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NGO대학원·본지 공동기획]21세기 대안의 삶을 찾아서⑥ 영국 핀드혼

중앙선데이

입력 2008.12.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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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호 31면

1 핀드혼에는 세계 각국으로부터 매년 9000여 명의 방문객이 찾아온다. 색색의 우비를 입은 농사 체험 참가자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2 폐기된 위스키통을 이용한 ‘재활용’ 집들이 매우 이색적이다. 통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집의 면적은 약 26㎡라고. 3 생태교육을 받고 있는 핀드혼 칼리지 학생들. 핀드혼 칼리지는 유엔과도 연계,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4 핀드혼 주민들이 추수 감사 축제를 즐기고 있다.

영국 북단에 위치한 핀드혼(Findhorn)을 찾아 5월의 스코틀랜드 지방을 올라가는 길은 마치 한 폭의 풍경화 같았다. 굽이굽이 언덕 위에 펼쳐진 푸른 초원과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양떼, 산기슭에 아직도 남아 있는 잔설과 맑은 개울물은 사람의 손길이 미처 닿지 않은 듯했다.

속이 빈 바퀴축같은 공동체 주인도, 오래 머무는 이도 없어

에든버러에서 지방도로를 4시간 달려 도착한 핀드혼은 북쪽 해변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원래 이 지역은 근처에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연합군이 사용하던 군용비행장이 있고 토질이 척박해 거의 황무지처럼 버려진 땅이었다. 그러다가 1962년 피터와 에일린 캐디 부부, 그리고 에일린의 친구인 도로시 매클린이 이곳에서 신비한 체험을 한 후 정착했고, 이들이 척박한 땅에서 놀라운 수확을 거두기 시작하자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점차 모여들면서 공동체를 이루었다. 이제는 200여 명이 생태적·영성적 삶을 실천하고 있는 대표적 대안공동체로 성장했으며, 세계에코빌리지네트워크(Global Eco-Village Network)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핀드혼은 영성과 생태를 중시한다. 영성이란 어느 특정 종교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곧 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인데, 이럴 때에만 인간이 ‘총체적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핀드혼은 종교를 불문하여 기독교도·불교도·이슬람교도·도교도 등이 함께 살고 있다.

생태에 대한 강조는 에코하우스의 건설을 유도하는 데서 볼 수 있다. 에코하우스는 나무와 흙, 혹은 돌로 만든 집이다. 특히 스코틀랜드는 위스키로 유명한 곳이어서 인근에 위스키 공장이 많은데, 여기서 폐기한 위스키통으로 집을 지은 일명 ‘위스키통집’도 여러 채 있다. 핀드혼에서 40년을 살았다는 크레이그도 위스키통을 사용해 집을 확장했다. 그 안을 둘러보니 위스키통 하나가 방 1~2개 정도 크기였고, 단단하고 보온이 잘돼 있으며, 침대와 가구로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다. 화가이자 생태주의자인 그는 “집은 천천히 자연친화적으로 지어야 한다. 내 집도 40년째 아직 짓고 있는 중”이라며 웃는다.

에너지와 자원에 대한 재활용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 지역은 바닷가여서 해풍과 육풍이 번갈아 불어 풍력발전에 유리한데, 여러 대의 풍력발전기가 사용전력의 20%를 담당하고 있다. 또한 영국의 보통 날씨와 달리 맑은 날이 많아 태양열에너지를 활용하고 있다. 조만간 풍력과 태양발전 등의 비율을 80~90%까지 높이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공동체 생활에 대해 말하자면, 먼저 개인적 공간을 인정한 후 자신이 원하는 바와 적성에 따라 일터가 정해진다. 커뮤니티센터 옆 식당에서 공동식사를 하고, 함께 영성을 계발하는 영적 모임을 열기도 한다. 특히 핀드혼은 ‘튜닝(tuning)’을 강조하는데, 이는 영성의 소통을 위해 개별성 외에 상호 간의 튜닝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갖도록 하려는 것이다.

핀드혼의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에 있다. 지역화폐를 사용하고 대안경제를 모색하기도 하지만, 일터가 없어 찾아온 사람들에게 집과 일을 제공하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영리적 활동이 필요하다. 따라서 핀드혼은 비영리법인인 핀드혼재단 외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을 공동으로 만들거나, 혹은 외부인의 영리활동을 허락하고 수입을 분배받는다.

핀드혼은 스코틀랜드 지역에 있기 때문에 흔히 19세기 로버트 오언이 스코틀랜드 뉴라나크에 건설한 유토피아적 공동체인 ‘뉴라나크(New Lanark)’와 비견된다. 당시 자본가였던 오언은 자신이 부리는 노동자와 그에 딸린 부인과 아이들의 어려운 삶을 목도한 후 그들에게 교육과 공동분배, 그리고 공동생활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일종의 사회주의적 실험을 하였다.

현 핀드혼 의장인 조너선 도슨은 “뉴라나크가 핀드혼에 미친 정신적 영향은 크다”면서도 “하지만 지금은 19세기가 아니다”고 말한다. 오늘날 핀드혼은 뉴라나크처럼 단지 한 사람의 이니셔티브에 의해 운영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개인적 삶의 공간을 인정하고(집은 공동체 소유도 있지만 대부분은 개인 소유다), 개인적 삶을 존중한다.

또한 여기 모여 사는 개인들은 다양한 배경을 갖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 찾아온 사람들부터, 자연적·생태적 삶을 살기 위해 들어온 사람들, 예술활동을 하거나 종교적 신념을 갖고 들어온 사람 등 다양하다. 기독교도나 불교도, 백인이나 아랍인, 농부나 예술가, 사회주의자나 자유주의자 등이 함께 어울려 살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핀드혼은 개별성과 다양성을 보존하면서 영성을 키우고 자연 및 타인과 소통하고 협동하는 곳이다. 크레이그처럼 오래 산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평균 2~3년 동안 이곳에서 기거하며 삶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얻은 후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 일상에서 그것을 실천한다.

따라서 핀드혼은 ‘비어 있는 공간(empty space)’과도 같다. 공동체는 있으되 주인이 없으며 계속 머물러 있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비어 있음이 오히려 세계에코빌리지네트워크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는 비결이다. 허브란 바퀴의 살을 가운데에서 연결해 주는 축을 이르는데, 바퀴의 규격을 통일한 중국 진시황도 바퀴가 잘 굴러가게 하기 위해 60개의 바퀴살을 연결해 주는 한가운데의 바퀴 축은 비워 두었듯이, 허브의 핵심 요소는 비어 있음에 있기 때문이다. 중심이 비어야 그것과 연관된 주변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전체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안공동체는 사회 속에 존재하는 일종의 비워진 공간이다. 그곳에 갈 때 나는 마음을 비워야 하고, 그곳에서 내가 할 일은 세상에서 찌든 진부함을 비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비워지면, 다시 세상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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