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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경제] 미국은 달러를 마구 찍어내도 괜찮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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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요즘 세계경제가 무척 어렵습니다. 오죽하면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은 “세계경제가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위기에 부닥쳤다”고 말했을까요.

틴틴 여러분은 이럴 때 어떻게 하면 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 생각해 보셨나요? 언뜻 생각하면 정부가 돈을 많이 찍어 국민에게 나눠주면 간단히 해결될 것으로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 정부가 돈을 마구 찍어낼 수는 없답니다. 돈을 많이 발행하면 그만큼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죠. 물건이 흔해지면 값어치가 떨어지는 이치와 똑같습니다.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 물가가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른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돈을 마구 찍어내 물가가 폭등하고 국민이 고생했던 나라가 있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뒤 독일에 세워진 바이마르공화국입니다. 독일은 전쟁을 일으킨 나라인데, 미국과 영국·프랑스 등에 졌어요. 그래서 승리한 국가들은 독일보고 책임을 져야 한다며 배상금을 내라고 했어요. 당시 전쟁 배상금은 독일 국가 재산의 3배가 넘었다고 합니다. 독일은 하는 수 없이 돈을 마구 찍어냈습니다. 이렇게 돈이 많아지다 보니 가치가 폭락했어요. 어떤 사람은 20년간 저축한 돈을 찾아서 쓰려고 보니, 간신히 빵 한 개를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시장을 보러 갈 때 돈을 마차에 가득 싣고 갔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도 있어요.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나라도 10년 전 외환위기로 경제가 어려웠을 때 돈을 찍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쓰지 못했던 겁니다. 하지만 요즘 미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겁도 없이 돈을 잇따라 찍어내고 있답니다. 일부에서는 미국 정부가 독일의 바이마르공화국만큼 돈을 많이 찍어낸다는 지적을 합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FRB도 10월, 11월에 돈을 많이 풀었어요. 11월 말 현재 미국에 있는 돈의 양은 1월에 비해 74%나 늘었답니다. <그래프下 참조>

FRB는 “발권력(돈을 찍을 수 있는 권리)을 동원해 무제한으로 달러를 공급하겠다”고도 했어요.

미국은 어떻게 경제가 어렵다고 이렇게 돈을 마구 찍을 수 있을까요? 미국은 앞으로 큰 곤경에 빠지지 않을까요? 미국은 아직까지 큰 문제가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아요. 미국은 바이마르공화국처럼 돈을 많이 찍어내지만 달러는 오히려 이달 중순까지 값어치가 가파르게 올라가는 이상한 현상까지 벌어졌어요. 물가도 뛰지 않고 있어요. 아무리 미국이라도 돈을 많이 찍어내면 물가는 오를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현재 미국에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중국산 제품 값이 워낙 싸 물가 안정에 크게 기여하고 있어요. 9월 중순 미국의 커다란 투자은행이었던 리먼브러더스가 망하자 세계 각국 투자자들이 미국 달러화를 사들이는 소동이 벌어졌어요. 비록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시작됐지만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죠. 그래서 11월에는 미국 달러화 값어치가 폭등했죠.

미국은 빚도 많은 나라입니다. 미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현재 외국에 진 빚은 총 9조7720억 달러(정부와 기업 빚 합계)입니다. 가장 많이 돈을 빌려준 나라는 일본으로 나타났어요. 일본은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 1조1970억 달러를 빌려줬답니다. 또 중국도 9220억 달러를 빌려줬고요. <그래프(下) 참조>

미국 돈이 이렇게 인기 있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세계 모든 돈의 중심이기 때문이죠. 이런 돈을 ‘기축통화’라고 합니다. 국가 간에 무역을 할 때 돈을 주고받아야 하죠. 이때 사용되는 돈이 바로 미국 달러입니다. 우리나라가 중국에 물건을 팔고 받는 돈은 중국 돈인 위안화가 아니라 달러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미 달러화가 동이 나서 돌지 않으면 세계 무역이 멈춘다고도 말할 수 있겠죠. 물건을 주고받을 돈이 없어지니까요. 이렇게도 생각하면 되겠네요. 세계에서 게임기가 딱 한 종류만 있다고 치죠. 그러면 게임을 하고 싶은 사람은 그 게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사야겠죠. 지금 미국 달러화가 그런 이점을 누리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세계의 중심 돈이라고 하는 기축통화는 이처럼 막강한 위력을 발휘합니다. 그런데 미국 달러가 원래부터 기축통화였던 것은 아니었어요. 제2차 세계대전 이전만 해도 영국의 파운드화가 더 셌죠. 그런데 미국이 2차대전 이후 제일 힘이 세지고 잘살게 되니까 달러가 기축통화가 된 겁니다. 요즘 유럽연합이 만든 공통화폐인 유로화도 힘이 세졌어요. 그렇지만 유럽연합은 미국만큼 군사력이 강한 편은 아니에요. 여기서 틴틴 여러분은 눈치챘죠? 단순히 잘사는 나라의 돈이 기축통화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 말입니다. 경제력과 함께 군사력도 강한 나라의 돈이어야 합니다.

그럼 미국만큼 잘살고 군사력이 강한 새로운 나라가 나타나면 그 나라 돈이 세계의 중심 돈이 될 수 있을까요? 아직까지는 그런 나라가 눈에 띄지 않습니다. 하지만 요즘 중국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중국은 13억 인구에다 경제가 발전하니까, 언젠가는 세계 최강국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란 전망이 있습니다.

이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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