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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리뷰>재현을 넘어선 추상적 장면 - 이정진 사진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사진'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으로는 무엇을 들 수 있을까.있는 그대로의 현실의 재현.이로 인한 기록성.여기에 필름만 있으면 얼마든지 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는 복제성 정도.

사진이 처음 발명된 1백여년 전에는 이러한 특성들이 큰 축복으로 생각됐지만 오늘날의 사진작가들은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버거워한다.눈앞의 현상을 담아내긴 하지만 결국은 어떤 방향으로든 왜곡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장 잘 알기 때문이

다.

또 다큐멘터리가 아닌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기에도 이런 점들은 분명 걸림돌이다.아트스페이스 서울(02-737-8306)에서 열리고 있는'Wasteland-이정진전(4월7일까지)'에서 만날 수 있는 이정진의 사진작업에는 바로 이런 동시

대 사진작가들의 고민을 모두 담고 있다.그는 사진만이 갖는 특성을 모두 버렸다.재현성도,복제성도.

작품제목은'미국의 사막'이지만 어디에도 우리가 기대하는 사막의 형상은 찾아볼 수 없다.사막 어디 한 귀퉁이,초라한 나무토막등 단편을 분리해내 사진이라기보다 추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차피 눈으로 보는 것과 카메라를 통해 보는 대상이 다를 바에는 구도잡기를 포기함으로써 이 차이를 자연스럽게 극복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사진 어느 한구석에도 실제 이미지는 없다.사막의 한 부분과 작가의 격렬하게 움직이는 나

체 일부분이 희미하게 결합돼있을 뿐이다.신체의 어느 부분인지 알 수 없도록 아주 파편적으로 들어있으나 이 때문에 오히려 강한 성적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의도적으로 재현을 포기함으로써 더욱 생생한 현장감을 주는 것과 이런 도발적인 성적 이미지가 이정진 작품의 큰 매력이다.

이정진 사진의 기법적인 특성으로는 인화지가 아닌 한지를 사용했다는 것과 이 위에 먹등으로 인위적인 상처를 가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사진이지만 더 만들어 낼 수 없는 단 한점뿐인 작업을 보여준다.

복제성을 제거해버린 것이다.

李씨는 미국의 유명 사진전문 화랑인 페이스 멕길 갤러리의 전속작가로 서울에서의 개인전은 4년만이다. 〈안혜리 기자〉

<사진설명>

3장의 사진이 병치된 작품

'미국의 사막Ⅲ-1'의 가운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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