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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전교조, 초심으로 돌아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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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전교조는 지금 안팎으로 큰 어려움에 부딪치고 있습니다.”

내년부터 전교조를 이끌 정진후 위원장 당선자가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스스로 전교조가 달라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임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겪어온 고난의 무게로 치자면, 지금의 어려움이 유독 버거울 리는 없다고 본다.

내년에 창설 20주년을 맞는 전교조는 그 역사의 반인 10년을 합법화되지 못한 상태에서 투쟁에 투쟁을 거듭했다. 합법화된 이후의 10년도 전교조에게는 영일이 없었다. 이렇게 싸움의 역사를 지닌 전교조에 어려움은 오히려 친숙한 환경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전교조가 맞고 있는 어려움은 이전 것과는 사뭇 다르다.

전교조가 민주화와 참교육의 기치를 내걸고 걸었던 투쟁의 길은 외롭지 않았다. 침묵에 갇혔을지라도 학생과 학부모의 지지가 있었고, 일반 시민의 응원도 따랐다. 그러나 전교조를 지탱해 왔던 사회적 지지는 이제 거의 무너진 듯하다. 사회 통념은 어느덧 바뀌어 자녀를 위해 학교를 선택한다면 전교조 소속 교사가 적은 학교를 찾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마저 보인다. 조합원들의 활동과 참여도 사그라지고 있고, 조합원 수 자체도 줄고 있다. 생존 자체를 걱정할 상황이다.

그렇다면 전교조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흔히 사람들은 초심(初心)을 회복하라고 주문한다. 발족 당시 지녔던 순수하고 진정한 뜻을 잃지 않는 것만이 정도(正道)에서 이탈하지 않는 길이라는 뜻이리라. 정 위원장 당선자도 이런 지적에 수긍한다. 그는 조합원들에게 “전교조를 세웠던 그 마음과 결의로 함께 가자”고 호소한다. 창립선언에서 밝힌 전교조의 초심은 외압을 두려워하지 않고 학생들의 해맑은 웃음과 초롱초롱한 눈빛을 두려워하는 데 있었다. 제자들에게 떳떳할 수 있는 길을 가겠다는 전교조의 다짐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빛 바램 없이 힘을 지닌다.

 전교조 회원들이 초심을 회복한다 해서 걱정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투쟁 방식까지 과거를 답습할까 우려돼서다.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그동안 전교조는 ‘외부 강경 투쟁’을 중요한 수단으로 삼아 왔다. 그리고 그 같은 투쟁 방식으로 민주화와 참교육의 길을 열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의 신뢰를 잃기도 하였다. 이제 투쟁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때다. ‘제2의 참교육 운동’으로 새롭게 출발하면서 전교조는 그 운동의 방식도 새롭게 강구해야 할 것이다.

과거 국민들이 그들의 다소 강경한 투쟁 수단을 용인했던 것은 전교조가 학교 교육의 주인이 되기 위해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권의 시녀로 전락한 학교 교육을 구하고, 자신도 ‘하수인’의 질곡에서 벗어나 교육의 주인이 되려 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싸움의 명분이 사라졌다. 선생님이 여전히 학교 교육에서 소외돼 있다고 말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물론 선생님들에겐 아직까지 그렇게 말하고 싶은 구석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에게 선생님들은 이제 학교 교육의 엄연한 주인이다. 교육이 실패하면 정부나 정책을 탓하기보다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주인으로 비쳐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교조가 교육 문제를 정부 탓으로 돌리고 사사건건 교육 당국과 겨루기만 한다면, 돌아선 국민의 마음이 되돌아올 리 없다.

우리 교육의 구조적 모순이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교조는 이제 한국 교육의 주인으로서 그 모순의 책임을 자임해야 한다. 그 책임을 지기 위해 이제까지 멱살을 잡아왔던 상대방들과 손을 잡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전교조를 ‘반교육’ 집단으로 매도해 왔던 이들도 이젠 전교조의 새로운 출발을 도와야 할 것이다. 전교조의 잘못을 들춰내는 것이 곧 자신들의 옳음을 밝히는 것으로 착각해선 안 된다. 교육현장 안에서 싸움은 공멸이다. 서로에게서 교육에 대한 열정을 확인하고 공감하는 논의를 모두 함께 시작해야 한다.

강태중 중앙대 교수·교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