증의 한 가지 증상으로 나타난다. 기면증 환자 중 24∼40%가 증상을 호소하고, 기면증을 치료하면 호전된다.

셋째는 유전적 요인에 의해 나타나는 가족형 수면마비다. 지금까지 학계에 몇 사례만 보고될 정도로 매우 드물다.

가위눌림이 두렵다면 우선 일정한 시간에 잠들고 깨며, 낮잠을 자지 않는 규칙적인 수면습관을 가져보자. 또 수면에 방해되는 카페인·과음·야간 흡연을 피하고, 잠을 못 잤을 경우엔 다음 날 충분한 수면을 취해 부족한 잠을 보충한다.

만일 좋은 수면습관에도 가위눌림이 반복되면 수면무호흡증과 같이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는 또 다른 요인이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신원철 경희대동서신의학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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