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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티니안 - 타가비치 각도.시간따라 물빛달라 신비 (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티니안에 가면 아무리 목석같은 사람이라도 두번쯤 눈물을 흘리게 된다.한번은 아름다워 신비롭기까지 한 바닷물빛에 감격해서,또 한번은 섬이 일깨워 주는 우리의 슬픈 역사에 가슴이 저리기 때문이다.

시골역사같은 티니안 공항.원주민인 차모로들을 처음 대했을 때 왠지 낯익은 듯한 얼굴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그후 식당 혹은 거리에서 이같은 얼굴들과 마주치면서 어딘가 모르게 우리와 닮은 정겨운 얼굴들이라는 것을 알았다.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들은 바로 우리 형제들이었다.거제도 절반만한 티니안의 인구는 2천5백명정도.이 가운데 한국인의 피가 섞인 한국계가 3백명가량 된다고 한다.2차세계대전중에 징용으로 끌려왔다가 눌러 앉은 이들의 살붙이들이다.이들은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원주민들과 결혼해 그대로 눌러앉고 말았다.

다만 김씨는'킹'씨로,최씨는'샤이',강씨는'키요시',박씨는'카브레라'로 성을 바꿔 살아가고 있었다.징용자중 유일하게 아직까지 생존해 있는 전경운(80)옹은 기력이 쇠해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그는 징용 당시의 이름이었던'마쓰모토'로

통하고 있었다.어쨌든 한국인 2,3세들은 주로 정부요직에 근무하면서 티니안 사회의 중요한 일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

관광객들은 티니안에 가면 제일 먼저 한국인 위령비를 찾는다.이곳에는 전쟁중 희생된 징용한국인 유골들이 묻혀 있다.위령비는 당시 희생자들을 화장했던 화장터 옆에 있다.안내인은“한국인 희생자는 모두 5천여명으로 추정되는데 그중 1천여

명의 유골만이 이곳에 안장됐다”고 말했다.

일본군들은 2차세계대전중 태평양 한가운데 떠있는 이 작은 섬을 아예'움직이지 않는 항공모함'으로 만들려고 했다.해안가를 따라 진지를 구축하고 섬 중앙에는 비행장과 유류 저장고.통신소등을 지었다.벙커중에는 아직도 포신을 장착한 채

태평양을 노려보고 있는 것도 있어 섬뜩한 느낌을 준다.야자나무와 흰 모래사장이 있는 해변에 녹슬고 있는 전쟁 유물들은 여행자들의 마음을 한층 비감에 젖게 한다.

일본군들이 티니안에서 벌였던 전쟁놀음은 1944년 7월 미군의 전격

상륙작전으로 막을 내렸다.그리고 미군들은 곧바로 이곳에서 2차세계대전을

끝낼 준비를 했다.그것은 원자폭탄이었다.이곳에는 세계 최초로 일본에

투하됐던 원자폭탄을 실

었던 탑재지점이 두 군데 있다.

45년 8월6일.멀리 태평양이 내다보이는 티니안 중앙의 야트막한 언덕.에놀라

게이라 불리는 B29기에는 원자폭탄'리틀보이(꼬마)'가 실렸다.그리고 3일후

그곳에서 10 떨어진 곳에서는'패트맨(뚱뚱보)'이라는 원자폭탄이 역시 B29

기에 실렸다.이들 원폭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떨어졌다.

원폭 탑재지점에는 조그만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평화의 상징인 야자수와

풀루메리아가 심어져 있다.일부 일본인 관광객들은 이곳 표지판을 발로

차거나 나뭇가지를 꺾으며 분풀이를 한다고 한다.

티니안에는 전쟁유물과는 달리 타가비치라는 아름다운 해변도 있다.물빛이

보는 각도와 시간에 따라 녹색에서 파랑.보랏빛등으로 변한다.해안 5

높이에서 바닷속을 들여다보아도 밑이 훤히 보인다.티니안의 해변모래는

자세히 보면 눈입자처럼

별모양을 하고 있다.원주민들은 이 모래를 방안에 두고 사랑을 하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타가비치 맞은 편에 있는 블로홀(Blow Hole)도 볼만하다.바닷가 용암지대에

있는 직경 50㎝의 이 구멍은 파도가 칠 때마다 분수처럼 물을

뿜어낸다.원주민들은 고래가 물을 뿜어내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고래등

구멍'이라고도 한

다.파도가 세차게 칠 때면 약40까지 물을 뿜어 올린다.뿜어진 물보라는

바람에 날려 관광객들의 얼굴을 시원하게 적셔준다.

'고래분수'너머 눈이 시리도록 파란 태평양의 바다를 보며 심호흡을

해본다.조상들의 슬픈 역사가 곳곳에 서려 있는 아름다운 섬 티니안.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생각케 하는 곳이다. 〈티니안=이순남 기자〉

<사진설명>

용암으로 이뤄진 해안에는 블로홀 혹은'고래등 구멍'이라고 불리는 직경

50㎝의 구멍이 있다.파도가 밀려 들어오면 그 압력으로 블로홀을 통해

바닷물이 분수처럼 솟구쳐 오른다.이따금 최대 40까지 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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