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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는 푸아그라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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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호 14면

팬에 살짝 구워서 만든 더운 푸아그라 요리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올해는 그리 밝고 넉넉한 분위기는 아니다. 그래도 정다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연말 저녁의 따스함마저 놓치고 싶지는 않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정겨운 식사 풍경만큼 풍요로운 게 없다.

김태경·정한진의 음식수다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는 크리스마스가 최대의 명절이지. 그들은 명절에 어떤 음식들을 먹지?”
“프랑스에서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가장 눈에 띄는 음식은 푸아그라죠.”
“거위의 살찐 간 말이지. 고대 이집트인들이 철에 따라 먼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먹이를 잔뜩 먹고 살찐 거위의 간을 맛보고서, 인위적으로 먹이를 집중적으로 먹여 간을 살찌우는 방법을 발견했다고 하지.”

“우리나라에서는 푸아그라를 흔히 ‘거위 간’이라고 하는데, 거위 간도 있고 오리 간도 있어요. 거위 간이 오리 간보다 크고 맛이 부드럽다고 해요. 하지만 둘 다 나름대로의 맛을 가지고 있어서 뭐가 더 낫다고 하긴 어려워요.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푸아그라는 대부분 오리 간이에요.”

프랑스는 푸아그라의 최대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다. 프랑스에서 생산하는 푸아그라의 거의 대부분은 오리 간이다.
“푸아그라는 세계 3대 진미 가운데 하나잖아.”
“그렇죠. 예전이라면 일반 서민들은 먹을 꿈도 꿔 보지 못했죠. 오늘날에야 생산량이 늘어나고 가공 방법이 발달해 별미 음식으로 먹을 기회가 늘어나긴 했지만 아직도 일 년에 한 번도 푸아그라를 맛보지 못하는 사람도 많아요.”

평상시에는 고급 식료품 상점에서나 푸아그라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가공된 푸아그라가 수퍼마켓 진열대를 차지한다. 가공된 푸아그라는 날것의 푸아그라에 약간의 향신료와 브랜디를 넣고 반 정도 익힌 후 캔이나 플라스틱 포장지에 넣어 진공 상태로 처리한 것이다. 푸아그라를 통째로 가공했느냐 조각들을 모아서 한 것이냐에 따라, 그리고 푸아그라의 함량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다르고 가격도 다르다. 물론 식당에서는 대량 생산된 가공 푸아그라가 아니고 날것의 푸아그라를 가지고 요리한다.

“푸아그라를 테린(일종의 찜틀)에 넣고 중탕으로 서서히 익혀서 식힌 뒤 먹는 ‘푸아그라 테린’을 먹어 봤는데 맛이 그만이더라. 리큐어·브랜디 같은 술이나 과일 등을 넣고 익힌다면서?”
“예전에는 그렇게 차게 먹는 조리법이 많았는데, 요즘 와서는 따뜻하게 조리해서 먹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요. 지방이 많아 쉽게 열에 녹아내리는 푸아그라를 따뜻하게 조리한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푸아그라를 적절한 두께로 잘라 뜨거운 팬에서 구워내는 것도 맛있죠.”

서울 신사동에 있는 잘 알려진 프렌치 레스토랑 ‘라미띠에’(02-546-9621)의 팬에서 구운 푸아그라의 맛을 쉽게 잊을 수가 없다. 버터에 구운 사과와 포트와인 소스가 곁들인 단순한 구성이지만 그것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이처럼 푸아그라는 단 과일과 소테른 같은 디저트와인 또는 강화와인과 잘 어울린다. 물론 세계 3대 진미에 속하는 송로버섯(트뤼플)과 함께 내는 경우도 많다.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로 유명한 이탈리아 작곡가 로시니는 미식가로도 유명하다. 요리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요리사에게 부탁해 만들어 먹기도 했다. 이렇게 탄생된 요리에는 로시니의 이름이 붙는데 그중에는 고급스러운 요리가 많다. 특히 푸아그라와 송로버섯을 올린 안심스테이크를 ‘로시니식 안심스테이크’라고 한다.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았던 예술가지만 그의 음식에는 사치스러움보다는 천재성이 엿보인다.

서구에서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추석과 같이 온 가족이 집에 모여 밤늦도록 맛있는 음식과 술을 들면서 정담을 나누는 정겨운 날이다. 그래서 명절의 귀한 음식에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정성과 정겨움이 들어 있다. 그런데 갑자기 오 헨리의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에 등장하는 가난한 두 부부의 서로에 대한 애정과 배려가 생각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유난히 ‘추운’ 올겨울의 날씨 때문일까. 아니면 귀한 음식에 따스함을 더 가득 담고자 하는 요리사의 소망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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