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뷰>자연.문화 다큐멘터리

중앙일보

입력 1997.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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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요즘 TV를 보면 겉은 화려하고 세련돼 가는데 속은 점점 비워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드라마.코미디.쇼등 순간적인 달콤함에 취했다 깨어보면 허망하기 그지없을 때가 많다.이런 속에서 꾸준히 실속있게 성장한 분야를 꼽는다면 다큐멘터리를 들 수 있겠다.

시사다큐멘터리는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고 자연다큐.문화다큐가 뒤를 이어 좋은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연초에 방영된 SBS'게'는 작품성.교육적 가치.재미 뿐만 아니라'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주제까지 심도있게 짚은 수작이었다.

KBS의'종묘너구리'는 날로 생기를 잃어가는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심속에서 야생 너구리가 살고 있는 모습을 잡아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어쩌면 이 너구리들은 삶에 찌든 도시인에게 새로운 희망을 전하기 위해 도심 한복판에 터를 잡았는지도 모르겠다.'게'나'너구리'는 그들을 통해 인간의 모습을 비춰낸다는 점에서 자연다큐이자 휴먼다큐이기도 하다.두편의 수작 다큐멘터리에

이어 얼마전 MBC에서도'젓갈'이라는 문화 다큐멘터리를 내놓았다.성인병 노이로제로 인해 짭짤한 젓갈이 우리네 식탁에서 멀어져가는 이때에 우리 전통의 맛과 조상의 슬기가 담겨있는'젓갈'을 방영해 관심을 끌었다.

지방마다 독특하게 발전한 각양각색의 젓갈을 구수한 사투리와 버무려 담그는 주부의 손맛을 통해 짭조름하면서도 고소한 젓갈의 맛까지 생생하게 전달했다.

시각과 청각이야 TV의 기본이라지만 미각을 어떻게? 하다가 하얀 밥위에 얹어 쓱쓱 비벼먹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어느새 입안에 슬금슬금 고인 침이 꼴깍하고 넘어간다.

지방의 환경적 특성에 따라 젓갈에서 식혜가 파생되었다는 사실도 신기하기만 했다.

'게'나'종묘너구리',그리고'젓갈'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방송도 마음만 먹으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질적.양적으로 충분한 투자와 제작자들의 열의가 함께 일궈낸 결실이겠지만 이런 다큐멘터리에 대한 열기가 다른 장르에도 자극이 되어 양보다 질을 따지는 방송 풍토가 조성됐으면 좋겠다.또 한편으로 시청자들도 이제는 TV를

시청하는데 있어 질을 따지는 태도를 가졌으면 한다.자신의 몸을 위해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다양하게 섭취하듯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한 프로그램을 신중하게 선택하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음식 편식이 나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시청의 편식도 마찬가지다.이 3편의 다큐멘터리가 일시에 시청자들의 편식증을 고치기는 어렵겠지만 사람들의 입맛을 제대로 찾아주는 길잡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전상금 여협 매스컴 모니터회 회장〉

<사진설명>

최근 MBC에서 방영된 문화다큐멘터리'젓갈'에서'육젓'을 소개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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