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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밥짓기 명인 “45년의 맛, 전수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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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일본 오사카(大阪)부 사카이(堺)시의 작은 밥집 ‘긴(銀)샤리야 게코테이(亭)’. ‘샤리’는 일본어로 흰 쌀밥을 의미한다. ‘은 밥집’이란 뜻이다. 허름한 슬레이트 건물이지만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밥을 파는 가게로 통한다.

주인인 무라시마 쓰토무(村嶋孟·78·사진)는 1963년 이곳에 밥집을 열었다. 지금까지 45년 넘게 한결같이 밥을 지어온 밥짓기 명인이다. 쌀을 손끝으로 만져보면 그날의 밥맛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어린 시절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고 잡초를 뜯어먹어야 할 정도의 배고픔을 경험했다. 32살에 다니던 방직회사를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밥집을 열었다. “모든 사람에게 맛있는 밥을 먹이고 싶다”라는 게 이유였다.

그날 이후 무라시마는 매일 새벽 4시에 어김없이 일어나 밥을 지었다. 먼저, 쌀을 씻어 30분 정도 물에 담가 불린다. 그리고 1시간 가량 쌀을 체에 밭쳐 쌀 속까지 수분이 배도록 한다. 불린 쌀을 밥솥에 담고 커다란 국자로 물을 조절한다. 이때 물 대중이 이 집 밥맛의 비밀이다.

밥솥을 가스 가마에 올리고 센 불로 밥을 짓는다. 무라시마는 밥솥 앞을 지키고 서서 증기와 이중 솥뚜껑이 흔들리는 정도에 따라 불을 조절한다. 불을 끈 뒤에는 솥을 옮겨 뜸을 들인다. 커다란 나무통에 밥을 옮겨 담고 수분을 날리면 폭신하면서도 윤기가 흐르는 밥이 완성된다.

이렇게 지어진 밥은 오전 9시부터 점심 영업이 끝나는 오후 2시 무렵까지 손님상에 오른다. 하루 약 200인분을 낸다. 주중에는 인근 직장인들이 대부분이지만 주말에는 다른 지방에서 찾아온 가족단위 손님이 많다. “집에서 평소 밥을 먹지 않는 아이들도 이곳에만 오면 한 그릇을 뚝딱 비운다”라는 단골 손님들의 칭찬이 가장 큰 보상이다.

촉촉하면서도 밥알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듯한 이 집 밥맛의 비결을 배우기 위해 전기밥솥 개발자와 도쿄 쓰키지(築地)의 초밥집 주인들이 찾아와 조언을 구할 정도다. 그의 밥을 먹어본 식도락가들은 일본 다도의 창시자인 ‘센노리큐(千利休)’를 본따 그를 ‘밥집의 센노리큐’로 부른다. 생선구이와 계란말이 등 30가지 반찬을 부인과 두 아들이 만들어 밥과 함께 낸다. 손님들이 밥과 미소시루(된장국), 원하는 반찬을 골라 먹는 뷔페식이다.

그는 쌀밥에 관한 한 까다로운 원칙주의자다. 각각 생선과 고기 반찬을 담당하고 있는 두 아들이 한 가게에서 일하고 있지만 “밥에 반찬 냄새가 밸 수 있다”라는 이유로 밥 짓는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했다. “여름 쌀은 맛이 좋지 않다”라며 매년 6월부터 8월까지 석 달간은 가게문을 닫고 장기 휴가를 떠난다. 한때 유명 백화점에서 지점을 낼 것을 권유했지만 “내 눈앞에서 손님들에게 낼 수 있는 음식이 아니면 받아들일 수 없다”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러나 정작 쌀은 품종을 가리지 않는다. 곳곳의 농가에서 써달라며 보내오는 쌀을 간혹 쓰기도 하지만, 대개는 개업 때부터 거래하고 있는 쌀가게 주인이 매일 저녁 갓 찧어 보내주는 쌀 40kg을 그대로 쓴다. “밥 짓는 건 내가 최고일지 모르지만 쌀 고르는 것은 쌀 가게 주인이 최고”라는 이유에서다.

밥짓는 노하우를 물어보는 사람에게는 꼼꼼하게 비결을 알려준다. 하지만, “전수할만한 기술이 아니다”라며 대를 이을 제자는 두지는 않았다. 매주 한차례 이상 등산을 하고 매일 2시간씩 골프연습장에서 스윙 연습을 하며 체력을 단련하고 있지만 여든을 바라보는 요즘은 새벽에 일어나서 일하기가 부쩍 힘들다.

얼마 전 그는 가게 안에 ‘50년의 맛, 전수합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였다. 제자를 받기로 한 것이다. “언제까지나 맛있는 밥을 먹고 싶다. 어떻게든 그 기술을 후세에 남겨달라”라는 단골손님들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무라시마는 “흰 쌀밥과 미소시루는 일본인의 영혼을 채우는 음식”이라며 “밥 짓기 기술을 진지하게 배울 의욕이 있는 사람에게 손맛을 전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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