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클로즈 업] 下. 명문가 산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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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의 경주 손씨 서백당(書百堂), 안동의 고성 이씨 임청각(臨淸閣), 의성 김씨 내앞 대종택. 이러한 명문고택들의 산실(産室)은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가. 다시 말해 산실에 뭉쳐있다고 하는 정기(精氣) 내지는 지기(地氣)를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감별해 낼 수 있는 것인가.

한자문화권에서 말하는 정기나 지기를 측정해 수치로 나타내 주는 기계장치는 아직까지 발명되지 않았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있는 연구자들은 이 기계를 발명해 주면 좋겠다. 수치로 계량화할 수 없는 부분이라서 섣불리 단정하기가 어렵다. 필자는 산실에 뭉쳐있다는 지기의 실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항상 이 부분이 불만이자 의문이기도 하였다. 지기가 존재한다는 심증은 충분히 포착되는데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는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그동안 필자가 나름대로 정리한 지기감별법(地氣鑑別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잠을 자보는 방법이다. 자고 일어나서 몸이 개운하고 숙면을 취했다는 느낌이 들면 그 방은 지기가 좋다고 판단할 수 있다. 잠을 잤어도 잔 것 같지 않고 몸이 뻣뻣한 느낌이 들면 그 방은 좋지 않은 방이다. 땅기운이 좋은 곳에 자리를 잡은 집들은 한결같이 상쾌한 숙면을 제공한다. 따라서 기운이 좋은 방에서 생활하면 몸이 건강해진다. 인체는 가장 정확하면서도 종합적인 센서이기 때문에 이 방법이 가장 확실하다.

둘째는 꿈이다. 땅 기운이 좋은 방이나 장소는 특별한 꿈을 꾸는 수가 있다. 개꿈보다는 영몽(靈夢)에 가까운 꿈을 꾼다.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보다 민감하게 꿈을 꾼다. 평소에 몸이 예민한 여자들은 정기가 뭉쳐 있는 방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면 영몽한 꿈을 꾸는 경우가 많다.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상대적으로 술.담배를 적게 하니까 화면이 깨끗하다고나 할까.

셋째는 바위나 암반이 묻혀 있는 경우다. 이 대목을 가장 주의깊게 관찰해야 한다. 땅 속에 바위나 암반이 묻혀 있는 곳에다가 집을 지으면 그곳은 대단히 기운이 강하다. 전국의 불교사찰을 답사해 보니까 이름 있는 고승들이 장기간 머물렀던 암자나 절터는 반드시 바위 위에 자리잡았다. 아니면 암자 뒤로 커다란 바위가 버티고 있는 곳들이다. 바위가 많은 악산에 천년 고찰들이 자리잡고 있다. 설악산 신흥사, 가야산 해인사, 월출산 도갑사, 계룡산 신원사를 보라. 한결같이 험한 바위로 이루어진 산에 자리잡았다. 바위산은 '기도발'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바위가 높고 험할수록 비례해서 '기도발'은 증가한다. 그러나 사찰이나 기도 터가 아닌 일반 집 터 자리는 바위산을 피해야 한다. 도 닦는 사람이 아닌 보통사람에게 바위는 살기(殺氣)로 작용한다고 본다.

유교 사대부 집안의 수백 년 된 고택들은 처음부터 바위산을 피해 터를 잡았다. 양반으로 유명한 충청도의 추사 김정희 고택이나, 전라도 해남의 고산 윤선도 고택을 보면 주변 산세가 아주 부드럽다. 부드럽다는 말은 집터 주변의 산들이 낮을 뿐만 아니라 바위산이 없다는 뜻이다. 유교의 명문 고택들은 주변 산들 가운데 바위산이 없고, 다른 방은 바위 맥이 지나고 있지 않지만, 산실에 해당하는 방만큼은 바위 맥이 지나갈 공산이 크다. 그 집에서 산실이 다른 방보다도 상대적으로 정기가 뭉쳐 있다고 보는 이유는 특별히 산실 밑으로만 바위 맥이 지나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바위 맥이 지나가는 곳에 앉아 있으면 장시간 앉아서 이야기를 하더라도 피곤이 덜하다. 아마도 '바위발'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바위발이 피곤을 덜하게 만드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면 집 전체를 암반 위에 앉히면 좋을 것 아닌가? 좋지 않다. 그렇게 되면 암자가 된다. 일반인이 살기에는 기운이 너무 강한 집터가 된다. '터가 센 집'이 되는 것이다. 기운이 강한 터는 기도를 하거나 도를 닦는 데 적합하다. 서울 평창동이 터가 세다는 말을 듣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북악 스카이웨이서 바라다 보면 평창동의 집들이 험한 바위산에 올라앉아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술가들이 살기 좋은 터다. 예술가는 기도발, 즉 영감을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렇다.

넷째는 우물이다. 집터나 방 앞에 정면으로 우물이 자리잡고 있으면 기운이 좋은 곳으로 본다. 이러한 우물을 풍수에서는 혈구(穴口)라고 부른다. '혈자리의 입'이라는 뜻이다. 사람 얼굴에도 입이 있어야 한다. 임청각의 산실 바로 앞에는 우물이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우물방이라고 부른다. 혈구가 있어야 수기(水氣)와 화기(火氣)가 만날 수 있다. 주역에서 말하는 수화기제(水火旣濟)가 형성된다. 산실은 이와 같은 네가지 각도에서 체크해 볼 수 있다.

조용헌 원광대 초빙교수.江湖東洋學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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