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 가진 한국의 '아저씨'들

중앙일보

입력 1997.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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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물줘!”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지 만4년 된 대만 여성 증소추(33)의 신혼초 스트레스는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먼저 퇴근한 날도 그저 앉아'밥줘'하며 기다리던 맞벌이 남편의 모습을 그는“참 황당했다”고 표현한다.시댁에 가서도 남편의'밥줘''물줘'행진은 계속.일에 대한 열정과 순수한 마음에 반해 결혼했지만 밤샘이며 술자리는 왜 또 그리 많은지….그는“한국에서도 젊은 사람은 (여자에게)잘한다”는 말로 부모님을 설득해 결혼했다.“처음엔 친정식구들이 많이 반대했죠.왜,세계에서 한국남자 별로 좋게 생각 안하잖아요.술 마시고,부인 때리고,한국여자 지위,형편없다고….” 가뜩이나 고개숙인 한국남자들에게 까짓 밥 좀 안한다고,세탁기 좀 안돌린다고 시비를 걸려는 것은 아니다.문제는 집안일만이 아니니까.“옌볜(延邊)에서는 한국남자들 거의가 바람둥이인줄 알아요.” 대학 마치고 3년전 한국에 온 중국교포여성 왕란(30.가명)의 첫직장은 서울의 한 식당.단골손님인 듯한 아저씨들은 며칠 되지 않아 음식을 나르는 그의 엉덩이를 실수인 척 만져대더니,또 며칠 지나지 않아 그중 한사람이 묻는다.“월급 얼마냐고,자기가 그 돈 줄테니 데이트해 달라고요.”어느나라 남자가 여자 싫어하랴만,한국 아저씨 특유의'밝힘증'은 옌볜을 들락거리는 자칭 사장님들도 예외가 아니다.

“자기 딸같은 여자를 끼고 다니는 아저씨들이 많아요.현지부인(現地婦人)인 거죠.여자가 바뀌는 빈도도 잦아요.사귀는 정도는 괜찮죠.아예 결혼까지 하고는 한국으로 혼자 와버려요.여기는 부인.자식 다 있죠.거기 여자들은 이혼수속이라도 하게 사람 찾아달라는 부탁이 많아요.그런데 찾을 수가 있나.주소.전화번호 다 가짜인걸.” 같은 교포남편과 결혼생활 16년,한국생활 8년째인 중국교포여성 츠인찐(38)은 한국남자들끼리의 대화에'바람피우는 얘기'가 너무 빈번히 등장하는게 놀랍다.그는“40대는 잎이 무성하니 바람소리가 많을 때”라고 짐작하면서도“그 뿌리만은 절대 뽑히지 않는게”이상하다.중국에선 남자가 바람나면 이혼하게 마련인데“여기서는 본점(本店)은 그냥 두고 지점(支店) 여럿 거느리는 걸'능력'으로 여기는 모양”이라니…. 세살때 미국에 입양돼 3년전 한국에 와 처음 한국어를 배운 교포 남성 존 설리번(27)은 한국'아저씨'들의 의식 속에는'가정생활하는 여자'와'갖고 놀아도 되는 여자'사이에 명확한 선이 있다고 지적한다.물론 이 아저씨들은 다른 한편에서는“일 열심히 하고,가정생활을 중히 여기는”사람들이다.평일에는 거의 술을 마시지 않는 미국식 생활태도에 익숙한 그와 그의 교포친구들에게 일 끝내고 술 한잔,특히 룸살롱에서의 술자리는 한국남자와 친구가 되는데 넘기 힘든'벽'처럼 여겨진다.

룸살롱 얘기가 나왔으니 한국여성 말도 들어보자.서울 강남 룸살롱에서 일하는 이정은(29.가명)씨는 손님들의 싫은 모습을'내숭'과'돈'으로 요약한다.점잔을 떨다가도 술만 먹으면 사람이 바뀌는 아저씨들.일단 옷을 벗기는게 주목적이라 재미도 없는 게임을 시작한다.차라리'너 좋다,2차 가자'하고 말지. 다음으로 싫은 것은'2차 가기 싫다'하면'얼마 주면 되느냐'면서 돈으로 무조건 다 해보려는 아저씨.'돈 얼마 더 줄테니 한명 더 데려올 수 있느냐'며 정력 자랑하는 대목까지 가면 정말'인간이 싫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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